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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책

[經-財 북리뷰] 신용 천국의 몰락

입력 : 2013.02.24 14:20 | 수정 : 2013.02.24 14:31

리처드 던컨 지음, 김석중·조윤남 옮김 | 인카운터 | 272쪽 | 1만4500원

빚 없이 살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우연히 혹은 불가피하게 빚을 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결혼 자금 목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업 자금이 수중의 여력을 넘어설 때도 있다. 보다 큰 집으로 옮겨가야 할 때도 은행에 손을 빌린다.

정부라고 다를 게 없다. 경제는 성장을 먹고 산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 생산력이 줄어드는 정부는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 그렇다고 경제라는 게 늘 뜻대로 따라주는 것도 아니다. 불황의 찬바람이 불어닥칠 때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다. 정부도 어떻게든 빚을 얻어 시중에 돈을 풀어야 한다.

실제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게 해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쉬운 방법을 모를 리 없다. 특히 화폐를 금의 가치에 묶어두는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부터 정부는 빚에 익숙해졌다. 경기가 나락으로 떨어지던 20세기초 대공황 시기, 영국을 필두로 서구 각국은 하나 둘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빚을 자연스럽게 일상화한다. 필요할 때마다 돈을 찍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풀린 돈의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52조달러에 달한다고 말한다. 우리 돈으로 5경원이 넘는 규모다. 상상이 가는가. 우리나라 1년 예산을 300조원으로 잡았을 때, 2200년까지 세금 한 푼 안 걷고도 국가를 운영할 수는 돈이다.

돈을 찍어 경제를 살린다는 얘긴 새로운 게 아니다. 언뜻 미국이 떠오를 수도 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만 2조달러 넘는 돈을 풀어 경기를 살렸다. 하지만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을 보자. 중국은 매년 수천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외환보유고만 3조달러가 넘는다. 만약 이 돈이 한꺼번에 중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위안화가 급격히 절상됐을 거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중국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위안화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오로지 늘어난 달러를 상쇄시키기 위해 화폐를 찍었다. 달러는 중국에 들어오지 않은 채 세계를 돌며 글로벌 경기부양에 쓰였다. 무엇보다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적잖은 금액이 소요됐다. 덕분에 중국은 환율 안정을, 미국은 국채를 팔아 소비를 일으켰으니 서로 윈윈한 셈이다.

저자는 이제 글로벌 경제가 ‘화폐 중심’에서 ‘신용 중심’으로 변모했다고 진단한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신용의 질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적정선을 넘어버린 결과였다. 신용 역시 꾸준한 확대를 전제로 한다. 여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과한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이 전제에는 금이 간다. 잘 돌던 돈이 멈춰서자 자산 가격과 상품 가격이 폭락했다. 그제서야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이 모두 거품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큰 충격을 받았으니 이젠 달라질까? 저자는 여전히 걱정을 앞세운다. 우선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처방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버냉키는,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양적완화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저자는 버냉키가 “대공황에서 배운 잘못된 교훈을 적용하고 있다”고 평한다. 신용으로 만든 호황은 결국 터지고 만다는 교훈은 뒤로 한 채, 자칫 신용을 줄이려 하면 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만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버냉키와 글로벌 중앙은행 총재들은 더 큰 버블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려 한다.

물론 신용과 함께 성장해 온 경제 성장을 하루 아침에 되돌릴 순 없다. 신용 확대가 중단되면 불황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부분에서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좀 실망스럽다. ‘경제 성장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투자자들은 분산 투자로 위험을 회피해야 한다’는 식이다. 달러가 다른 통화에 비해 가치를 잃을 것이란 진단도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재정 거품이 왜 생겨났으며 경제가 파탄난 이유와 변화를 담담하게 짚어낸 작가의 통찰 만큼은 시의적절하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성과라면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