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상위 10대 그룹 계열사, 5일마다(최근 3년간) 한개꼴로 늘어났다

2008년 405개서 617개로… 경제력 쏠림 심화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 등 막강 자본력으로 시장 교란, 영세 자영업종까지 싹쓸이도
지난해 4대그룹 매출 규모, 우리나라 GDP의 51% 수준

서울 서린동 청계광장 옆에 '아티제'란 커피전문점이 있다. 지난해 1월 설립된 삼성그룹 계열사 '보나비'가 운영하는 커피숍이다. 아티제가 들어오면서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중소 외식 브랜드인 '크라제버거'와 '스무디킹'은 사라졌다. 보나비는 지금까지 '아티제' 15개를 개점했다. 모두 직영체제로 운영한다.

청계천 건너 100m쯤 떨어진 코오롱빌딩에는 신세계가 운영하는 스타벅스, 그 맞은편에는 롯데에서 하는 엔제리너스 커피전문점이 있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브랜드 커피전문점 사업에 뛰어드는 한편으로, 어느새 개인과 영세 자영업자가 주로 해왔던 다방과 커피숍은 도시의 골목에서 사라졌다.

그래픽=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경기도 광주 퇴촌에 있는 '서림개발'이란 젖소농장은 정의선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다. 서림개발은 2009년 농작물 생산과 유통, 가공 사업을 하는 서림환경기술이란 회사를 또 설립했다. SK는 웨딩사업(SK M&C)에 진출해 있고, LG는 먹는 샘물사업(LG생활건강)을 운영 중이다.

자산·경제력 집중현상 심화

삼성·현대차·SK·LG 등 주요 그룹이 갈수록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영세 사업자가 주로 영위해온 서비스 영역에도 진출하는 예가 적지 않다. 상위 10대 그룹의 계열사는 2008년 405개에서 현재 617개로 늘었다. 5일마다 하나씩 10대 그룹 계열사가 새로 생긴 셈이다.

이들에게 자산(富)과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전체 매출(해외 매출 포함)은 603조300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의 51%에 해당했다. 3년 전에는 GDP의 43% 수준이었다.

문제는 덩치가 큰 곳으로 성장의 과실이 더 많이 돌아가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재계 1~20위권 그룹의 매출·순이익은 각각 54%와 71% 증가했다. 그런데 21~50위권 그룹의 경우 매출은 36%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3.7% 감소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심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기업 세전(稅前) 순이익률은 2007년 7.9%에서 작년 8.4%로 늘었지만, 중소기업은 3.8%에서 2.9%로 떨어졌다. 대기업은 갈수록 살찌고 중소기업은 여위고 있다.

부(富)가 대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해당 기업 직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상장기업 사업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임직원 연봉 순위 30위 기업 중에서 삼성그룹 계열사가 7개인 것을 포함해 재계 10위권 그룹 계열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1위인 삼성전자 임직원 평균 연봉(8640만원)은 중소기업 임직원 평균 연봉(2998만원)의 3배에 가깝다(고용노동부). 인하대 김진방 교수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어느 기업에 다니느냐에 따라 직장인의 계층이 나뉠 것"이라며 "'삼성귀족' '현대차 귀족'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독점력 활용한 부당 경쟁이 문제

물론 대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 대기업이 진출하면 그 분야의 제조·서비스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기존 사업자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중소 사업자가 개척해놓은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막강한 자본력으로 시장을 휩쓸어버리는 방식이면 곤란하다.

김치냉장고가 그런 예로 볼 수 있다. 위니아만도는 1995년 '딤채'를 내놓으며 한국에 김치냉장고 시장을 창출했다. 딤채 성공 덕분에 2002년 매출 6340억원, 영업이익 1317억원을 기록했던 이 업체가 현재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2002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무차별 공세를 가했다. 당시 위니아만도에 근무했던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LG는 계열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각 가구에 자사(自社) 제품을 빌트인(built-in) 옵션으로 집어넣으니 우리가 당할 재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유현 정책개발본부장은 "대기업이 중소 사업자가 개척해놓은 틈새시장에까지 굳이 들어가서 전부 다 먹겠다고 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