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내년 高물가 고통 지속”… 美연준은 ‘침체’ 첫 언급
한은, 성장률 전망 OECD보다 낮춰
한국은행이 24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낮췄다. 지난 8월 전망치(2.1%)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한은의 전망치는 주요 해외 기관들보다도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 신용평가사 피치가 1.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8%로 전망한 것보다 어둡게 본 것이다.
전망치를 낮춘 배경에는 내년에 ‘경기 한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한은의 우려가 깔려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진행된 급격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내년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정체 국면에 빠지고, 한국 경제도 유탄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2%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은 외환 위기가 강타한 1998년(-5.1%),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2009년(0.8%),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0.7%) 외에는 없었다.
◇연준 의사록에 ‘경기 침체’ 표현 등장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브리핑에서 “전 세계가 다 같이 어려울 때 우리만 별도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 건 거의 대부분이 주요국의 성장이 둔화된 요인 때문”이라고 했다.
한은은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0.3%, 유로존은 -0.2%, 일본은 1.3%로 내다봤다. 올해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진행된 금리 인상,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수급 차질, 코로나 봉쇄령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부진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예상보다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은은 밝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전날 공개된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11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의사록에는 ‘경기 침체(recession)’라는 단어가 올해 처음으로 등장했다. 연준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에 경기 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을 기준 시나리오에 가깝게 본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이 내년 경기 침체 확률을 거의 50%로 내다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빅 테크’를 중심으로 대량 해고가 나타나며 노동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이달 들어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는 직원의 13%인 1만1000명을 해고했다. 트위터에서는 3700명가량이 회사를 떠났다. 23일 발표된 지난주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일주일 전보다 1만7000건 늘어난 24만건이었다. 월가의 전망치보다 1만5000건이나 많았고, 8월 중순 이후 3개월 사이 최고치였다.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한국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출 전망이 밝지 않고 내수도 신통치 않은 가운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고통이 가중돼 경기 둔화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수출이 올해 상반기 대비 3.7% 줄어들고, 하반기에 4.9% 증가해 연간으로는 0.7%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수출과 투자가 부진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회복세를 보이던 소비도 금리 상승에 영향 받아 점차 완만해질 것”이라고 했다.
급격히 오른 금리는 이미 경제주체들을 위축시키고, 시중의 자금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금융감독원은 10월 회사채 발행(8조2982억원)이 9월 대비 49.5% 급감했다고 밝혔다. ‘레고랜드 사태’가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고금리 탓에 시중에 돈줄이 말라붙어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
고용 지표도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내년 실업률이 3.4%로 올해(3%)보다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취업자 숫자가 올해는 코로나 사태 회복의 영향으로 82만명 증가할 것으로 봤지만, 내년에는 불과 9만명만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한은은 내년에 경기 둔화가 상반기에 집중되고 하반기는 다소 회복되는 ‘상저하고’ 흐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성장률이 상반기 1.2%, 하반기 2.1%로 연말로 갈수록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도 내년 상반기는 4.1%지만 하반기에는 3.1%로 안정돼 연간으로는 3.6%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대외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경기 부진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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