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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제약업계 '희귀 의약품이 성장세 이끈다

[뉴 트렌드] 제약업계 '희귀 의약품(환자 수 적어 버림받아 온 의약품)'이 성장세 이끈다

  • 입력 : 2011.03.06 21:50

최근 460건 개발, 크게 늘어… 매년 5.7%씩 시장도 쑥쑥
판매 1위 인기 약 성장세는 특허 만료 등 앞둬 '둔화'

기업은 수요가 많은 곳에 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제약산업에서는 이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다. 극소수 환자가 있는 희귀의약품 시장이 더 큰 성장세를 보인다. 환자 수가 적어 버림을 받던 '고아 약품(orphan drug)'이 제약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고아 약품은 돌보는 이 없는 고아처럼 제약업계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붙은 이름이다.

희귀질병치료제 성장률 전체 제약시장 두 배

미국 연구개발제약협회(PhRMA)는 세계 희귀질환의 날인 지난달 28일, 최종 임상시험 단계까지의 희귀의약품 개발건수가 역대 최다인 460건이라고 밝혔다. 1989년 133건에 불과하던 것이 3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미식품의약국(FDA)은 환자 수가 20만명 미만인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규정한다. 이 중 약 80%가 환자 수 6000명 이하. 환자가 적으니 신약을 개발해도 제약사엔 큰 수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은 매년 5.7%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성장세가 6.9%나 된다. 희귀의약품 시장규모는 2009년 850억달러에서 2014년에는 1120억달러로 늘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지난해 전 세계 제약산업은 8600억달러로 전년 대비 3% 성장에 그쳤다. 이 중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인 블록버스터(blockbuster·대형매출의약품)가 전체 시장의 34%를 차지했다. 세계 1위 판매제품인 화이자의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 등 13개가 2013년까지 특허 만료에 직면해 있다. 값싼 복제 약들이 쏟아지면 매출의 급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희귀의약품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개별 질환으로 따지면 환자 수가 적지만 모두 합하면 그 수가 미국에서만 2500만~5000만명에 이른다. 또 1983년 발효된 미국 희귀약법은 희귀의약품에 다른 약보다 더 긴 독점 판매권을 보장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미국에서 350개의 희귀의약품이 허가를 받았지만 발효 이전 1970년대에는 10개 이하였다.

신약 개발비 낭비 막을 대안

희귀의약품은 신약 개발비 낭비를 막는 대안도 된다. 최근 세계 3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자체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후보 1만3000가지를 공개했다. 신약개발 비용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중복 개발. 특허 때문에 비밀로 하느라 다른 회사에서 실패한 신약에 계속 매달린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희귀의약품 개발에선 약효가 입증되는 초기임상시험까지는 특허가 나지 않고 모든 연구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제약사들은 이를 다른 분야에도 보급해 초기 개발 단계에서의 낭비를 줄이려 하고 있다. 대신 후반부 대규모 임상시험과 마케팅에 승부를 걸자는 것.

희귀의약품이 새로운 블록버스터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세계 4위 제약사 노바티스는 최근 전 세계 환자가 1000명에 불과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런데 이 약은 류머티즘이나 당뇨병을 막는 효과도 있다. 노바티스 보스턴 연구소의 성무제 박사는 "희귀의약품은 개발과정이나 승인 후 효능 추가가 쉽다"고 말했다. 적은 환자로 빨리 개발해서 더 큰 시장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화이자 그로톤연구소의 최철호 박사는 "희귀의약품은 대학이나 작은 바이오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라 한국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5위 사노피아벤티스는 최근 2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보스턴의 희귀의약품 전문 바이오기업 젠자임(Genzyme)을 인수했다. 지난해 세계 두 번째로 FDA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국내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의 줄기세포 치료제도 희귀의약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