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기 회복세로 턴한 것 같다…부동산 부양, 경기관리에 기여"
김진일 고려대 교수(49)는 통화정책 전문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10년 동안 근무했던 'FRB 맨'이다. 김 교수는 지금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활용해 FRB 자문관으로 한두달씩 일한다. 국제금융/통화정책과 거시경제가 김 교수의 중점 연구 분야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85학번으로 예일대에서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트퍼 심스 교수로부터 배웠다. 심스 교수는 토마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와 함께 '거시 경제에서 원인과 결과에 관한 경험적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심스 교수는 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재정정책에 관한 이론과 합리적 무관심 이론을 개발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 FRB에서 10년 근무…"FRB 금리인상 속도, 시장 예상보다 빠를 것"
- FRB에서는 언제 일했나.
"1996~1998년, 2003~2010년까지다. 2011년에 휴직하고 서울로 왔다. 지금은 FRB 자문관으로 있다. 계약직(contractor)이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한두달 정도씩 한국 상황을 봐서 갔다 온다."
- 자문관으로 어떤 일을 하나.
"주로 1~2월은 경제학 박사들 인력시장(job market)이 열리는데 FRB에서 박사들 뽑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여름에는 주로 보고서를 쓴다. FRB 기밀 자료는 못 받으니까 약간 제약이 있기는 하다."
- 연구 분야는 어떤 것인가.
"일반적인 통화정책을 다룬다. 개인적인 연구는 통화정책이 절반, 일반 거시경제학이 절반이다. 일반 거시경제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하고 나는 미국 통화정책 경험이 있으니까 통화정책 쪽으로 많이 찾는다."
-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다. 인상시기에 대해 6월이다, 9월이다 하다가 이제는 12월까지 갔다.
"시장에서는 평균적으로 보면 9월이라고 보는 것 같다. 첫 금리인상 후 다음 금리인상을 얼마나 빨리 할 것 인가, 더 천천히 할 것인가 얘기가 있는데 지금 시장에서 얘기되는 것보다는 빨리 할 것이다. FRB가 처음에는 첫 금리인상 후 천천히 한다고 했지만 일단 첫 금리인상 후에는 생각보다 빨리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그래도 급격히 올리기는 어렵지 않나. 지금 0~0.25%에서 향후 2년간 연 2%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년에 8번 열리는데 보통 금리를 인상하면 두번 회의할 때 한번 정도 올릴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두번에 한번 꼴로 매번 올리면 기준금리가 2년간 약 2%로 높아진다.) FRB 내부 분위기를 보면 FRB와 시장의 예상이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지금 시장 예상보다는 빨리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 미국 실업률이 많이 떨어졌지만 경기회복세가 미약하고 자발적 실업(구직포기),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증가 등 고용의 질이 나쁘다고 한다.
"실업률 데이터는 너무 좋은데 성장률 데이터가 너무 안 좋은 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고용의 질이 가장 큰 이슈인 것은 틀림없다. 고용(실업률)만 보면 금리를 진작 올렸어야 했는데 성장이 안 좋으니까."
- 그럼 경기판단 기준으로 고용을 봐야 하나. 성장을 봐야 하나.
"두 지표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니까 사람들도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 성장 지표가 현재 경기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고용의 질이 아주 안 좋다는 것이고, 고용(실업률) 지표가 맞다면 성장 지표가 조만간 쫓아올 것이다. 둘 중 어느 게 맞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 FRB는 아마 중간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시장은 고용 지표보다는 성장 지표를 더 보는 것 같다. 고용의 질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 것이다."
- 우리나라는 지난 3월에 기준금리를 1.75%로 내렸다. 2%대에서는 금리 내려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이제는 1%대라는 숫자가 주는 심리적 효과 때문인지 돈이 좀 움직인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좀 살아나는 것 같다."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로 인하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동안 안 가본 길을 가는 것이다. 안 가본 곳이니까 더 조심도 해야한다."
- 한은은 나름대로 마음을 크게 먹은 것 같다.
"그렇다. 그동안 한은의 행동을 보면 1.75%는 과거에는 도저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숫자인 것 같다. 5년이나 더 지나서 현재의 보고서가 공개되면 그 전엔 과연 1%대 갈 수 있다고 상상했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안 가본 길을 가고 새로운 태도이긴 하지만 위험한 측면도 있다."
- 한은이 아주 보수적이고 절간이라는 평가가 있다.
"어느 정도 그렇게 해야 한다. 독립성을 주고 한은도 어느 정도 보수적인 게 있어야 한다. 결정은 굉장히 절간으로(보수적으로, 독립적으로) 하고 소통은 활발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둘을 분리시키는 게 어려운 것 같다. 문화 차이다."
- 우리 경제가 전월대비로 생산, 소비 등이 개선됐다 악화됐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게 경향성이 안 보이는 것인가.
"최근 들어서 (경기) 패턴이 바뀌는 것 같다. 어떻게 바뀔지 변곡점(과도기)이라고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바뀔지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 회복세로 턴할 것으로 보나.
"그럴 것으로 본다. 정부나 한은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긍정적 데이터가 많이 보인다면서 이번엔 다르다고, 회복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확실히 전과 비교하면 톤이 다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전에도 여러번 속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편향돼 있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한은을 더 신뢰한다."
◆ "대단한 기술혁신 없이 수요 부족-유휴생산력 해소 어렵다…위기, 언제 끝날지 모른다"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 유휴생산력 얘기가 나온다. 즉 공급 과잉, 수요 부족을 얘기하는데 여전히 공급 과잉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 어떤 식으로 프레임 워크를 짤 것이냐의 문제는 있지만 유휴생산력이 남아있는 셈이다."
- 그럼 세계 경제가 위기 전처럼 성장세를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 그런데 버냉키-서머스 논쟁도 그렇지만 1930년대에도 전에 없던 기술혁신이 나타나 발전한 것이다. 버냉키는 아직은 뭔지 모르지만 뭔가 나올 것이다, 뭔가 창출될 것이다 하는 입장이고 서머스는 아직은 못 찾았다,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언제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유휴생산능력을 빨아들이고 수요를 창출해줄지 그건 알 수 없다. 공학의 발전과 사람심리 수요, 그 두가지가 동시에 맞아 떨어지는 뭔가가 있어줘야 하는데…"
버냉키-서머스 논쟁은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이 유효한지, 아니면 정부 지출을 늘리는 재정정책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알려져 있다.
버냉키는 중앙은행이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형성한다면, 명목이자율이 '제로(0)%' 아래로 내려가진 못해도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과잉 저축을 해소해 투자와 소비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머스는 미국 경제가 이미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경기가 회복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새로운 산업은 많은 자본 투입이 필요하지 않고, 인구도 크게 늘지 않고 있어, 투자에 자본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율을 마이너스로 만들어도 구조적인 과잉 저축을 흡수할 정도로 투자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 보통 기술혁신 가능성으로 얘기되는 게 3D프린터, 로봇, 만물인터넷(IoT) 등이다.
"그런 것들이 공급 과잉, 수요 부족을 해소해 경제 흐름을 바꿀 만큼의 기술혁신이 될 지, 아닐지 모르겠다. 구글 글래스도 처음엔 굉장하다고 했지만 이제는 접었다. 구글이 지원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도 경제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 그럼 2008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가는 건가.
"그동안 나왔던 FRB 자료를 보면 2008년 12월에는 2~3년만 지나면 (경기가 좋아져서)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지금까지 못 올리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기도 했고 여러 사건이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 경험에 따르면 위기가 터져도 3~4년 지나면 회복된다는 것이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전혀 모른다."
- 금리인상여부를 전망한다면.
"9월 또는 12월에 금리 올리면서 경기도 천천히 회복된다고 예상하는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가 무슨 일이 터져서 경기가 꺾인 적이 많았다. 2010년엔가 버냉키 전 의장이 그린슈트(green shoot, 새싹)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봄에 새싹이 올라오듯이 경기가 살아나는 게 보인다는 의미였다.
그 이후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옐로우 위드(yellow weed, 누렇게 시든 잡초)가 돼 버렸다고 말을 바꿨다. 그린 슈트가 여름 지나고 가을에 옐로우 위드가 돼야 하는데 그린 슈트가 바로 그렇게 돼 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투자은행(IB)들은 내년까지 FRB가 금리를 안 올린다고 베팅하기도 하더라."
- 미국 중앙은행과 우리 한국은행의 차이점은 뭔가.
"주로 우리나라는 대학 졸업한 사람을 뽑아서 키우고 일부 유학도 다녀오고 그런 방식인데 미국은 부서마다 따로따로 뽑는다. 연구부서는 박사를 뽑고, 법무담당은 변호사를 뽑고, 행정직은 관리직으로 따로 뽑는다. 인사가 다른 게 서로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공채 문화 때문인 것 같다. 언론사도 한꺼번에 뽑지 않나.
"그렇다. 예전에는 사진 기자도 따로 뽑지 않았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동아일보 기자였다. 1970년대 초반에 다녔는데 형과 나를 동아일보 근처 아이 돌보는 곳에 맡겼다가 언젠가 한번은 형을 잃어버려서 난리가 났었다."
- 어머니의 성함은.
"동아일보 6기 정자환.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황선필씨가 입사 동기라고 하셨다."
- 그럼 1970년대면 언론인 해직 때 그만 두셨나.
"그만 둔 게 그 때인 건 맞는데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마침 다른 이유로 그만 뒀는데 시기가 그때였다, 그런 게 있지 않나. 어디에는 해직기자로 나오고, 어디에는 해직기자는 아닌 걸로 나온다고 하더라."
- 대학교 때 연구했던 인상적인 내용이 있나.
"1990년대 중반은 미국에서 신경제가 나오고 하면서 어떻게 보면 거시경제학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걸리는 게 많아서 박사 논문 쓰기도 편했다. 새롭고 변화가 많은 시기였다. 그 이후에 그걸 정리에 나가면서 거시경제학이 (정리된) 뭔가를 찾았다고 한 게 2005년 정도였다.
1970년대에 사무엘슨이 신고전학파와 케인지언을 종합했다. 기존의 양쪽 틀이 종합적으로 수렴됐다고나 할까. 양쪽에서 모두 합의하는 틀이 만들어져 사무엘슨의 교과서도 나왔다. 이게 30년이 지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변동성이 줄고 해서 다시 종합적인 틀이 나왔다. 이때는 공통적 교과서로 맨큐의 경제학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기존의 틀로 설명이 안 됐다. 그래서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이제 또 서로 다른 틀로 설명하는 것이다."
- 예일대 동기로 누가 있나.
"서울대 김소영 교수가 나보다 2년 먼저 들어갔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1년 먼저 들어갔다. 성균관대 김성현 교수가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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