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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정절벽' 피하려다 오바마 파국 맞을 수도

입력 : 2013.03.13 23:04

GDP 대비 15% 이른 美 정부 부채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 우려
국가 파산 겪었던 영국·스페인… 나라 망하거나 정권 교체돼
미국이 빚으로 호황 누리기보다 건전 재정 택해야 우리에게도 유리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의 정부 부채 상한(debt ceiling)과 이를 둘러싼 '재정절벽(fiscal cliff)' 논란이 세계적 관심사다. 지난 1월에는 재정절벽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일단 채무 한도를 4개월간 한시 증액했다. 이미 채무 상한을 넘어섰기 때문에 공화당이 타협해 준 미봉책이었다. 3월 1일부터 '지출 자동 삭감제(sequester)'가 발효되었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또다시 유보, 폐기하려 한다. 3월 27일 이전에 남은 회계연도인 9월까지의 지출 계획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1995년처럼 정부가 폐쇄(shutdown)된다. 그때까지 협상 시간이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와 재정 균형을 강조하는 공화당과, 단기적이나마 경기 회복을 꾀하려는 백악관·여당·중앙은행 간 갈등이다.

재정절벽을 끝내 회피하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국가 부도(sovereign default)로 이어질 것이다. 케인스 거시경제학이 뿌리내린 후 그 처방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대처 때만큼 적극적으로 실행된 적이 없다. 미국은 '양적완화'란 이름으로 기준 금리 인하, 각종 채권 매입 등을 추진했다. 또, 덜 걷고 많이 쓰는 '불황 재정'에 돌입했다. 이미 GDP 대비 4% 수준이던 재정 적자가 2008년 위기에 대응하느라 2009년 이후 15% 선으로 올랐다. 현재 상당히 줄었지만 정부 부채 총누적액이 GDP의 110%나 된다. 적자 재정과 정부 지출 팽창은 민간 투자를 위축시킨다고들 하나 미국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재정 정책을 뒷받침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국가 파산, 부채 구조조정, 탕감, 만기 연장 등의 역사는 길고 다양하다. 세수가 모자라면 차입에 의존하고 상황에 따라 화폐 발행을 늘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정부는 공신력을 잃고 국가가 망하거나 정권이 바뀐다. 예컨대 과거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과 함께 모범적인 재정 국가가 되었지만, 1340년 에드워드 3세의 부도 이후 1472년, 1594년에 연쇄적으로 국가 파산을 겪었다. 헨리 8세는 주화의 금속 함량을 낮춰 정부 부채 부도 효과를 냈으며, 수도원 토지를 몰수해 매각하는 조치로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다.

16~17세기에 대서양을 주름잡던 스페인이 손을 든 사례도 있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카를로스 5세의 뒤를 이은 펠리페 2세의 재정 파탄을 풍자한 것이다. 스페인의 무리한 제국 팽창 시도와 이들에게 돈을 대던 당시 최고의 국제금융 그룹 푸거(Fugger)가(家)의 동반 몰락은 유명하다. 국가 파산 사례에서 19세기 말 이집트도 빠질 수 없다. 알리 파사의 근대화 집착, 이에 따라 도입된 외자 등이 초기에는 잘 굴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국제적 압력과 도급 기업들의 유착, 특히 취약한 금융 때문에 결국 채권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점령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19세기는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파산이 이어진 세기였다. 이들은 파산하고서도 계속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며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를 유치하고자 했다.

요즘 빈번한 지방정부 파산도 맥락이 같은 일이다. 현재 최대 채무국인 미국은 19세기 초에도 채무국이었다. 그때는 주정부 파산이 많았다. 재산세 부과 대상 토지가 증가하고, 땅값 상승을 낙관적으로 예상한 사람들이 운하, 은행, 철도 투자에 열을 올렸다. 주정부의 공채가 1830년대 한동안은 주민들과 런던 시장에서 소화되었으나 1841~42년에 8개 주가 이자 지불을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연방정부의 부도 사례는 주로 전쟁과 관련되는데, 독립 후 미국은 1790년에 이자 지불을 1801년까지 미뤘다. 남북전쟁을 치르며 빌린 돈을 불환지폐로 갚으려는 시도(1862)는 1869년에 위헌판결이 났다.

미국에만 있는 부채 상한제는 1차대전 때 도입되었다. 상한을 넘지 않는 한 의회 승인 없이 재무부 증권을 자유롭게 발행할 재량을 행정부에 준 것이다. 장기적 균형예산을 목표로 1985년에 시도했던 지출 자동 삭감제는 2011년에 정부와 의회의 합의로 올해부터 10년간 1조2000억달러를 삭감하기로 했다. 이제 역설적이게도 정부 측이 부채 상한제와 지출 자동 삭감제를 비켜 가려 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재정절벽이냐 국가 부도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 당연히 재정절벽, 하드랜딩을 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연금, 의료 등 경직성 경비를 조정하고 공공 부문 효율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못 가 나라 살림 무능력자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미국이 과도한 빚으로 호황을 누리기보다 건전 재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미국 경제에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