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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미 경기둔화·AI 거품·엔캐리자금 이탈 ‘3대 악재’ 동시에 덮쳐

 

기자김회승,조해영

  • 등록 2024-08-05 17:01
 
코스피가 8% 이상 폭락한 5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KB)국민은행의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코스피가 8% 이상 폭락한 5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KB)국민은행의 딜링룸 모습
 
 

인공지능(AI) 거품론과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아시아 증시를 강타하면서 반도체 등 대형 기술주 비중이 큰 국내 증시가 연일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여기에 엔화 강세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 우려까지 전세계 금융시장을 짓누르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는 양상이다. 미국 월가는 “대공황급 패닉”이라며 공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외 증권가에선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대형 기술주의 폭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고수익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거래인데, 최근 일본 금리가 올라(0~0.1%→0.25%) 엔화 가치가 상승하자 엔화 투자 자산을 팔고 자금을 본격적으로 회수(청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화 강세와 달러 약세가 맞물리면서 두 나라 금리 차가 급격히 축소됐고, 엔 캐리 청산이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빅테크와 글로벌 증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엔 캐리 자금 규모는 20조달러(약 2경7420조원)로 추산되며,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한 일본계 자금은 16조2천억원가량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엔 캐리 청산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엔 캐리 자금의 국내 유입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전세계 엔 캐리 자금이 청산되거나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면 외국인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도 연쇄적인 외국인 이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데이터 서비스업체인 바차트는 “최근 엔화 가치가 5% 급등하는 동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가 7% 하락했다”며 “엔화 약세 흐름이 갑자기 바뀌면서 엔화 베이스로 미국 기술주에 투자한 헤지펀드들이 자금을 빼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엔 캐리 자금 청산 때마다 코스피 낙폭은 매우 컸다. 모두 다섯차례인데, 당시 코스피의 고점 대비 낙폭은 1차(1998년) 때 38.9% 하락한 것을 비롯해, 2차(2002년) 15.9%, 3차(2008년) 56.7%, 4차(2015~2016년) 10.9%, 5차(2020년) 35.7% 등이었다. 엔 캐리 자금 청산 기간 중 국내 주식 매도 주체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65.4%(2차)에서 많게는 94.7%(4차)에 달했다. 엔 캐리에 나섰던 외국인 이탈이 하락장을 주도했다는 얘기다.

 

 

최근 폭락장에서 투자자 이탈이 가장 큰 건 대형 기술주들이다. 반도체 등 기술주 비중이 큰 한국 등 아시아 증시 역시 낙폭이 컸다. ‘돈 못 버는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빅테크의 수익성이 도마에 올라 주가 거품 심리가 확산된 터에 엔 캐리 자금 이탈이라는 수급상 악재까지 겹치면서 도미노 폭락을 불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대형 기술주인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지만 속절없이 급락했고, 일본과 대만 증시 역시 도쿄일렉트론과 티에스엠시(TSMC) 등 반도체주들이 폭락장을 주도하고 있다.

 

 

위험회피 심리를 촉발한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는 증권가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서비스업지수가 시장 예상과 달리 기준선(50) 이하를 나타내며 2개월 연속 위축되면 경기침체 경계감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신윤정 교보증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거친 고용과 불안한 소비’를 언급하며 “침체 우려는 아직 이르고 과도하다”면서도 “미국의 경기 둔화는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월가 등에서 ‘금리 인하 실기론’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9월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 목소리는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의 고용 지표 발표 이후 시장의 ‘9월 빅컷’ 기대는 70%대로 높아졌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경로를 크게 수정하지는 않겠지만 고용시장 지표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연내 세차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이전보다는 높아졌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