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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숫자와 통계

한국 대기업 임금 2.6배 오를 때, 日은 7% 떨어졌다

 

입력 2025.02.17
 
그래픽=송윤혜

 

 

 

한국 대기업 평균 임금이 지난 20년간 2.6배로 올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같은 기간 1.8배로 증가한 유럽연합(EU)이나, 장기 저성장의 여파로 오히려 임금이 줄어든 일본 대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 대기업 직장인은 2002년에는 평균 2741만원을 받았지만, 2022년에는 7061만원을 수령했다. 반면 일본 대기업 직원의 임금은 같은 기간 580만5000엔(약 5501만원)에서 541만엔(약 5127만원)으로 줄었다.

 

 

한국 대기업 임금의 가파른 상승은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도 자연히 오르는 연공서열식 체계와 강성 노조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성이나 성과와 무관하게 임금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재의 구조가 자칫 한국 대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6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한·일·EU 기업 규모별 임금 수준 국제 비교’ 보고서를 발표했다. 분석 대상은 한국과 일본, EU 20국 등 총 22국이었다. 경총은 “초과 급여를 제외한 임금 총액 등 국가 간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가진 국가를 대상으로 삼았다”고 했다.

 

 

조사 결과, 한국 대기업 평균 임금은 최근 20년 새 157.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EU 20국은 84.7% 올랐고, 일본은 오히려 6.8% 하락했다. 경총은 한국 대기업의 평균 임금은 조사 대상 22국 가운데 5위(구매력 평가 환율 기준)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한국보다 앞선 국가는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정도였고, 일본은 12위였다.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 수준을 고려해도 한국 대기업 임금 수준은 다른 주요국보다 높았다. 한국 대기업 임금 수준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의 156.9%로 비교 대상 중 전체 3위였다. 그리스(166.7%)와 프랑스(160.6%)가 1, 2위였지만, 산업 구조가 비슷한 주요 경쟁국인 독일(6위·136.7%)이나 일본(7위·120.8%)과 비교하면 크게 앞선다.

 

 

◇한국 中企 임금, 대기업 70%서 58%로 하락 ‘양극화 심화’

경총 관계자는 “한국 대기업 임금이 일본보다 월등히 높고, EU 국가들과 비교해도 최상위 수준인 것은 연공형 임금 체계와 강력한 노조로 인해 생산성을 초과해 일률적으로 임금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송윤혜

 

 

◇EU·일본 대비 가파른 상승, 양극화 더 커져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욱 커졌다. 대기업 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오른 탓이다. 경총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 직원들은 대기업 대비 73.7%(2022년 기준)의 임금을, EU는 65.1% 수준을 받았지만 한국 중소기업은 57.7%에 그쳤다. 지난 2002년만 해도 한국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70.4% 수준이었지만 12.7%포인트 하락하며,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 것이다.

 

 

경총은 지난 20년간 국내 중소기업 임금 인상률 역시 EU나 일본보다 훨씬 높았지만, 대기업 임금이 워낙 빠르게 오른 탓에 격차가 더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같은 기간 한국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률은 111.4%, EU 20국 평균은 56.8%, 일본은 7%였다.

 

 

한국 기업들의 임금 인상률은 조사 대상 22국 가운데 대기업은 7위, 중소기업은 8위였다. 경총은 “한국보다 임금 인상률이 더 높은 국가들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헝가리 등 경제 규모와 산업 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경쟁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국가들”이라며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주요 경쟁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임금 인상률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경총 하상우 경제조사본부장은 “대기업의 고율 임금 인상이 누적된 상태에서, 법정 정년 연장까지 이뤄질 경우 지금도 높은 대기업 근로 여건을 더 끌어올려 신규 채용 여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의 성장 동력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금 인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만큼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 체계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은 오르는데, 규제는 발목

대기업의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적용 등 각종 규제 때문에 오히려 연구·개발(R&D) 성과는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은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국내 470여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가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연구·개발 성과가 줄어들었다’고 답했다고 16일 밝혔다. 관련 설문에서 ‘다소 감소했다’를 고른 기업이 66.5%, ‘많이 감소했다’를 택한 곳은 9.3%였다.

 

 

실제로 식품 제조 중소기업 A사는 해외 바이어의 요청에 따라 신제품을 개발 중인데, 주 52시간제 때문에 개발 실험이 계속 중단되면서 생산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했다. A사 관계자는 “결국 납품 기일 연장을 요청하게 되면서 바이어와의 신뢰 관계도 손상됐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에서도 응답 기업들은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신제품 개발’ 분야(45.2%)의 혁신성이 가장 많이 저하됐다고 답했다. 이어 기존 제품 개선(34.6%), 연구 인력 역량 축적(28.5%), 신공정 기술 개발(25.3%, 이상 복수 응답) 순이었다.

 

 

연구 성과 감소와 함께, 연구·개발 기간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 기업 절반 이상(53.5%)은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연구·개발 소요 기간이 늘었다’고 답했다. 얼마나 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해당 기업의 69.8%가 ‘10% 이상’을 꼽았다.

대한상의 이종명 산업혁신본부장은 “업무의 지속성과 집중성이 중요한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유연한 제도 적용과 함께 제도의 당초 취지인 사회적 약자의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