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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이론

외환보유액, 너무 많아도 골치… '유지비'만만찮아

입력 : 2016.03.07 03:06

[외환보유액, 얼마가 적당한가]

- 국가 비상금 역할
비상시 원자재 수입에 사용… 외환시장 안정에도 투입
- 외환보유액 쌓으려면 '비용' 들어
달러 사들여 원화 풀리면 인플레… 채권 발행해 막으려면 이자 비용
- 외환보유액 산정 기준 3가지
수입규모·외채·외국인 투자액… 자본유출입 많으면 더 필요

최성환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최성환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 보유국인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매달 1000억달러(약 120조원) 내외로 줄고 있어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보유액이 4개월째 감소하고 있고,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냐는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외환보유액이 적다는 논란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단골메뉴입니다.

외환보유액은 '긴급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비상금 또는 비상식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는 대외지급준비자산'이라고 정의합니다. 계속된 국제수지 적자로 달러가 부족하게 돼서 필요한 원자재 등을 수입할 수 없는 경우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을 헐어 대신 결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할 경우 달러를 사들이거나 내다 파는 등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환보유액은 한 국가의 대외지급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로서 국민경제의 안전판인 동시에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외환보유액 보유엔 비용이 든다

이런 긍정적 역할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외환보유액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달러를 사들이는 대가로 원화를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시중에 원화가 너무 많이 풀리면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으므로 원화를 흡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채권(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합니다.

문제는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면서 지급해야 하는 금리, 즉 조달금리(비용)에 비해 외환보유액을 굴리는 운용금리(수익)가 낮다는데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수익성보다는 유동성과 안정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외환보유액을 안정적으로 굴리다 보니 얻는 낮은 수익과 상대적으로 높은 조달 금리의 차이가 외환보유액을 쌓는 비용입니다.

선진국은 거의 없는 외환보유액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작년 말 현재 3680억달러로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13위인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에서는 7위라면 상당히 많은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환보유액 1~10위를 보면 일본을 제외하고는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요, 왜 그럴까요. 먼저 미국은 필요할 경우 언제든 달러를 찍어내면 되므로 굳이 많은 외환을 보유할 이유가 없습니다. 유로를 공동통화로 사용하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유로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어서 필요할 때 어느 정도 찍어낼 수 있는데다 어느 한 회원국의 외환이 부족할 경우 십시일반 도와줄 수 있습니다.

외환보유액 1~10위 국가의 국내총생산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 외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반면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놓고 있는 나라들의 면면을 보면 자국 고유의 통화를 사용하는 '나 홀로 국가'들인데요, 한마디로 어디 기댈 언덕이 없는 나라들입니다. 스위스는 유럽 중심에 있으면서도 유로가 아닌 스위스프랑을 사용하면서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충격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을 5450억달러(GDP대비 77.4%)나 쌓아놓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막강한 독일을 돌아가게 만든 것이 스위스의 자체적인 군사력이었다면 요즘과 같은 경제전쟁에서 믿을 건 외환보유액이라는 것이지요.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을 보면 홍콩이 113.1%로 가장 높고 사우디아라비아가 98.1%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대만이 스위스와 비슷한 79.1%, 중국도 37.1%로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일본(27.4%)에 이어 우리나라도 25.8%로 낮은 편은 아닙니다. 반면 러시아(20.7%)와 브라질(15.5%), 인도(15.7%)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적정한 외환보유액 규모

과연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적정외환보유액 수준을 산정하는 기준으로는 통상 3가지가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1953년)이 제시한 '3개월분 수입액', 그린스펀-기도티 룰(1999년)이라고 불리는 '3개월분 수입액 + 유동외채(1년 내에 갚아야 할 외채)', 국제결제은행(BIS, 2004년)이 제시한 '3개월분 수입액 + 유동외채 +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자금의 3분의 1'입니다.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자본유출입이 늘어나면서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도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BIS 기준에 따라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정해본 결과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4433억달러인데, 당시 실제 외환보유액이 3636억달러여서 797억달러가 부족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현재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이라는 반박자료를 내놓았습니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외환보유액은 지나치게 적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많이만 쌓아둘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외환보유액이라는 비상금 또는 방파제가 가져다 주는 든든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거센 파도나 쓰나미가 올 것에 대비해 방파제를 높이 쌓는 데만 자원을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가마이시(釜石)항의 방파제는 80%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200억엔(약 1조2000억원)을 들여 31년이나 걸려 완성한 '일본의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던 방파제였습니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의 절대규모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위기 발생을 사전에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제고시켜야 할 것입니다. 특히 위기 발생 초기에 끌어다 쓸 수 있는 외화유동성(달러)의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튼튼한 타이어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갈아 끼울 수 있는 스페어 타이어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