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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가난에 허덕일 때 양부모님이 생겼다"

입력 : 2011.05.07 03:02

대법원 제공

"내 부모님은 네 분" 새 대법관 제청된 박병대 원장
야간高 숙식 지원받으며 인연, 장가갈 때 친부모와 함께 모셔… 5년 前 양아버지 상주 노릇도

6일 신임 대법관에 제청된 박병대(朴炳大·54) 대전법원장에 대해 동료 법조인들은 그의 어려웠던 성장 과정을 기억하며 "같은 또래지만,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말한다.

1957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 죽령(竹嶺) 너머 충북 단양으로 전학해 단양초등학교와 단양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다닐 처지가 못됐다. 그를 눈여겨본 중학교 담임교사는 서울의 환일고등학교 야간부를 추천했다. 담임교사는 가난한 학생을 보살펴줄 독지가로 서울의 한 방송사 직원을 소개했다. 자식이 없는 이 독지가는 박 원장의 숙식을 책임지며 지원했고 박 원장은 그 부부를 양부모로 모셨다. 그는 이 학교에서 낮엔 직장에 다니고 밤엔 공부했다. 그리고 환일고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 법대에 합격했고 판사가 됐다.

친구·지인들은 그에게 양부모가 있다는 것을 그의 결혼식장에서야 처음 알았다. 신부는 부모만 자리했지만, 신랑은 친부모와 양부모 등 4명을 한자리에 모셨다. "그렇게 6명의 부모를 식장에 모신 부인과 처갓집 사람들도 인상적이었다"고 지인들은 말했다. 5년 전 양아버지가 작고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랐다. 후배 판사는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상가(喪家)를 찾아갔는데 혼자서 성(姓)도 다르고 얼굴 모습도 다른 고인을 모시고 문상객들을 맞이하고 있더라"고 했다. 그 상황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문상객들은 며칠 뒤 박 원장이 보낸 '감사의 편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늘날 판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인의 따뜻한 보살핌과 가르침 덕분입니다. 고인의 곧은 성품과 자세는 제 인격 형성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박 원장은 지금도 양부의 제사를 모시고, 혼자 된 양모도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있다고 한다. 박 원장은 6일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숨길 일도 아니다"면서 "저를 올바로 키워 주신 양부모님도 친부모님처럼 똑같이 모시는 게 사람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원장은 1979년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21회에 합격(연수원 12기)한 뒤 배석판사와 지법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기획담당관·사법정책실장·기획조정실장 등 법원행정 분야의 주요 보직도 두루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