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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금 움켜쥔 기업들 "모든게 불확실… 투자 못하겠다"


[기업들 줄줄이 투자 중단]
"대내외 경기 불안" 투자 취소… 포스코 5000억 삭감
대기업이 물량 안주니 중소기업들도 비상 상황 몰려
"내수 기반 약한 한국, 기업투자 줄면 경제 전반 위기"

한국의 대표적 태양광 업체인 OCI의 폴리실리콘(태양광 원재료) 군산산단 4공장 안은 설비가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지난 5월 4공장 건설 작업을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이 공장과 새만금산단 5공장 건설을 멈춤으로써 3조원 규모 투자비 지출을 아꼈다.

투자 재개 시기는 오리무중이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시장 가격 등 불확실한 경기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폴리실리콘 시장 가격은 2008년 ㎏당 300달러에서 현재 20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국내 기업의 투자 취소 또는 유보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전방 산업인 조선·건설 등의 경기 불황으로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 포스코도 투자 규모를 5000억원 줄였다. 심동욱 포스코 재무실장은 최근 "집행 시기 조정 등을 통해 올해 초 8조9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계획을 8조4000억원으로 조정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는 원가 절감 위주로 경영을 해나가고 있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면 본격적인 감산을 의미하는 마지막 5단계 시나리오 경영 전략을 가동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투자 감소는 제조업에서 집중

한국 기업의 투자 감소는 제조업일수록 더 심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동안 제조업으로 먹고살던 한국 경제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의 기계 수주 증가율(설비 투자 증가율)은 지난 8월 전년 동기 대비 34.8%나 줄어드는 등 올 2월부터 8월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작년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12.8% 증가하고 2010년엔 32.3% 늘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를 기점으로 투자 규모가 크게 위축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내외적인 경기 불확실성 때문이다. 경기 상황이 상저하추(上低下墜·하반기에 추락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것)로 흘러가자 나갈 돈을 움켜쥐고 투자 계획을 거둬들이는 등 기업 현장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천안·아산 지역에 몰려있는 반도체 장비 협력업체들은 하반기 이후 대기업 발주 물량이 크게 줄어 비상이 걸렸다. 지역 제조업체 A 사장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예전과 다름없이 물량을 발주하다가 하반기 들어 갑자기 투자를 동결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분위기가 내년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IT·자동차 관련 대기업이 해외에 투자를 집중하는 바람에 국내 투자율이 부진한 점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공장 신·증설에 투입된 2조원가량의 3분의 2 이상을 해외 공장에 투자했다. 현대·기아차의 한 생산 담당 임원은 "국내 공장을 더 늘리고 싶어도 강성 노조와 생산 효율 때문에 도저히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 투자에 다시 관심 가져야

기업 투자위축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JP모건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은 올해 3분기 기준으로 1조5000억달러(약 1650조원)에 육박해 역대 최대 규모에 달했다"고 전했다. 경기가 불확실해지자 일단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경제 사정은 다르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내수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기업 투자가 줄어들면 경제 전체가 위태롭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경제 민주화 같은 정치 구호에만 신경을 썼지, 경제 근간을 이루는 기업 투자에 대해선 소홀했다"며 "우리가 성장하려면 기업 투자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최악의 투자 위축이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