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건 아주대 교수 삼성사장단 강연
現상황 100년 전과 유사
新에너지 등장·정보혁명에다
새로운 강대국 등장까지 닮은 꼴
위기의 역사에서 교훈 얻어야
격변의 시대 미래 준비 가능할 것
破局 부르는 '구성의 역설'
최고의 금융공학 프라임모기지가
글로벌 금융위기 출발점 됐듯이
부분으론 매우 효율적이어도
전체 그림에선 위험할 수 있어
구형건 아주대 금융공학과 교수가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최근 글로벌 금융 현상과 그 뒷이야기'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 원인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분석은 이미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것보다는 역사적으로 깊은 시각을 갖는 게 오늘날의 위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려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이전에 거의 유일하게 이를 예견했던 마이클 젠슨 전 하버드대 교수는 1993년 미국 금융학회 회장 취임 강연에서 "20세기 말은 19세기 말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며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이 힘이 세계경제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면 서구 기업들과 정치체제에 주요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 근현대사는 공교롭게도 100년의 주기를 보이고 있다. 200년 전에는 제1차 산업혁명기가 마무리되면서 나폴레옹 전쟁이 있었고, 100년 전에는 제2의 산업혁명과 1차 세계대전이, 그리고 이번에는 IT 혁명으로 표현되는 제3의 산업혁명과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었다.
특히 100년 전의 상황과 지금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 원인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분석은 이미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것보다는 역사적으로 깊은 시각을 갖는 게 오늘날의 위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려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이전에 거의 유일하게 이를 예견했던 마이클 젠슨 전 하버드대 교수는 1993년 미국 금융학회 회장 취임 강연에서 "20세기 말은 19세기 말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며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이 힘이 세계경제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면 서구 기업들과 정치체제에 주요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 근현대사는 공교롭게도 100년의 주기를 보이고 있다. 200년 전에는 제1차 산업혁명기가 마무리되면서 나폴레옹 전쟁이 있었고, 100년 전에는 제2의 산업혁명과 1차 세계대전이, 그리고 이번에는 IT 혁명으로 표현되는 제3의 산업혁명과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었다.
특히 100년 전의 상황과 지금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①정보혁명
20세기 대영제국은 런던에서 호주 시드니,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남미 대륙까지 이어지는 전 세계적인 전신망을 갖췄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정보 고속도로였다. 오늘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이어진 것도 대단하지만, 100년 전 대영제국이 이뤄낸 것은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더 놀라운 일이었다. 오늘날 IT 혁신은 당시에 비하면 속도를 빨리 당긴 정도로 볼 수도 있다.
②기술 혁신
다른 여러 산업에서도 획기적인 혁신이 일어났다. 용광로에서 용해된 선철에 다시 산소를 불어넣어 고순도 강철을 생산해냈고, 연료 연소 시 폐열을 이용해 용광로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 발명됐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기존의 10분의 1에 불과한 비용으로 더 강한 철을 만들 수 있었다.
철강산업 발전은 철도산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기차를 통한 인력·물자의 이동속도와 양이 증가했고, 이는 다시 시장 확대와 생산량 증가로 이어졌다. 20세기 말 IT와 바이오산업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다른 산업의 생산성까지 향상시킨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③새로운 에너지원
이 시기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유가 이전의 석탄을 대체했다. 존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은 1880년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80%를 차지했다. 그러나 록펠러는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기름값 인하 전략을 쓰면서 석유의 시대를 열었다. 셰일가스, 태양열, 풍력 등 대체에너지가 일제히 등장하는 요즘과 유사하다.
④새로운 산업의 대두
인류가 기아에서 해방된 것은 19세기 발명된 화학비료 덕이었다. 또 전기, 라디오, 자동차, 항공, 군수산업이 대두한다. IT, 우주, 바이오 등 신산업이 대두하는 요즘과 비슷하다.
⑤세계화
당시 세계화의 수준 역시 오늘날 못지않았다. 19세기에는 주로 서유럽에서 신대륙과 유럽 대륙으로의 이민 형태로 세계화가 이뤄졌다. 19세기에만 이런 이민이 3000만명을 넘었다.
자유무역과 금융 세계화도 역사적으로 최고 수준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 부담을 세금만으로 메울 수 없던 각국 정부가 민간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로스차일드와 베어링 등 금융 가문들이 국제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국제 금융 네트워크의 발달은 높은 수준의 세계화로 이어졌다. 1차 세계대전 직전 도달했던 금융 세계화 정도는 20세기 말까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인도중앙은행 총재인 라구람 라잔은 금융시장의 발전과 개방 수준에 대한 시계열 분석 결과, 1999년에 이르러야 1913년의 금융 세계화 수준으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우리 시대에는 닉슨의 핑퐁 외교 이후 중국을 비롯해 인도, 러시아 등 신흥국에서 12억 인구가 본격적인 생산 체계에 편입되면서 세계화가 급진전됐다.
⑥정치적 상황
100년 전에 미국이 유럽 열강 위주의 국제 질서에서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것처럼, 20세기 말 이후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과 함께 G2로 자리매김했다. 또 1871년 독일 통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의 대두는 이슬람 민족주의로 각종 분쟁이 빈발하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1차 세계대전·글로벌 금융 위기의 유사점
제2 산업혁명기를 파국으로 이끈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3 산업혁명을 위기로 몰아넣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 역시 큰 맥락에서 동일하다. 부분의 합리화가 전체의 파국을 가져오는 '구성의 역설(paradox of composition)' 때문이었다.
100년 전 열강은 군사 분야에서 놀라운 과학화와 합리화를 이뤄냈으며, 독일이 그 정점에 있었다. 각국의 군비(軍備)경쟁이 치열해지고 갈수록 무기 체계가 복잡해지면서 신기술 개발에서 무기회사가 선구적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와 무기회사 간 긴밀한 피드백을 필요로 했고, 이는 양자의 결탁을 심화시켜 군산(軍産)복합체가 탄생했다.
이는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한계는 곧 나타났다. 봇물처럼 쏟아진 신기술들로 군대는 기술에 대한 세부적 이해와 제어가 불가능해졌고, 기업체는 자신들이 만든 무기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정치인들은 사회체제 전반을 운용하는 데 심도 있는 이해와 정책의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1차 대전 당시 독일 합참이 세워놓은 슐리펜 계획은 개전 이후 군사동원과 프랑스 진격 등의 계획을 시간 단위로 치밀하게 짜놓은 상태였다. 그 자체로는 최고의 효율성을 담보했지만, 동시에 '한번 전쟁이 시작되면 누구도 멈추는 게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19세기 발전을 이끌었던 합리적·과학적 사고들이 다른 한편으로 파국을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19세기에 잉태된 합리적, 과학적 사고는 20세기 들어 군사 분야를 넘어 경제, 정치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특히 금융산업은 이런 문화가 극도로 발달했다. 금융시장을 자연과 같은 객관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학 기술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거나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가 팽배했다. 미국 금융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금융공학의 산물인 부채담보부증권(CDO) 유통에서 비롯됐다. 부분의 합리화가 전체의 파국을 가져오는 이러한 구성의 모순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20세기 파국도 가져왔다.
민족주의 역시 100년 전의 파국과 현재의 위기의 공통된 원인이다.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은 민족국가 수립의 열망을 지닌 세르비아 청년의 총구에서 비롯됐다. 2001년 9·11 테러는 과거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종교 민족주의가 정치적, 폭력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이라크전쟁의 계기가 됐고, 이라크전쟁은 군산복합체 등 부실기업의 구조 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글로벌 금융 위기의 간접적인 원인이 됐다.
역사를 교훈 삼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100년 전의 잔상을 보게 된다. 특히 1차 대전으로 그 이전 100년의 평화와 번영이 깨졌듯, 지금의 우리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뒤 주기적으로 위기가 반복되는 어둡고 긴 터널에 들어서 있다. 1873년 빈 증시 폭락으로 촉발된 20년간의 대공황은 과잉생산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과잉생산이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향후 어디로 가야 할까. 변혁과 위기의 시대에는 역사를 교훈 삼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기업 내에서도 각 부문이나 개인이 최고의 합리적 선택을 할지라도 기업 전체에는 위기가 오는 '구성의 역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위기에 늘 깨어 있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 아니겠는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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