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차례로 강등된다. 이로 인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용등급 역시 강등될 위험이 높아져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용자금의 규모가 대폭 축소된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공포가 다시 급증하는 가운데 지원군 역할을 해야 할 미국과 중국 역시 경기둔화로 인해 구원의 손길을 뻗치지 못한다.
올해 유럽 재정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다. 지난 달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신용평가사들의 경고가 현실이 될 경우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혼란은 지난 해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 유로존 리더 佛, 첫 신용등급 강등 희생양 될 가능성 높아
독일과 함께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 국가)을 이끄는 양웅(兩雄) 중 하나인 프랑스는 올해 첫번째 신용등급 강등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달 말까지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여부를 발표하는데 이미 지난 달 프랑스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프랑스는 재정적자 규모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는 데다 최근 경제지표 마저 부진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아울러 그리스 등 재정위험국에 대한 은행의 노출 규모가 가장 큰 것도 등급 강등 요인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지난 2010년 기준 7.1%로 독일의 3.3% 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지난 해 기준으로는 8%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나오고 있는 프랑스의 주요 경제지표도 등급 강등 전망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지난 달 26일 나온 프랑스의 11월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전년대비 5.2% 증가했다. 실업률 역시 지난 해 3분기 9.3%를 기록해 9.1%를 기록했던 2분기 보다 상승했다. 성장률 역시 지난 해 1분기 0.9%에서 2분기에는 0%, 3분기 0.3%로 부진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프랑스의 등급을 한 번에 두 단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신용등급 강등을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프랑스 금융시장청(AMF)의 장 피에르 쥬예 의장은 “프랑스가 현재의 등급을 유지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지난 달 “신용등급이 강등돼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 강등을 각오한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 獨·英도 등급 강등 위험수위… ‘등급강등 쓰나미’ 시작될 수도
신용등급 강등은 프랑스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유로존 국가 대부분이 재정위기 전염 우려로 신용등급 강등 위험권에 들어선 가운데 재정이 건실한 독일마저 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 달 5일 S&P는 독일을 포함한 유로존 15개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그리스와 키프로스가 사실상 등급이 최하위인 점을 감안하면 유로존 전체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뜻과 다름 없다.
독일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재정이 건실하지만 유로존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어 유로존 전체의 재정위기가 닥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최근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고 있어 버텨낼 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만약 독일의 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 될 경우 유로존 여러 국가들의 등급이 모두 강등되는 ‘쓰나미’가 벌어질 우려가 크다. 유럽에서 재정이 가장 탄탄한 국가로 꼽히는 독일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다른 국가들의 등급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시킬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로존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 역시 등급 강등 위험은 크다. 무디스는 지난 달 20일 영국이 막대한 재정적자와 저성장, 유로존 위험 영향 등으로 인해 최고 등급인 ‘AAA’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EFSF 가용자금도 축소 우려… 재정위기 해결 사실상 어려워져
문제는 이처럼 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현실화 될 경우 재정위기를 치유하는 데 쓰여야 할 EFSF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피치는 지난 달 20일 “현재 최고 수준인 ‘AAA’ 등급을 받고 있는 EFSF가 등급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프랑스에게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EFSF는 유럽 국가들이 낸 돈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들의 지급보증을 통해 신용등급을 유지한다. EFSF에 대해 프랑스는 2110억유로를 보증하는 독일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585억유로를 보증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돼 보증여력이 줄어들 경우 EFSF의 신용등급 역시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비단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EFSF에 일정 비율만큼 지급보증을 하고 있어 이들의 신용등급 강등은 곧 EFSF의 등급에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된다.
현재 EFSF는 ‘AAA’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준비금을 통해 조달한 금액의 27%를 쌓고 있는데 만약 등급이 강등될 경우 이 준비금 비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재정위험국에 대한 지원에 쓰일 자금이 감소해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암초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 주변 국가들도 ‘내 코가 석자’… 美는 재정적자, 中은 경기둔화로 지원여유 없어
만약 예상된 수순대로 전개될 경우 유럽이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해외의 다른 국가들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중국 등 다른 국가들 역시 경제 사정이 악화돼 쉽사리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미국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재정적자 문제로 신음하고 있어 지원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유럽 지원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의 표를 의식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지난 달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유럽의 노력은 지지하지만 유럽 지원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기금 조성에는 참여할 뜻이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중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해부터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새로운 구원투수로 여러 차례 부각됐지만, 그 때마다 중국은 유럽 스스로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며 지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올해는 경기마저 지난해보다 크게 침체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럽 재정위기 해결에 중국이 나서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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