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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선진국 금융 완화정책 약화?

선진국 금융 완화정책 약화?
조회 2865
2013.05.24

선진국 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금융 완화정책이다. 정책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유럽 경제가 그렇게 나쁜 와중에 주가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따라서 향후 시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금융 정책 변화 여부를 예측해 보는 게 필요하다.

 

 

목표가 달성될 경우 정책이 바뀔 수 있어

 

우선 어떤 조건이 되면 정책이 바뀔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 보자.

 

가능성은 세 가지다. 첫째는 정책 목표가 달성될 경우다. 미국 정부가 양적 완화 정책을 처음 시행할 때 실업률이 6.5% 밑으로 떨어지거나 물가 상승률이 2.5%를 넘으면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얘기했다. 따라서 경제 지표가 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금융 완화정책은 당연히 바뀔 것이다.

 

그전이라도 경제가 충분히 회복돼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고 판단할 경우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순차적인 양적 완화 철회 얘기가 나온 게 이 경우에 해당한다. 현재 예상으로는 월별 850억 달러인 채권 매입액이 하반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연말에 전체 매입 프로그램을 끝내지 않을까 생각된다. 금융 완화정책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의 정책 변화도 시장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물가 때문에 정책이 바뀔 가능성 희박

 

물가 때문에 중앙은행이 어쩔 수 없이 완화 정책을 철회할 수도 있다.

 

정부가 금융정책을 펼 때 가장 신경 쓰는 게 물가다.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 공급을 늘리다 보면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정책 효과가 반감되는 건 물론 정책이 중단되기도 한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낮은 물가 덕에 어렵지 않게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해 왔다. 지금도 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1.1% 상승에 그쳤다. 우리나라와 유럽도 1.2%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지역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당분간 이 상태가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 세계 경제는 물가가 오를 구조가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국가가 세계 경제에 참여하면서 생산 능력이 크게 늘었다. 개방 확대로 신흥 국가 제품이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걸림돌도 줄었다. 이런 완충 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가고 각종 원자재 가격이 사상 최고를 기록해도 심각한 물가 불안이 나타나지 않았다.
 
물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지면서 선진국 정부의 금융정책이 더 과감해졌다. 일본은 물가 목표를 정해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확장 정책을 계속할 계획이고, 미국도 물가 수준을 금리 결정 요인으로 삼았다. 정책 당국이 당분간 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들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물가가 오랜 시간 낮은 상승률에 머무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상태다. 90년대 미국 경제가 같은 형태였다. 당시 미국 경제는 낮은 물가와 높은 성장을 동시에 누렸는데 근 15년 만에 물가에 관해서는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산 가격 버블화에 대한 우려, 정책 변경의 중요 요인

 

마지막은 자산가격이 지나치게 오를 경우다.

 

물가가 낮아도 자산가격이 계속 오르면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 힘들다. 버블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의 양적 완화가 과연 비용만큼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 의문이며, 선진국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구사하면 일본은 국내총생산의 7%, 유럽과 미국은 각각 6%와 4% 정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 완화 정책이 목표로 했던 실물경제보다 자산 가격에 더 영향을 미쳐 반대 정책을 폈을 때 그만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경제가 좋지 않아 부양책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그림이 어쩐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제 자산 가격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으로 부상했다.

 

현재 주요 자산 가격이 부담스러운 수준에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선 채권이 그렇다. 금리가 0%대로 떨어지면서 채권 가격이 사상 최고치까지 올라왔다. 그 영향으로 미국 정크 본드 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있는데, 가격 급등과 함께 투자자들이 신용도와 관계없이 무조건 매수에 나서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지난 6개월간 미국 주식시장이 상승한 방식은 과거 유례를 찾기 힘든 형태였다. 190일 넘는 기간 동안 5% 조정 조차 나타나지 않아 최장 기간 강세장이 유지됐다. 연간 기준으로 따져도 최고의 호황기였던 1995년의 33% 상승을 이미 초과하는 형태다. 그만큼 펀드멘탈과 격차도 벌어졌다.

 

금융자산만큼은 아니지만,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경기 회복 조짐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이지만, 금융완화 정책이 상승 요인이란 점에서는 채권이나 주식과 다를 게 없다.

 

앞으로 선진국 금융 정책에서 자산 가격이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될 것이다. 물가는 상승률이 낮아 당분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경제를 가지고는 현재의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핑곗거리를 찾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자산 가격이 정책을 바꾸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부가 관리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자산 가격이 높아지면 금융 완화 정책을 바뀔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가 자산 가격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양적 완화를 둘러싼 논쟁 시작.

 

버냉키 FRB 의장은 미국 상하원 합동 청문회에서 성급하게 통화 정책 규모를 축소할 경우 금리가 일거에 상승할 수 있고, 경제 성장이 늦어지거나 끝날 수 있으며 인플레가 추가 하락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얘기했다. 통화 정책이 상당한 이득을 주고 있기 때문에 노동 시장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때까지 자산 매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고용시장 개선세가 유지되고, 이것이 지속될 것이라 확신한다면 향후 개최될 FOMC 회의에서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상반된 얘기를 하기도 했다.


4월 말 개최된 FOMC 회의에서도 양적 완화 정책의 향방을 둘러싸고 이견이 제기됐다. 다수 위원들이 경기 회복세가 지속될 경우 빠르면 6월 회의에서 양적 완화 정책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전후 사정을 감안할 때 이미 미국의 금융 완화정책은 1) 아직 경제 지표상 예정했던 정책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현재 경제 상황이 최고 수준의 완화책을 사용할 정도도 아니라는 인식과 2) 주가를 비롯한 자산 가격 급등으로 더 이상 정책을 유지할 근거가 약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완화 정책의 순차적인 약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완화 정책이 약해진다 해서 즉각 선진국 주식시장이 하락하고 그 여파가 국내 시장으로 옮겨오는 건 아니다. 그러기에는 현재 선진국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가 너무 강하다. 아직 전환점을 만드는 과정의 첫 번째 걸림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지금 시장이 위험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세계 3위 규모를 가지고 있는 일본 주식시장이 6개월 만에 80% 상승했다. 6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이 사상 최고치의 주가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투자자들이 유동성과 금융 완화정책을 맹신하고 있지 않는 한 나오기 힘든 모습이다.

 

‘유동성 장세는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두에게 행복을 주지만 끝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경험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