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Weekly BIZ] [Cover Story] 세계최대 화학기업… 위르겐 함브레히트 회장

검은 서류가방 든 바스프 제국 리더

전세계 380여개 넘는 생산 시설 운영, 직원 10만명 넘어
1~2명 동행하고 수시로 해외 출장

90년 이후 80개 M&A 인수된 기업은 납품업체까지
철저하게 표준화된 위험 진단 받아 위기에 맞서는 힘 키워

"최상의 팀 만들고 직원들 격려해서
목표 향해 최선 다해 달려가게 만드는게 리더의 역할"

지난 2월 독일 루드비히샤펜 본사에서 다국적 화학기업 바스프(BASF)의 전년도 경영실적 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위르겐 함브레히트(J�jrgen Hambrecht·65) 회장이 커다란 검은 서류가방을 들고 나왔다. 중국집 배달통 크기였다.

그는 2003년부터 '바스프 제국'을 이끌었다. 세계 170개국에 진출해 직원 10만명, 380여개의 생산시설을 운영하면서 작년 639억유로(약 100조원)의 매출을 올린 거대 화학기업이다. 그는 회장 재임 동안 바스프의 매출을 2배 끌어올렸다. 주가는 연평균 30%씩 늘었다. 140년 바스프 역사에 확고한 지문을 찍은 카리스마 CEO다. 하지만 그의 해외 출장에 바스프 직원은 한두명만 동행한다. 서류가방보다 더 큰 여행가방도 직접 들고 다닌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인터뷰에서 "리더는 스포츠 코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최상의 팀을 만들고 직원들을 격려해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도록 하는 역할"이란 것이다. 거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사령탑의 역할은 같다고 했다. "매니저의 성공은 그가 이끄는 팀의 성공에 달렸습니다. 내 직업은 그런 '팀 정신'을 창조해 내는 일이지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겸손만으로 기업은 영속할 수 없다. 경제위기 직전인 2008년, 바스프는 스위스 특수화학업체 시바(Ciba)를 34억유로에 인수했다. 그는 "(경제위기 국면에선)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 위기가 진정되자 다시 화장품 재료와 식품첨가제 등을 만드는 독일 코그니스(Cognis)를 31억유로에 사들였다. 1990년 이후 바스프가 인수·합병한 기업(사업부 포함)은 80여개. 1년에 4개꼴이다. 그러면서 바스프 슬하의 기업도 60여곳을 매각했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자신을 최적화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블룸버그

바스프는 신진대사를 반복하는 생물처럼 왜 끝없이 최적화하는 것일까? 함브레히트 회장은 "기업의 최종 목적은 '존속(存續)'이며, (제국의) 존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최적화를 통해 거대 리스크(risk·위험)에 맞서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3·11 대지진 직후 세계는 일본인의 질서와 인내에 놀랐지만, 정작 일본은 바스프 제국의 전광석화 같은 위기관리 능력에 놀랐다.

바스프는 지진 발생 직후,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홍콩과 일본 법인에 위기 관리팀을 동시에 설치했다. 40분 내에 피해 지역 근로자 1200여명의 안부를 확인했고, 이들 중 생활이 불편해진 300여명(가족 포함 500여명)을 피해지역과 멀리 떨어진 나고야와 오사카로 이주시켰다. 물론 교통비와 숙박비는 전액 회사가 부담했다. 일본 법인의 본사 기능도 나고야로 이전했고, 조업이 중단된 7개 공장(일본 내 전체 27개 공장)의 제품은 해외 공장의 조업 시간을 늘려 대체 생산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사업 존속' '겸손과 배려를 통한 팀워크'라는 제국 경영의 노하우가 위기 직후 신속하게 작동한 것이다. 바스프는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서 미국의 듀폰을 누르고 3년째 화학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5월 6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쿠르트 복(Kurt Bock)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줄 예정이다. 퇴임을 앞둔 그를 독일 루드비히샤펜 본사에서 Weekly BIZ가 만났다.

세계 최대의 화학공장인 독일 루드비히샤펜의 바스프 본사 전경. 10㎢ 넓이로 공장과 공장을 최장 2000㎞의 파이프로 연결해 놓았다. / 바스프 제공

"화학제국 30년 통치… 난 경제위기 때 가장 신났다"

바스프의 역사는 위기와 응전의 연속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견뎠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폐허가 됐을 때도 자발적으로 모여든 직원들이 회사를 다시 세웠다. 1970년대 오일쇼크도 버텼다. 공장과 공장을 최장 2000㎞의 파이프로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한 공장에서 나온 부산물 한 방울까지 다른 공장의 원료로 쓰며 가격 경쟁력을 키운 덕분이었다. 바스프에서는 이 대규모 공장시설을 '페어분트(Verbund·통합)'라고 부른다. 세계 최대 화학공장인 루드비히샤펜 페어분트. 암모니아 생산시설인 'A3 공장' 굴뚝의 가스 불꽃은 수십년간 성화(聖火)처럼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

위기 떨쳐낸 '겸손·배려의 팀워크'

대공황·2차대전·오일쇼크도 견딘 회사가 2008년, 80개 공장이 문닫고 주가는 폭락…
단축 근무한 직원들에 無해고로 화답했고 세계 1위로 위기 탈출… 146년 내공이 빛났다

하지만 2008년 11월 영원할 것 같던 그 불꽃이 꺼졌다. 세계 경제가 갑자기 얼어붙으면서 A3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한때 바스프의 주가는 일주일 사이에 20% 가까이 폭락했고 갑작스런 수요 감소로 2주 동안 이듬해 수익 전망을 두 번이나 고쳐 써야 했다.

바스프는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80개 공장을 일시적으로 닫고 100개 공장에서는 생산량을 줄이는 위기대응에 들어갔다. 직원들이 단축 근무를 받아들이는 대신 사(社)측은 일정기간 해고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바스프는 경제위기 직후 전 세계 화학기업 가운데 가장 빨리 위기에서 탈출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바스프의 주가는 43% 올랐다. 같은 기간 독일 주식시장이 16%, 세계 화학업종의 주가를 나타내는 MSCI(모간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화학업종지수는 20% 올랐다.

위르겐 함브레히트 회장은 위기 극복의 공(功)을 모두 직원에게 돌렸다. "바스프의 비밀을 알려드리죠. 바로 좋은 팀입니다. 좋은 팀과 함께하면 일이 즐겁고, 쉽고, 마지막에는 결과도 좋습니다."

장수 비결? 끊임없는 '재발명'

―지난 세계 경제위기는 바스프에 큰 위기였습니다.

"제가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수준이었어요. 더구나 기자와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십개의 공장을 닫는다고 말하는 일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얻은 것도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 바스프 직원들은 하나가 됐고, 그전까지 우리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까지 해냈습니다. 직원들이 보여준 유연성과 서로를 돕겠다는 의지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지난 경제위기가 30년 넘는 제 바스프 경력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몇 차례의 큰 위기에도 불구하고 1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스프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혁신과 전통의 결합입니다. 1865년 이래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재발명(reinvent)'해왔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체성에 충실했습니다. 우리는 화학 사업을 잘 해왔고,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성장을 뒷받침할 포트폴리오를 짜 왔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The Chemical Company('바로 그 화학회사'라는 뜻으로 화학업계의 최고, 1위라는 뜻)'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는 '거대하지만 느린 공룡'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몇개의 큰 기업집단이 전 세계 화학산업을 지배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화학산업이 다변화돼 다들 특성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바스프는 포트폴리오를 더 발전시키는 동시에, 특정 제품군뿐 아니라 여러 시장에 걸쳐 강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우리 고객은 자동차, 건설, 미용용품, 농업, 의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경쟁력 측면에서 큰 장점이라고 봅니다."

―경제위기 전후 금액으로 총 60억유로가 넘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단행했습니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할 때였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부단히 개선해 최적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소비자에게 가깝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좀 더 혁신적인 솔루션(해법)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 일환이었습니다. 바스프는 이런 노력을 통해 수익을 거두고, 경쟁이 치열한 화학시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경제위기라고 해서 중단할 수 없죠."

―친환경이 모든 기업의 화두입니다. 세계 최대의 화학회사라는 타이틀이 불리하진 않습니까?

"화학회사와 친환경은 상호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지속가능성은 우리의 전략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우리 회사의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더 성공적이고, 에너지와 자원을 줄이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제품들을 개발합니다. 두 가지 예를 들죠. 우리 제품 가운데 '네오폴'이라는 제품은 강력한 단열 기능을 통해 덥고 습한 기후에서 집 안을 최대 48%까지 시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수 도료제품인 '루모겐'은 자동차에 쓰이는데, 태양열이 차 안으로 전해지는 것을 막아 운전자들이 여름에도 에어컨을 덜 틀도록 만들죠. 결과적으로 기름을 아끼게 해줍니다. 이 두 사례는 우리가 어떻게 고객들의 비용을 줄여주면서 동시에 친환경적이도록 해 주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부분적인 예에 불과합니다."

중국은 이미 경쟁자

함브레히트 회장은 2010년 7월 중국 시안에서 앙겔라 메르켈(Merkel) 독일 총리와 함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각종 규제를 하고, 시장을 열어주는 대신 기술 노하우를 중국 기업에 넘겨주게 하고 있다며 "이런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파트너십이라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기업을 어떻게 보십니까?

"예를 들어 시노펙(SINOPEC·중국석화)은 원재료 분야, 페트로차이나(PETROCHINA·중국석유)는 정유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막대한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해왔지요. 이들 기업은 이미 정부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의 경쟁자가 됐다고 봅니다."

―세계 경제를 어떻게 봅니까?

"대체로 긍정적으로 봅니다. 일부에서는 수퍼 사이클(super cycle·초호황)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아직 세계 경제에는 우리가 고민하고 조심해야 할 이슈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기가 온다고 억측(speculation)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적어도 유럽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붙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리더십은 솔직함에서 나온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직원들과의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을 꼽았다. 그가 지난 경제위기 때 했던 일도 직원들을 더 자주 만나 그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의 모토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라. 그리고 말한 대로 행동하라(Say what you think and do what you say)"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그렇게 해야만 기업이 빨리 결정하고 신속히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작년 말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스프를 최고로 만드는 3대 요소는 팀워크와 개방성, 상호 존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 것인가요?

제국 경영의 '글로벌 네트워크'

3·11 지진 후 세계가 일본의 인내에 놀랄 때 일본은 바스프의 '전광석화 대처'에 놀랐다
40분 만에 직원 1200명 안부 확인해 옮기고 멈춘 7개공장 제품은 해외서 다 만들어내니…

"우리의 모토가 '모두가 중요하다(Everyone counts)'입니다. 모든 관리자의 핵심 과제는 각각의 직원들,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그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합심해 일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각자를 존경으로 대할 때만 가능합니다. 바스프에서는 '바스프 커넥트'라는 소셜 네트워크가 그런 일을 돕습니다. 내부 온라인 플랫폼에서 모든 직원은 서로 쉽게 이야기하고,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리더는 스포츠팀의 코치랑 비슷합니다. 최상의 팀을 구성하고, 이 사람들을 격려해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도록 돕는 일이죠. 매니저의 성공은 그가 이끄는 팀의 성공에 달렸습니다. 내 직업은 그런 '팀 정신'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퇴임 후 앞으로의 계획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웃음)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고 싶습니다. 다만 더 자유를 가지고 싶습니다. 이제 회사보다는 개인적인 관심에 더 집중할 수 있겠죠. 여기에는 저 자신을 다스리는 일도 포함됩니다. 아주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바스프는

전 세계 80개국에 지사…  현대車와 공동 개발도

바스프는 1865년 기술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혼(Friedrich Engelhorn)이 세웠다. 바스프라는 이름도 'Badische Anilin & Soda-Fabrik'의 첫 글자인데, '바덴(독일 남부지역 이름) 아닐린·소다 공장'이라는 뜻이다. 아닐린과 소다는 합성염료의 재료다.

염료 공장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바스프의 사업 분야는 플라스틱, 건축자재, 농약, 석유·가스로 화학의 전 분야를 아우른다. 제록스가 곧 복사기인 것처럼 바스프의 상표 가운데 하나인 '스티로폴'은 폴리스티렌(석유에서 만드는 플라스틱의 일종) 제품을 대표하기도 했다.

바스프 제품은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와 아부다비에 있는 친환경도시 마스다르 시티, 서울 지하철 9호선 역사(驛舍)의 내외장재에 들어간다. 바스프는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인 '아이플로'도 공동개발했다.

바스프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80개국에 지사가 있으며, 한국에는 1980년대부터 효성, 한화 등과 합작법인을 세워 진출했다가 지분을 인수, 1998년부터 한국바스프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

아시아 외환위기 터지자 오히려 2000억원 투자…  3년 만에 매출 2배로

위르겐 함브레히트 회장은 아시아와 인연이 깊다. 그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홍콩에서 바스프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한화, 효성그룹과 합작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졌다. 아시아 경제가 휘청거리자 외국기업들은 투자를 거두고 철수했다. 바스프는 오히려 약 2000억원을 들여 한화와 효성의 지분을 사들였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아시아 시장이 곧 회복할 것이라며 당시 이 인수에 회의적이었던 고위임원들을 설득했다. 그의 예측대로 한국바스프의 여수공장은 이듬해부터 100% 완전가동에 들어갔고 한국바스프의 매출은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났다. 매출의 절반은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수출해 벌어들인 돈이었다.

―세계의 경제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바스프의 전략은?

"아시아는 전 세계 화학 산업의 성장 엔진입니다. 저희 목표는 매년 5~6%씩 성장할 아시아 시장에서 그보다 2%포인트 이상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올해부터 2015년까지 23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