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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7900만원 연봉을 1억1200만원 만든 국책연구소

R&D 연구비 여러 부처서 불법으로 타낸 지 2년 만에…
감사원, 15개 기관 부정 적발 2년간 세금 829억원 낭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다니는 A씨는 2009년 한 해 급여로 1억10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규정에 적힌 '기준 연봉' 6000만원에 연구·개발(R&D) 실적만큼 지급되는 '기술료 보상금' 5000여만원이 더해졌다.

그러나 장부상 그가 한 해 동안 15개의 국가 R&D 과제에 참여해 받은 돈은 1억1000여만원이 아닌 1억6400만원이었다. 여기에다 연구원 내부에서 수행하는 기본 과제에 참여한 대가로 정부 출연금 4300만원을 더 타간 것으로 돼 있었다. 정부가 2009년 A씨 앞으로 지급한 돈은 모두 2억700만원에 달했다.

"서류상 연봉 2억원이 넘던데 어찌 된 일이죠?"

경위를 묻는 감사원 감사관 앞에서 A씨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꾸며놓은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조직이 하는 일이라 생각해 바로잡지 못했지요." A씨가 정당한 급여로 받은 1억1000여만원 외에 남은 약 1억원은 연구원 측이 기관 운영비 등에 전용(轉用)했다.

'인건비 부풀리기'에 동원된 연구원은 A씨만이 아니었다. 감사원은 4일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지식경제부·교육과학기술부 등 14개 부처가 극지연구소 등 15개 연구기관에 2008~2009년 2년간 잘못 지급한 인건비만 829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각 부처와 R&D 전문기관을 중심으로 작년 10~12월 두 달간 감사를 벌여보니, '편법'을 써서 인건비를 더 받아내는 풍토가 연구계에 만연해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구자들이 한 해 몇 건의 연구 과제를 하든, 소속 기관의 '기준연봉'을 넘는 인건비는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야 연구개발비를 노리고 여기저기서 과제를 따내 이중·삼중으로 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연구기관이 여러 부처로부터 과제를 받을 경우, 각 부처는 다른 부처가 그 기관의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했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에 있었다.

많은 연구기관이 이 허점을 이용해 인건비를 규정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극지연구소 등 15개 기관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 이름도 인건비 청구 명단에 올려 24억여원을 부당하게 받아냈다. 일부 기관은 이렇게 과다 지급된 인건비를 재원으로 삼아 전체 직원의 연봉을 올렸고, 또 '연구개발적립금' 명목으로 쌓아두고 기관 운영비로 쓴 경우도 적발됐다.

전자부품연구원은 2009년에만 76억원을 부당하게 더 받아내 전 직원 370명에게 특별상여금 21억원을 지급했고, 2008년 평균 7900만원이었던 연구직 직원 급여를 2010년 1억1200만원으로 크게 올렸다. 심지어 감독 책임이 있는 지경부도 '국제기술인력양성사업'에 배정된 기술료를 소속 공무원의 해외 연수 비용으로 썼다. 해당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25명 중 17명이 지경부 소속이었고, 이들은 1인당 평균 8만 달러(약 8500만원)를 외국에서 교육받는 데 썼다. 그중 2명은 학비 일부를 빼돌리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