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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상하이 증시 극약 처방에도 급락 … ‘1989년 한국 데자뷔’

상하이 증시 극약 처방에도 급락 … ‘1989년 한국 데자뷔’

[중앙일보] 입력 2015.07.29 00:49 / 수정 2015.07.29 01:05

한국, 100 → 1007까지 올랐던 주가
200P 폭락하자 정부 증시부양 개입
“한은 발권력 동원해 무제한 매입”
7조 쏟아부었지만 반짝 상승 뒤 추락
“중국, 시장에 신뢰 줘야 위기 탈출”

끝없이 오를 줄 알았던 주가가 고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투자자의 원성이 커졌고, 정부는 주가 방어를 위해 증시에 개입했다.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비상식적인 극약 처방이 뒤따랐다. 주가는 잠시 반등하다 이내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고 폭락했다. 자살을 택한 개인투자자가 속출했고 정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현재 중국 증시의 상황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바로 한국 증시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국내 증시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 증시를 두고 ‘옛 한국 증시의 복사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90년 초 주가가 급락하자 서울 명동의 증권사 지점에는 정부 부양책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벽보가 나붙었다.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투자자가 잇따르고 사회 불안이 야기되자 정부는 결국 나랏돈을 풀어 증시 부양에 나섰다. 요즘 중국 증시는 이즈음의 한국 증시를 빼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84년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100을 겨우 넘었던 지수는 5년 뒤인 89년 4월 1일 1007까지 상승했다. ‘상투’에 도달한 지수가 서서히 하락해 840까지 떨어지자 정부가 나섰다. 89년 12월 12일 발표돼 ‘12·12 조치’ 또는 ‘증권판 12·12 사태’라고 불리는 증시 부양대책의 핵심은 나랏돈을 무제한으로 풀어 주식을 사는 것이었다.

당시 재무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을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3개 투자신탁회사는 당시 시가총액(95조원)의 2.8%에 이르는 2조7000억원을 시중은행에서 빌려 주식을 닥치는 대로 매입했다. 지수는 100포인트 정도 반짝 상승했지만 곧 곤두박질쳤다. 4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기금’도 추가로 투입됐지만 방향을 돌리진 못했다.

코스피 지수는 92년 8월 456까지 하락했다. 적지 않은 개미투자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3개 투신사는 파산해 7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물가는 급등했고, 부동산 투기가 재연됐다. 90년 10월 10일 새벽 전격적으로 단행된 ‘깡통계좌 정리’로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정점에 달했다.

 현재의 중국 증시 상황은 부양책이 더 파격적이고 반(反)시장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당시의 한국 증시와 거의 비슷하다. 물론 부양책의 최종 결과까지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김정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와 장악력이 여전히 확고한 데다 증시 선진화 작업이 점진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라 장기적으론 중국 증시가 상승 국면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조속한 증시 반등을 위해서는 한국의 선례를 거울 삼아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증권업계 일각에선 한국이 중국을 비웃을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인해 한국 증시의 수준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2조원대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고 누락한 것으로 드러나 증시 불안요인으로 떠올랐다.

가장 큰 문제는 상장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투자자가 믿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조선업체가 일감을 수주하고 건조 과정의 손익을 파악해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시장이 불신하게 됐다”며 “표면적인 재무 상태가 건전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전반적으로 증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시장이 이렇게 떠들썩한데도 대우조선해양 측은 공식 입장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은 회계 정보뿐 아니라 공시·실적 같은 경영 성과에 관한 정보 제공이 너무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펀드매니저는 “국내 투자자가 중국을 후진적인 시장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인투자자는 한국 시장을 투명하지 못한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중국 증시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 증시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