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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폐암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안철수 대표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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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에 김철중의 생로병사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김철중의 메디컬 CSI라는 칼럼을 썼다. 한 때는 메디TV에서 김철중의 헬스파일이라는 국내 최초 의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 14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심폐소생술을 배우자, 나트륨을 적게 먹기 기획, 중병 앓는 응급실 체험 르포 등의 기사를 통해 사회 구조와 의료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만든다는 메디컬 소시올로지가 의사와 기자 두 개의 눈을 가진 그의 지론이다. 대한암학회,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대한과학기자협회 등이 주는 언론상을 수상했다. 2013년 7월부터는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으로 선임돼 활동 중이다. - 조선일보에 김철중의 생로병사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김철중의 메디컬 CSI라는 칼럼을 썼다. 한 때는 메디TV에서 김철중의 헬스파일이라는 국내 최초 의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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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경색증으로 투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는 묘한 인연이 있다.
1999년 말 이 회장은 건강 검진에서 쇄골 뼈 아래 부위에 커진 림프절이 발견됐다. 이런 경우 결핵성 림프염이거나 몸속 어디서인가 암세포가 전이돼 온 상황을 의심해야 한다. 이에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CT를 찍었다. 폐 CT에서 커진 림프절이 하나 더 관찰됐다. 오른쪽 폐와 왼쪽 폐 사이의 공간을 종격동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서도 커진 림프절이 보인 것이다. 이곳은 흔히 폐암이 있을 경우 암세포가 잘 전이되는 곳이다.
하지만 폐에 폐암 자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의료진은 림프절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전이를 일으킬만한 암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림프절만 커져 있기에 폐암이 의심되어도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때 조직검사를 해서 나온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고 폐암이라고 진단한 의사가 당시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조교수를 하던 안철수 대표의 부인 김미경(현 서울대 의대) 교수라고 한다. 삼성 그룹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 회장 암 발병 여부를 김 교수가 가장 먼저 봤고, 이를 병리과 교수들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결국 종합 토의 끝에 이 회장의 커진 림프절은 폐암이라고 최종 진단됐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
김미경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을 그만두고 2002년경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법학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의사이면서 변호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성균관대 의대로 복귀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안철수 대표와 함께 카이스트에 이어 서울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안철수 대표는 많이 알려졌다시피 만성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이다. 2002년 안철수 연구소 소장 당시 간염 증세가 심해서 투병 생활을 몇 개월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을 개발한 안 대표였지만, 생물학적 바이러스와도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안 대표의 B형 간염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의사가 서울대 의대 선배이면서 삼성서울병원 내과 교수인 ○모씨이다.
안 대표는 당시 B형간염과의 전투에서 몸을 회복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컴퓨터도 무리하게 쓰면 쉽게 망가지고 성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 몸도 휴식 없이 혹사하면 제 기능을 잃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간염을 치유한 비결을 묻자, 안 대표는 “주치의가 하라는 대로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나중에 간질환 전문의들의 모임인 대한간학회 학술행사에서 자신의 간염 치유 경험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찌 됐건 삼성 이 회장은 안 대표 부인으로부터 폐암 진단을 받았고, 안 대표는 이 회장이 세운 삼성서울병원에서 간염 치료를 받고 회복됐다.
- 故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왼쪽)과 故한용철 삼성서울병원 초대 원장
이병철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1980년대 중반에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이병철 회장 주치의는 서울대 교수로 있던 한용철 박사였다. 이병철 회장은 폐암 수술을 받고 병세가 회복되는 듯했으나 1987년 78세의 일기로 삶을 마쳤다. 이병철 회장은 죽기 전 본인이 직접 암 투병생활을 하면서 암 전문병원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삼성 공익재단을 세우고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 같은 세계적인 규모와 시설의 암병원 설립을 추진했다. 그 유지를 받든 것은 이건희 회장이었다.
암병원을 세우려는 당초 계획은 종합병원 건립으로 수정됐고, 1994년 삼성서울병원이 문을 열었다. 초대 원장에는 한용철 박사가 이병철 회장의 주치의였던 인연으로 초빙됐다. 삼성의료원 의료원장을 역임한 한용철 박사는 1997년 아이로니컬하게도 본인의 전공분야인 폐암 진단을 받았다. 한 박사는 2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1999년 시신을 의학연구용으로 내놓고 삶을 마감했다. 한국 경제를 일으킨 재계의 거물이 폐암과 싸우다 쓰러지고, 그 주치의도 뒤를 따른 것이다. ‘한국 삼성’을 ‘글로벌 삼성’으로 키운 이건희 회장도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이 회장은 폐암에서 벗어났지만, 지금은 심근경색증과 힘든 투병을 하고 있다. 일시적인 심장마비 후유증으로 인한 뇌손상 여부가 ‘인간 이건희'로 남을지, ’글로벌 삼성 이건희‘로 이어갈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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