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으로 떠났던 정몽구 회장, 현대건설 인수 후 계동사옥 첫 출근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 "몽헌이를 단독회장으로"…
그룹회장직 박탈당하고 양재동으로 떠난뒤 발끊어
현대건설 첫 월례조회서 "오늘은 역사적인 날"… 중간중간 목멘듯 말 중단
정주영 명예회장이 쓰던 15층 집무실 사용하기로
2000년 3월 27일 오전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에서 내렸다. 정 명예회장은 계열사 사장 30명이 모여 있는 대회의실에 들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경영자협의회 의장(그룹 회장)을 정몽헌 단독으로 한다." 정몽구 현대그룹 공동회장을 회장직에서 내친다는 말이었다.
전날까지 동생 정몽헌 회장측과 치열하게 싸웠던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이 말 한마디에 "앞으로 정몽헌 회장과 각사가 협조해 좋은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며 수용했다. 그는 현대차·기아차 등 자동차 관련 일부 계열사 경영만 맡기로 했다.
- ▲ 정몽구(왼쪽에서 세 번째)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이 1일 오전 그룹 경영진과 함께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11년 만의 첫 출근이다. 정 회장은 이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용하던 15층 사무실에서 첫 보고를 받았다. /뉴시스
2000년 3월 그는 비참하게 패배했다. 동생의 측근 경영인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시켰다가 동생과 소위 '가신그룹'의 역공을 받고 오히려 현대그룹 회장직을 빼앗겼다. 회장직을 되찾기 위해 3월 26일 아버지로부터 '회장직 유임'이라는 문서에 서명을 받았으나, 불과 몇 시간 뒤 동생과 가신그룹측은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그 서류에 '×' 표시를 다시 받아내 번복시켜버렸다.
당시 85세의 정 명예회장은 이날 하루 동안 양측이 제시하는 전혀 상반된 내용의 서류를 네 차례나 서명하거나 재가했다. 그리고 이튿날 계동 사옥에 나타나서 "정몽헌 단독 회장"을 선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11년이 흘렀다. 1일 오전 7시 20분 서울 계동 현대사옥 정문 앞에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검은색 에쿠스에서 내렸다. 짙은 회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아침부터 고생한다"며 악수를 건넸다. 그리고 "감개무량하다. (계동사옥에 온 건) 11년 만이다"고 했다.
정 회장은 2000년 11월 계동을 떠났다. 현대자동차가 사옥을 서울 양재동으로 옮기면서다. 떠날 때 그는 패배한 '왕자'였으나 이날 그는 현대그룹 적통(嫡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의 '왕'으로 돌아왔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한 이후 직원 조례를 주관하기 위해 첫 출근했다.
계동 사옥에 들어선 정 회장이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15층 회장 집무실. 선친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사용했던 곳이다. 창덕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집무실은 계동사옥 내에서도 가장 조망이 좋다.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 지금까지 비어 있었다. 11년 전 현대그룹 '왕자의 난'에서 승리했던 고(故) 정몽헌 회장도 이 집무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앞으로 정몽구 회장이 이용할 사무실"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회장 집무실은 정주영 명예회장에서 정몽구 회장으로 이어졌다.
회장 집무실에서 20분쯤 머문 정 회장은 지하 2층 대강당 조례 행사장으로 옮겼다. 현대건설 임직원 670여명은 그가 들어서자 일제히 일어섰다. 정 회장은 준비해 간 조회사를 읽어 나갔다. 중간 중간 목이 메는지 잠시 끊길 때도 있었다.
"오늘은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의 일원이 돼 함께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깊고…역사적인 날입니다.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과 한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왕자의 난'에서 패배하고,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간 지 11년 만에 현대건설을 되찾았다고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11년 전 현대그룹 회장직을 박탈당한 그날 밤, 정 회장은 고등학교 동기생인 유인균 현대강관(현 현대모비스) 당시 회장 등 자신과 가까운 계열사 원로 경영진 몇 명과 밤늦도록 통음했다. 그 술자리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어릴 때 내가 몽헌이를 얼마나 귀여워하면서 잘 데리고 놀았는데…'라며 울분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가신그룹으로 불렸던 이익치 회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장 등 세 사람은 모두 정 명예회장의 비서실장과 비서 출신이었다. 이들은 몸이 불편한 정 명예회장 주변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현대 주변에서는 정 회장이 그들에 의해 쫓겨났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한 것은 2000년 9월. 현대차·기아차·현대정공(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를 떼어내 계열분리를 했다. 건설·전자·금융 등 주력 부문은 모두 동생 차지였다. 분리될 당시 현대차는 연 매출 규모 18조원의 세계 11위 자동차업체였다. 당시 세계 자동차업계에서는 "'빅5'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었다. 현대차의 미래를 밝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재계 서열 5위의 자동차전문그룹이 이제는 재계 서열 2위 그룹으로 올라섰다. 분가 당시 그룹 자산은 36조1360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엔 100조7750억원. 3배로 키웠다. 정주영 명예회장도 끝내 꿈을 못 이룬 일관제철소 사업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지난해 4월 당진제철소를 준공했다. 자동차·제철에다 현대건설 인수까지 마무리하며 옛 현대그룹의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사업구조를 다시 복원했다.
그는 이날 월례조례에서 "현대건설의 건설부문을 자동차, 철강과 더불어 그룹의 '3대 핵심 미래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날 저녁 현대차그룹 부사장급 이상 임원, 현대건설 상무보 이상 임원과 배우자 540명을 남산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했다. 정 회장이 인수한 회사 임직원의 배우자까지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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