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노동 시간은 세계 1, 2위 다투는데 자본 효율성은 48개국중 34위… 사람 쥐어짜는 성장은 한계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재벌·금융구조 바꿔야
- ▲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경제는 노동, 자본, 자원을 투입해서 더 많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성장한다. 사람과 돈 그리고 원자재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요인들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의 초기에는 자본도 없었기에 가진 것은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는 노동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상당한 자본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 사람 혼자서 해낸 일을 이제는 사람과 돈이 함께 해낼 수 있는 여건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돈은 게으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국제노동기구(ILO)가 노동시간을 조사하는 대상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는 노동시간 조사에서 1등의 자리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물론 이 통계는 국가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OECD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서 조사한 통계에서도 우리나라는 임금이 지급되는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국가로 발표되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지난 10년간 노동생산성이 가장 많이 증가한 국가이다. 어떤 통계를 참고하든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국민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가 중 하나라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자본은 그렇지가 못하다. 국제투자회사인 UBS가 전 세계 48개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해 기업실적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자본의 효율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업에 투자된 자본이 생산을 통해서 얼마나 더 많은 자본으로 창출되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인 '투자자본 대비 기업가치'의 비율은 1.3으로 34위였다. 우리나라는 100원을 투자해서 130원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이다. 전 세계의 평균이 160원이고 신흥시장국가들의 평균은 180원이니 우리나라는 투자된 자본이 생산을 통해서 새로운 자본을 만들어내는 효율성이 매우 낮은 것이다. 기업이 투자한 자본금이 주식가치로 전환되는 효율성도 36위로 여전히 낮다. 기업이 만들어낸 순이익이 주가로 전환되는 비율도 35위이며, 조사 대상 아시아 국가 중에서 꼴찌였다.
자본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들에서 지난해 30위권에라도 들게 된 것은 금융위기 이후에 많은 나라가 주가가 크게 떨어진 반면에 우리나라는 주가가 올랐기에 상대적으로 순위가 올라간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에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기업에 투자된 자본이나 기업이 만들어낸 이익을 기준으로 평가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자본가치는 지나치게 낮다. 이러한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한 것을 두고 국제투자업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많은 이익을 내고 노동생산성도 꾸준하게 향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일한 결과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효율성에서는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나라는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돈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자본이 넘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자본은 선진국들의 자본보다 더 당당하고 소중하다.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이후에 기술혁신으로 자본을 축적했지만 많은 부분은 식민지의 자원과 노동 또는 타민족의 노예노동을 착취해서 축적했다. 산업화가 선진국들보다 한 세기가 뒤진 우리나라는 자원도 자본도 없었으며 다른 나라나 민족을 착취한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가 가진 자본은 모두 우리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쓰지 않고 아껴서 모은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자본을 더욱더 잘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사람을 쥐어짜서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한계에 이르렀다. 우리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고도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돈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돈이 많아졌는데도 효율성이 낮은 것은 돈이 일부 재벌기업에만 몰려 있는 금융양극화가 심해져서 자본이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배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기업들과 연기금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투자를 하기보다는 부동산담보대출이나 소비자금융으로 이자장사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벌구조와 금융구조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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