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의 다른 국가들보다 공공재정 상태가 훨씬 더 건전하기 때문에 이웃 국가들의 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스웨덴 복지 발전 연구의 권위자인 스벤 호트(Sven Hort) 교수는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등 노르딕 국가들의 경제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의 무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 국가들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그러나 노르딕 국가들의 국가재정 상태가 다른 EU 회원국들보다 더 건전하다는 점에서 위기 대응 능력은 훨씬 높다”고 평가했다.
호트 교수는 스웨덴 스톡홀름대를 거쳐 쇠데르텐대와 린네대에서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의 복지 모델을 연구해왔다. 호트 교수는 올해 가을 학기부터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복지정책에 대해 강의하며 동아시아의 복지정책 발전 과정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조선비즈 창간 2주년을 기념한 인터뷰는 최근 서울대 캠퍼스에서 진행됐다.
호트 교수는 유럽 재정 위기의 앞날은 그리스나 포르투갈, 스페인 등 개별 국가의 정책보다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공조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최근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유로존 신 재정협약의 핵심인 재정 긴축에 반대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대표가 당선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유로존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보폭을 맞춰왔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재정 긴축보다는 성장을 강조하는 올랑드가 전면에 등장함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호트 교수는 “프랑스 정권 교체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급격히 달라진다면 유로화 체제가 깨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 그리스 정국이 혼란스럽다. 그리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그리스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거의 해결됐다고 본다. 물론 그리스 내부는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나 선거에 따른 정치적 혼란 등으로 어지러운 상태다. 이런 것들이 그리스의 위기 해결을 더 복잡하게 만들긴 하지만 크게 보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관건은 프랑스 선거 이후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 변화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유로존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한 프랑스와 독일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불확실성이 커졌다.”
- 그리스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음에도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의 반감이 심하다.
“그리스 가구의 임금은 3분의 1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유로화가 그리스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 국민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은행의 잘못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은행의 잘못으로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을 잘 못 받아 들이고 있다. 긴축 조치가 인기가 없다. 그리스 국민은 정부가 은행이 아닌 국민을 대변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시위가 일어난다. 그리스의 세금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도 구제금융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스페인은 경제 규모가 다른 구제금융국들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스페인의 위기가 유로존 단결을 위한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합의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나 유럽안정기구(ESM) 등의 협약이 효과를 낼 것이다.
문제는 유로존을 지키고자 하는 독일의 의지다. 유로존 외부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스웨덴, 폴란드, 체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국가들이 있다. 이 국가들은 유로존에 속해 있지 않고 자국 통화를 가지고도 경제 상태가 양호하다. 그만큼 유로화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사르코지와 달리 프랑스의 새로운 대통령(올랑드)은 유로화의 방어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가 급격히 달라진다면,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프랑스보다는 독일이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올랑드의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상황이 달라졌다. 독일은 다른 국가들이 독일의 주도력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 유로존에서 특히 남유럽 국가들이 문제가 된 이유는.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이 국가들은 원래 유럽공동체의 일원이 아니었다. 이들 국가는 독재를 경험했다. 남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하게 된 것은 EU가 남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EU에 속하게 된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EU의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스페인은 남유럽 중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뤄냈지만 지역별로 고르게 발전하지 못했다.
첨단산업이 아닌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경제 구조도 위기 발생의 한 원인이었다. 유로존 회원국이라는 것은 비싼 유로화로 인해 관광객 입장에서 비용이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관광객들이 베트남이나 태국 등 아시아의 더 싼 관광지로 발길을 돌리면서 남유럽 국가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이다.”
- 유로존이라는 공동통화 체제가 무너질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아직은 말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프랑스가 대선을 치렀지만 6월 총선 결과를 두고 봐야 한다. 독일이 유로존에서 프랑스를 동맹으로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어느 수준까지 부담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독일은 긴축을 고집하고 있지만 유럽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도 신경을 쏟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연대가 깨지면 유럽에서 영국과 미국의 발언권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게 독일이 우려하는 것이다.”
- 북유럽 4개국(스웨덴ㆍ덴마크ㆍ노르웨이ㆍ핀란드)은 유로존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은데.
“그런 편이다. 국가재정이 괜찮은 상태다. 과거 경제 위기를 한차례 겪은 점이 공통점이다. 1980년대에 먼저 덴마크에서 위기가 발생했고 1990년대 초에 스웨덴과 핀란드도 위기를 경험했다.
핀란드를 제외한 3개국은 유로화를 쓰지 않는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EU 회원국이지만 유로존에 속해 있지 않다. 통화가 따로 있다. 노르웨이는 EU 회원국도 아니다. 핀란드만 유로화를 사용하는데, 핀란드는 휴대전화 제조나 임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 북유럽 4개국에서 재정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북유럽 국가들의 재정ㆍ금융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물론 EU 국가들과 무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 국가들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겠지만 강도는 세지 않을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국가재정 상태가 다른 EU 회원국들보다 훨씬 더 건전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헤쳐나갈 능력이 더 큰 셈이다.”
◆ 스벤 호트는
스웨덴과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모델 발전을 연구해온 사회ㆍ경제학자다. 스웨덴 스톡홀름대를 거쳐 쇠데르텐대와 린네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쇠데르텐대에서는 부총장직을 맡았다. 그가 쓴 ‘스웨덴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는 복지 연구 분야의 필독서로 꼽힌다. 올해 가을 학기에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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