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 ‘주식 농부’ 박영옥(54) 스마트인컴 대표와 팬들이 만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 이름은 ‘한국의 워런 버핏과의 식사’. 딱 6명만 초대하는 자리에 응모자가 100명이 넘었다. 직업도 대학생부터 직장인·주부까지 다양했다.
박 대표는 증권가에선 유명한 ‘수퍼 개미’다. 공시 등을 통해 알려진 주식투자 규모는 1500억원대다. 2001년 종잣돈 5000만원으로 시작해 14년 만에 원금을 약 3000배로 불린 셈이다. 지금은 대동공업·참좋은레져·조광피혁·에이티넘인베스트·대한방직 등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그가 어떤 종목을 매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투자자들이 따라 사기도 한다. 지난달 14일에는 장이 열리자마자 대한방직 주가가 상한가로 뛰어올랐다. 박 대표가 이 회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했다는 공시에 투자자들이 몰려든 탓이다. 이날 저녁 식사자리에서도 주식투자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투자의 철학과 원칙, 기업을 고르는 기준, 전업투자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준비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원래 두 시간으로 예정됐던 식사는 세 시간을 넘겨 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박 대표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성공가도만을 달린 건 아니었다. 1960년생인 그는 전후 세대가 겪었던 가난과 배고픔을 모두 겪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네 남매만 남은 집안이 부유할 리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인 전북 장수를 떠나 서울 성수동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문을 팔기도 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뒤엔 증권가에 발을 들여 30대 후반에 교보증권 압구정지점장이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압구정지점은 가장 잘나가는 지점 중 하나였다.
성공한 증권맨의 삶을 살던 그가 무너진 건 1998년 외환위기였다. 연초 500포인트대였던 코스피지수는 200대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식을 던졌다. 그 역시 1억9000만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사글세 방으로 집을 옮겼다. 그러나 다음해 7월 코스피는 거짓말처럼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박 대표는 그때 배웠다고 했다. 공포와 탐욕에 휩쓸리지 않고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걸.
이후 전업 투자자로 변신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01년 9·11 테러였다.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자 세계 증시는 급락했다. 박 대표는 오히려 보령제약·고려개발 등 기초가 튼튼한 기업 주식을 사서 기다렸다. 주가는 반년 만에 2~3배씩 올랐다. 그의 자산은 위기 때마다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등 남들이 주식을 싸게 팔 때 사서 꾸준히 기다린 덕분이다. 그는 “대동공업이 11년간 14배, 태평양물산은 7년 동안 11배, 삼천리자전거는 2007년부터 투자해 24배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올해 주식 평가차익으로 500억원 정도를 더 벌었다. 그는 “대부분 오래전 사둔 주식이 오르면서 평가차익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의 투자론을 한 마디로 요악하면 “사낭꾼이 아닌 농부처럼 투자하라”다. 먹이(주가가 오를 기업)를 찾아 돌아다니지 말고, 밭에 씨를 뿌리듯이 좋은 기업을 골라 담은 뒤 수확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조언이다. 박 대표는 또 “주식에 투자하지 말고 기업에 투자하라”고 강조한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지 말고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한 뒤 함께 성장하라는 뜻이다.
“투자에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어요. 제일 낮은 단계는 남들이 모르는 정보만 믿고 투자하는 겁니다. 그 다음이 차트를 보고 기술적 분석을 하는 거죠. 세 번째 단계가 주가수익비율(PER)·자기자본수익률(ROE) 같은 정량적 지표를 보는 겁니다. 네 번째는 정량적인 지표를 참고하면서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해서 투자하는 거죠. 마지막이 기업가의 마인드로 투자하는 겁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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