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손꼽히는 화학 전문가인 김봉수 카이스트 교수는 최근 ‘재야의 투자 고수’로 유명해졌다. 남을 따라 하기보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게 그의 주식 투자 성공 비결이다.
지난 3월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주식대량보유상황보고서’ 하나가 올라왔다. 제출인은 한 개미 투자자였다. 그는 부산방직 보유 주식 수가 4만5472주(5.68%)로 보유비율이 5%를 넘어서자 최대주주 지분보고 의무에 따라 보유지분을 공시한 것이다. 이 개인투자자의 지분공시로 2000개가 넘는 상장기업들 사이에 묻혀 있던 ‘부산방직’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날 부산방직은 전 거래일인 3월 20일보다 12.52% 오른 6만3800원에 거래를 마감한 이후 이틀 동안 32%나 더 상승하며 3월 23일에는 8만4200원까지 치솟았다. 이 개인투자자의 부산방직 주식 주당 평균 매입 단가는 4만 3145원으로, 지난 3월 23일 기준 약 18억원의 차익이 발생 했다(물론 이 개인투자자는 부산방직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다). 이 개인투자자의 정체는 바로 김봉수(56)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부학장)였다.
이 놀라운 ‘재야의 고수’를 만나기 위해 대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를 찾은 지난 4월 1일, 화학동 교수연구실에서 취재진을 맞이한 김 교수는 아웃도어브랜드 ‘디스커버리’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너무 가벼운 옷차림에 적잖이 놀랐지만, 그가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하는 날 굳이 디스커버리의 바람막이를 입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바람막이의 소재는 고어텍스입니다. 고어텍스는 빗방울은 막아주고 땀은 배출해주는 소재로, 화학의 원리를 담고 있죠. 그리고 이 옷을 만든 디스커버리는 제가 투자한 에프앤에프(F&F)의 아웃도어브랜드입니다.” 그가 입고 있는 바람막이는 화학과 교수이면서 주식에 투자하는 그의 현재 상황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외제차 사려 시작한 주식투자
김 교수는 부산방직 지분 공시 이후 언론에 자주 거론되면서 자신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기분은 별로란다. “사실 언론에 소개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화학분야 연구와 관련해 신문과 방송에 50번 정도 나왔지만 이렇게 반응이 뜨겁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사람들이 정말 돈을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2010년 1월 세계 최초로 초탄성·무결점 단결정 금속 나노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화학 박사다. 같은 해 8월에는 절반-금속성을 갖는 규화철 나노선을 최초로 합성해 ‘차세대 스핀전자공학’에 필수적인 스핀 주입(spin injection) 물질을 개발하기도 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통계역학으로 석사를 마친 후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화학’에 빠져 있던 그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1986년 경북대학교 교수로 첫 출근 하던 날 우연히 같은 학교 의대에 재학 중이던 초·중학교 동창생을 만났다고 한다. “그 친구는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다 재수한 뒤 경북대 의과대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의과대학도 가르치고 있었던 터라 마주치게 된 거죠. 그런데 그 동창생과 마주친 순간 20년 후에는 이 친구가 나보다 훨씬 부자가 돼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2004년 김 교수는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된다. 전문의가 된 그 친구는 외제차를 타고 온데다 동창회의 밥값을 모두 계산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외제차를 사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그날로 주식공부를 하기 위해 책 200권을 사 6개월을 읽었다고 한다. “공부하면 할수록 외제차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이론대로라면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너무 저평가돼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모은 돈이 3억원이었다.
그는 실전투자에 들어가기 전 투자할 기업을 선택하기 위해 증권사에서 내놓는 기분석리포트를 읽었다. 김 교수가 처음 선택한 기업은 ‘태평양화학’과 ‘제일기획’이었다. 이후 홈트레이딩시스템(HTS)를 알게 되면서 소형주로 관심을 돌렸다. ‘삼광글라스’와 ‘에프앤에프’를 찾아낸 것도 이때다. 김 교수는 삼광글라스를 2005년 5000원에 매수해 이듬해 3만원대에 매도했다. “단기간에 6배가 오르자 팔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지난 4월 14일기준) 삼광글라스의 주가는 8만8500원이다.
저평가된 부산방직 주식으로 대박
‘부산방직’을 처음 알게 된 것도 2005년경이다. 당시 부산방직이 부방테크론과 합병한다는 기사가 났다. 이를 유심히 본 김 교수는 부산방직이 어떤 기업이 찾아봤다고 한다. “당시 부산방직의 시가총액이 50억원이었는데 순자산이 400억원이 넘었습니다. 시가총액이 말도 안되게 저평가 돼 있었죠. 바로 부산방직을 매수했습니다.” 그가 매수한 지 두 달여 만에 부산방직의 시가총액은 300억원대로 올랐다. “시가총액이 오르자 부산방직을 매도했습니다. 부산방직 주가는 이후 큰 이슈 없이도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에 꾸준히 매매했죠.”
부산방직과 합병한 부방테크론은 나중에 리홈으로 사명을 교체했다. 그리고 리홈은 2009년 웅진텐의 생활가전 사업부를 인수하며 밥솥사업에 뛰어들었다. 김 교수는 여기에 주목했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가전매장을 둘러보고 진열된 밥솥들을 살펴보며 ‘리홈쿠첸’에 관심을 뒀다. 그런데 쿠첸밥솥은 안보이고 경쟁사인 쿠쿠의 밥솥만 진열돼 있었단다. 쿠첸 밥솥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가 궁금하던 찰나 시장에 변화가 나타났다. 쿠첸밥솥이 진열대 맨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김 교수는 학회를 위해 일본에 다녀오면서 밥솥사업에 확신을 가졌다. “과거에는 일본기업이 만든 밥솥이 최고였습니다. 저희 집도 일본 밥솥을 썼죠. 그런데 학회에 다녀오면서 면세점에 있는 일본 밥솥을 보니까 10년 전과 비교해 디자인은 그대로인데 가격은 두 배 이상 올랐더라고요. 그 순간 머리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이러다 전 세계 밥솥시장을 쿠쿠와 쿠첸이 점령하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는 리홈쿠첸이 아닌 리홈쿠첸의 지분 117.7%를 보유하고 있는 부산방직을 매수했다. 왜일까. 부산방직의 시가총액(4월 14일 기준 580억원)이 리홈쿠첸의 지분가치(773억원)보다 낮은 점이 투자 매력을 다가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리홈쿠첸은 지금 분할을 앞두고 있다. 핵심 사업부인 리빙과 유통, 전자부품 등 3개 사업부를 독립시켜 오는 8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존 리빙사업부를 신설해 자회사인 쿠첸으로 전환하고 기존 법인인 리홈쿠첸은 지주회사인 부방으로 전환한다. 김 교수는 리홈쿠첸의 분할이 기업 가치를 재평가 받을 기회가 돼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는 기업의 분할이나 합병 이슈에 약하더라고요. 약인지 독인지 모르고 무조건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오류는 저에겐 기회, 그리고 저의 오류는 저의 고뇌입니다(웃음).”
김 교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칭기즈 칸이다. 칭기즈칸은 끝없이 반복되는 실용적 학습 훈련과 적용을 통해 전투 할 때마다 새로운 전술을 구상했다. 수많은 전쟁에서 한 번도 똑같은 전술을 쓰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김 교수 역시 기업마다 투자전략을 달리 한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를 들려줬다. 기상청의 발표와 상관없이 매년 12월 15일전에 강추위가 시작되면 에프앤에프의 주식을 매수한단다. “2006년, 2007년, 그리고 지난해에도 에프앤에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라 저의 반복적인 학습과 경험을 믿습니다.”
정부 정책에 주목해 투자 기업 선택해야
김 교수는 2006년 폭발적으로 늘어난 연구와 주식투자를 병행하기 어려워 연구에만 몰입하기로 했다. 그는 “일생일대의 실수”라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지난해 안식년에 들어가면서 8년 만에 주식투자를 재개했다. 그의 2014년 주식투자 수익률은 300%가 넘는다. 김 교수의 투자자금은 현재 처음의 100배 이상 늘어난 400억원이 됐다.
그는 무엇이든 투자한 비용대비 성과가 난다고 했다. “투자할 기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투자하는 건 실패할 줄 알면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제가 투자한 부산방직이나 에프앤에프, 고려신용정보에 대해 전 세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기업에 대해 공부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기업 탐방도 다닌다. 개인투자자가 기업 탐방을 다니는 경우는 흔치않다. 부산방직은 대표를 만나 사업전략에 대해 이야기까지 나눴다. 공부를 통한 기업에 대한 확신이 그에게 좋은 성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그런 김 교수가 주식투자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가 있다. 첫째는 정부 정책이다. 정부 정책과 같은 방향으로 투자를 해야 실패확률이 낮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의 배당정책은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이슈 중 하나다. “지난 10년 동안 기업소득은 100% 가량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은 2%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정부는 임금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주식투자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배당정책이죠. 그래서 올해부터 개인투자자들의 배당세를 인하했습니다. 저는 가능한 모든 자금을 융통해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가 정부 정책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대주주다.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대주주의 의중을 파악해야 기업의 미래가 보인단다. 부산방직의 경우 지분 57%를 보유한 이대희 부산방직 대표가 최대주주다. 대주주가 대표면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 본인에게 불리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가 부산방직을 매수해 단기간에 10억원이 넘는 차익을 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여기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나름의 투자 원칙을 세워 지켜나가고 있었다. 생활에서 투자할 기업 찾기, 철저한 공부, 투자할 기업에 대한 끝없는 관심, 그리고 장기 투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올해부터 주식을 매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려가는 것으로 투자 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부산방직이었다. 이 방법은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에 투자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조만간 한국판 워런 버핏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식투자로 생전 현재 가치로 300억원 정도 되는 돈을 벌었다. 케인스 사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금융업에 뛰어들어 거부가 된 이들은 몇 있지만 현직 교수로는 케인스가 최고였다.
국내에서 케인스의 투자 기록을 뛰어넘은 이가 나왔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바로 얼마 전 부산방직 5% 지분 공시로 이목을 끈 김봉수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56)다. 지난 3월 말 대전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운용자산은 400억원대 정도다. 현직 교수로 케인스의 기록을 넘어선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화학을 전공한 김 교수가 어떻게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게 됐을까. ‘본업인 학문을 소홀히 하다 한눈팔게 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접자. 그는 지난 2011년 화학학회에서 매년 딱 1명에게 수여하는 학술대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보유 중인 특허만 60개가 넘는다.
“매년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 열중했는데 그동안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체득한 지식을 주식시장에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발단이 됐다.”
2005년 모아둔 종잣돈에 대출까지 얹어 만든 4억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처음 투자했던 종목은 현재도 적잖은 지분을 갖고 있는 의류업체 에프앤에프(F&F)와 메가스터디다. 투자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1억원을 벌었고 차츰 포트폴리오를 늘려가 그해 연말에는 8억원까지 불렸다. 이후 그가 올린 수익률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논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를 잠시 쉬어야 했던 2006년이 30%로 가장 수익률이 낮았다. 그때를 빼고는 매년 200~300%대 수익률을 올렸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 투자 아이디어를 얻는 것일까.
김 교수는 “한마디로 딱 요약할 수는 없다. 수십 년간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체득한 전략적인 방법론과 인문학 지식, 그리고 개인적인 삶의 과정에서 몸에 밴 지혜,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자연과학 원칙 증시에 접목하고픈 호기심
채권 같은 주식 즐겨, 남과 다른 관점 중요
물론 그에게도 몇 가지 투자 원칙은 분명히 있다. 첫째, 하방이 확고하고 상방이 뚫려 있는가를 따져본다. 이익이 보장된 채권 같은 주식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배당률이 4%인 주식이라면 지금 당장 실적은 안 좋더라도 현재 금리(1.75%)에 비춰보면 하방은 확고하다. 두 번째로 유통 물량이 작은 코스닥 종목을 주로 투자한다. 또 한 가지. 돈을 쥔 자들의 의도를 간파하려 애쓴다.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정책 방향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건 투자한 회사 대주주의 의도다.
“당국이 국민들의 가처분 자산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 코스닥시장은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런 때 개인투자자도 군중심리를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늘 남과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03호(2015.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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