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그린스펀·버냉키 연준서 근무
김진일이 본 한·미의 통화정책
1980년대 이후 가장 가팔랐던 미국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돼 가고 있다. 미국은 작년 3월 제로(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지난달 연 5.5%까지 올렸다. 그런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작년 말부터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라며 고금리 정책을 당분간 유지할 뜻을 밝히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걱정이 많은 한국은 미국과 다른 금리 정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환율 안정, 자유로운 자금 이동, 독자적 통화 정책’ 등 세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트릴레마(삼중 딜레마)’에 한국 금리 정책의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의장 시절 미 연준에서 9년 넘게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김진일 고려대 교수를 지난 2일 만나 한국과 미국의 통화 정책이 엇갈린 길을 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가장 가팔랐던 美의 금리 인상 마무리
- 연준 파워(힘)를 쉽게 설명해 달라.
“전 세계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지배하는 곳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달러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면 쉽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때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달러를 무한정 쓰는 걸 보여줬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위기 때 마이너스 통장을 잘 쓰기 위해서 평소에 관리도 한다. 달러를 막 푸는 것뿐 아니라 작년엔 금리를 확 올려서 달러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파워도 보여줬다.”
- 금리 인상은 대출자에게 고통이다. 그럼에도 연준은 어떻게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수 있었나.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워낙 큰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금만 금리를 움직여도 많은 돈이 들락날락하겠지만, 미국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엄청나게 규모가 큰 항공모함과 같은 경제라서 금리를 바꾼다고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한 번 움직이면 오래간다. 둘째, 미국은 대체로 고정금리로 빌리고, 원리금 상환 방식으로 돈을 갚는다. 이미 돈을 빌린 사람들은 금리가 바뀌어도 상환 부담이 늘지 않는 것이다. 변동금리 대출이 많은 우리나라와 다르다.”
- 미국이 6월 동결, 7월 인상을 한 배경은.
“미국이 6월에 쉬었다가 7월에 0.25%포인트(p) 올린 건 긴축 속도 조절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미국은 앞서 0.75%p, 0.5%p 올리다, 0.25%p까지 인상 속도를 줄였다. 그러다 0.125%p까지 속도를 줄이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래서 한 번 쉬고, 0.25%p 올린 것이다. 두 달 평균을 내면 한 달에 0.125%p 인상을 두 번 한 셈이다. 점차 금리 인상이 마무리에 들어선다는 얘기다.”
한국만의 독립적인 통화 정책은 불가능
- 한국은 미국 금리 인상을 따라가야만 하나.
“한국은 ‘트릴레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미국과 다른 방향으로 금리를 결정하기 어렵다. 완전히 독립적인 한국만의 통화 정책은 불가능하다.”
- 트릴레마란 무엇인가.
“국제금융 정책에서 누구나 달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세 가지 있다. 첫째, 환율 안정이다. 외국 돈을 언제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둘째, 외국과 자유로운 자금 이동이다. 필요할 때 쉽게 외국 돈을 쓸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셋째, 독자적 통화 정책이다. 나라마다 좋고 나쁜 경제 사정에 맞춰 금리를 정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트릴레마다.”
- 왜 불가능한가.
“예컨대 환율 안정과 자유로운 자금 이동을 목표로 골랐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맘대로 금리를 조정할 수 없다. 금리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적정 수준보다 낮게 하면 돈이 다 빠져 나갈 것이다. 반대로 높이면 다른 나라에서 모든 돈이 다 밀려 들어와 혼란이 생길 것이다. 결국 독자적인 금리 설정은 불가능하고, 외국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래도 한국은 미국보다 금리를 덜 올려서,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누구나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미국 금리가 떨어지고, 그래서 나중엔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낮아지겠지’라는 기대가 뒤에 깔려 있다. 영원히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낮을 것이라 생각할 순 없다.”
경제 대국 美는 트릴레마 구속이 덜해
- 미국은 트릴레마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가장 큰 나라이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쓰기 때문에 신경을 크게 안 써도 된다. 금리를 낮춰도 돈이 빠져 나갈까 봐 걱정을 그다지 안 해도 되고, 금리가 높아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올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국이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크기 때문에 자국 통화 정책만 신경 쓰면 된다. 상대적으로 트릴레마에 구속이 덜 된다고 보면 된다.”
미국과 다른 길 가는 일본과 중국
- 일본은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다.
“일본은 환율 안정을 조금 포기하고 환율 변동을 용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릴레마 속에서 자유로운 자금 이동과 독자적 통화 정책인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다 보니 결국 굉장한 엔저(円低) 현상이 벌어졌다. 그걸 일본 경제가 감내하는 것이다. 최근 장기금리 상승을 용인하는 식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그만큼 독자적 통화 정책 유지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 중국은 금리 인하까지 가고 있지 않나.
“중국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막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금리 인상을 하는 미국과 달리 독자적으로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홍콩 사례도 특이하다. 홍콩은 환율 안정을 넘어 고정 환율을 선택했다. 동시에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독자적인 금리 결정은 포기했고, 0.5%p쯤 차이를 두고 바로 미국 금리를 따라가고 있다.”
- 그렇다면 한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미국과 반대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2%p로 역사적으로 본 적이 없는 큰 폭이다. 여기서 한국이 금리를 내리면 그 차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쉽지는 않지만, 트릴레마에 잡혀 있는 걸 감안하면 한국이 금리를 내리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엔 환율 변동을 용인해도 자본 이동을 통제하지 않는 한 독자적인 통화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딜레마 이론도 주장된다. 물론 국제적 자본 이동은 국가 간 금리 격차 외에도 다른 많은 변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금리 인하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을 순 없다.”
파월의 영향력, 그린스펀엔 못 미쳐
- 한국과 미국의 통화 정책에서 모두 소통이 중요해진 것 같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통화 정책의 98%는 말이고, 2%는 실행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과거엔 그냥 금리만 조정하면 됐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제로(0)금리를 만든 후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 양적 완화 등 새로운 통화 정책을 많이 도입했다. 금리 조정이 어려우니, 말로 하는 정책이 아주 중요해졌다.”
- 포워드 가이던스가 궁금하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크게 델포이 방식과 오디세우스 방식이 있다. 델포이 방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신의 예언을 받는 델포이 신탁을 받는 것 같이 한다는 것이다. 연준이 향후 경제 전망을 밝혀주면, 그걸 보고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 가늠하라는 것이다. 오디세우스 방식은 더 구체적이다.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가 마녀 사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몸을 배에 묶었듯이 미리 앞으로 연준이 나아갈 길을 얘기하고 이를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예컨대 연준이 ‘내년까지 금리 인하가 없다’고 선언하고 그걸 지키는 것이다.”
- 너무 많이 알려줘도 문제 아닌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라고 하면서 2022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결국 당시 연준은 틀렸다. 그래서 지금 연준의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 너무 확실하게 향후 정책을 알려줬던 포워드 가이던스의 위험성이라고 할 수 있다.”
◇ 파월은 그린스펀엔 못 미쳐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은행 정책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틀리면 수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도한 포워드 가이던스도 문제고, 너무 얘기를 안 하는 것도 문제라면 그 중간에서 적정한 통화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묘책을 실전에서 찾아가야 한다.”
- 연준 내 파월은 얼마나 센가.
“금리 결정에서 연준 의장의 역할은 의장 성격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과거 앨런 그린스펀은 굉장히 영향력이 컸다. 그린스펀은 경제를 상당히 오랫동안 봐 왔던 사람이다. 그린스펀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합의를 이뤄 나가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론 자기 중심적이었다. 벤 버냉키나 재닛 옐런은 경제학자 출신이면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파월은 변호사 출신이고, 자주 입장을 바꾼다는 말이 많다. 파월 의장이 현재 연준 내에서 영향력이 큰 것은 맞지만, 전임자들보단 영향력이 적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연준에서 9년 일하며 배운 점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연준 내에서 논의가 상당히 활발하다. 예컨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부의장인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나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 등은 자신 의견을 외부에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얘기한다. 한국에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개인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지금보단 시장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김진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1998년, 2003~2011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통화정책 전략과 거시 경제 모형에 대해 연구·분석하는 일을 했다. 1998~2003년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1998년과 2007~2009년엔 조지타운대 경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0년부터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직 중이다. 주로 통화 정책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트릴레마(Trilemma)
한 국가가 환율 안정, 자유로운 자금 이동, 독자적 통화 정책 등 세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경제학의 이론이다.
▲기축통화
국제 간 무역 결제나 금융 거래에서 기본이 되는 통화를 말한다. 현재 미국 달러가 나라 간 무역 결제나 금융 거래에 가장 많이 쓰이며, 대표적으로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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