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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플레 일으켜 빚 갚기 쉽게 하라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 위기의 해법, 세계 석학에 듣는다… 케네스 로고프

800년간 세계 국가 채무 분석… 4년새 56% 늘어
부유층 세금 20~25% 늘리고 기업 투자 촉진을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그는 기자가 묻는 질문마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으며 괴로움도 여러 번 표시했다. 800년간 66개국의 국가채무 수준을 분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2009년)'를 출간, 차기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히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를 이달 초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만났을 때였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그는 "지금 글로벌 저(低)성장의 핵심 원인은 최악의 부채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에 따르면, 세계 국가부채는 2008년 32조달러에서 올해 50조달러 돌파가 예상된다. 4년 만에 56% 늘었다. 작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국가부채 비율(67.7%)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1년(66.9%) 이래 60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세계 GDP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미국과 유로존이 세계 부채의 52%를 차지한다.

―지금 경제 위기의 원인이 국가부채라고 말하는 이유는?

"빚이다. 지금은 구조적 위기이다. 모두 조용히 부채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0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이 5%로 재상승할 때 그동안 위기를 경험하지 않은 선진국들은 "에이, 역시 이번에 괜찮다"고 여겼다. 특히 미국이 그랬다. 지난 수년간 어떤 방법과 노력을 통해서라도 부채를 감축하거나 재조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앞으로 4~5년이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국이 2%대 저성장을 최장 2019년까지 하리라 본다."

―왜 부채 문제가 심각한데도 세계 각국이 이를 외면했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1~2년간 단기 재정 및 통화 정책으로 일관했다. 미국은 4년째 연간 1조달러가 넘는 재정 적자를 내면서 문제를 악화시켰다. 유럽도 10조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데 엄청 증가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가난했다면, 전 세계가 강요해서라도 문제 해결을 독촉했을 것이다. 부채 문제에서 탈출할 때에만 역사적으로 V자 모양의 경제 회복세가 이루어진다. 아직 이런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한 선진국은 진짜 해법이 뭔지 몰랐던 것이다."

―브릭스 등 신흥국들은 GDP 대비 부채 비율은 낮지만,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둔화하니까 수출로 먹고 살아온 중국 경제가 느려진다. 특히 중국은 더 이상 투자와 수출에 의존한 경제 발전을 안 하겠다며 내수 경제 활성화 과정에 돌입하면서 다른 나라들과 마찰이 생기고 있다. 중국 경제에 수출과 투자 등을 의존해온 신흥국들도 힘을 잃고 있다. 신흥국들이 자체 힘과 내부개혁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그 능력이 아직 안 된다. 예컨대 브라질은 룰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부패가 늘고 노동경직화 현상이 심화하며 민간부채가 폭증했다. 러시아, 인도도 정치·경제적인 내부 문제가 심화됐다."

―내년에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핵심 국가나 지역은?

"유로존이다. 정치적 불안과 빚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앞으로 10~15년은 0%대 성장을 할 것이다. 향후 4~5년 안에 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5개국에서 최소한 3개국이 국가부도를 낼 것이다.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300%가 넘는 아일랜드가 가능성이 제일 크다. 주요 은행 부채를 재조정하는 개혁이 필수이다. 과거 부도국을 살펴보면 부채를 몇 차례 갚더라도, 최종지불액(balloon payment·차입잔금을 치르다 마지막에 한번에 갚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다. 단기적으로 볼 때 미국 재정절벽은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어떤 미친 행동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위기를 타개할 해법은?

"먼저 유로존에선 엄청난 규모의 부채 상각(write down)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기지채권이나 국채는 수백만 가지 조건에서 발행되므로, 정치적 통합이 부족한 유럽에서 일일이 조건에 합의하기 무척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강력한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 수준이 아니라 5~6%로 올려 2년 정도 인플레이션을 임시로 일으키는 것이다. 이 경우 싸게 부채를 상환할 수 있고 실질임금도 축소되지 않는다. 잠시 물가를 높이자는 것이다. 지금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위기다. 극단적 처방이 필요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필요하다. 부자 대상으로 세금을 20~25% 늘리고 상당한 현금을 보유한 기업들은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해 실물경제를 살려야 한다."

―중국 경제는 어떤가.

"2020년까지 중국이 금융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포르투갈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금융 위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주택지표는 금융 위기를 예고하는 핵심 지표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 전 5년간 주택가격이 100% 상승했고, 2008년 초 모기지 채권의 전체 합계가 GDP의 90%였다. 중국도 답은 뻔하다.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줄여야 한다."

―세계경제는 이제 무(無)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나?

"아니다. 산업화 초기단계인 신흥국의 성장 잠재력이 높은데다, 앞으로 30년간은 기술혁신이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앞으로 현실은 아주 느린 성장을 하며 때로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할 수 있다. 내후년까지 -5% 성장할 가능성은 10~15%이며 -1% 성장은 조금만 잘못돼도 쉽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