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는 시장에 여러 악재가 겹치며 증시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수직 상승했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금리 인상 충격 이후 반등하던 미 증시는 4월부터 다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줄줄이 하향 전망을 내놓은 데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강화되면서 공급망 혼란이 가중된 탓이다. 이달 초 연준이 한 번에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까지 단행하자 기술주를 중심으로 투매가 일어나며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팬데믹발 유동성 잔치가 막을 내리기 시작한 1분기, 월가(街) 투자 대가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미국 주식 1억달러(약 1200억원) 이상을 굴리는 큰손들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올해 1분기 투자 보고서(Form 13F)를 WEEKLY BIZ가 분석해 봤다.
◇큰손도 ‘눈물의 손절’
작년 11월부터 이어진 성장주 폭락 앞에선 큰손들도 ‘손절(손해보고 매도함)’을 피할 수 없었다. 성장주는 현재 실적은 나쁘더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주식인데, 금리가 오르면 자금 조달 비용이 비싸져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지난 3월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긴축 속도를 앞당기겠다고 선언하자 큰손들도 성장주를 대량 매도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체이스 콜먼이 이끄는 성장주 투자 전문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다. 타이거글로벌의 주식 포트폴리오 가치는 올해 1분기 266억4200만달러(약 33조7478억원)로, 작년 4분기(459억3800만달러) 대비 190억달러(약 24조6540억원) 증발했다. 컨설팅회사 크리에이트 리서치의 아민 라잔 CEO(최고경영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헤지펀드업계에서 이 정도 규모의 하락은 드물다”며 “금리 인상기가 길어진다면 다시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타이거글로벌은 쿠팡(357만주)과 리비안(75만주), 범블(100만주) 등을 전량 매도했고, 줌(509만주)과 우버(1679만주), 알리바바(422만주) 등도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모두 보유 평단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쿠팡의 경우 타이거글로벌의 추정 평단가는 49.35달러인데, 3월 말 주가는 17.68달러로 만약 이때 팔았다면 추정 손실은 약 1억1310만달러(약 1434억원)에 달한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는 부동산 기술 스타트업 오픈도어 주식 135만주를 매도했다. 3월 말 기준 오픈도어 주가는 8.65달러로, 소로스 평단가(약 16.48달러)의 반 토막 수준이다. 우버(53만주)와 펠로톤(37만주) 역시 손해를 보고 전량 매도했다.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스탠리 드러켄밀러 역시 다수의 성장주를 손절했다. 드러켄밀러는 평균 240달러에 보유 중이던 중고차 거래 플랫폼 카바나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3월 말 기준 카바나 주가는 119달러로 이때 팔았다면 50% 이상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셜미디어 기업 스냅 주식도 121만주 팔았다. 스냅의 3월 말 주가는 35.99달러로 드러켄밀러 추정평단가(47.03달러)보다 23% 낮다.
성장주 투자로 쓴맛을 본 소로스와 드러켄밀러는 나란히 미국 주식 하락에 베팅했다. 소로스 펀드는 작년 4분기에 이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ETF(QQQ)’ 풋옵션을 29만주 추가 매수했다. 풋옵션은 향후 주식을 팔 권리를 담은 파생상품으로, QQQ의 가격이 하락할수록 수익이 커진다. 드러켄밀러는 미국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인 S&P500을 추종하는 ‘SPDR S&P500 ETF 트러스트(SPY)’ 풋옵션 23만9600주를 새로 담았다.
◇에너지·빅테크 비중 늘려
올 1분기에도 큰손들은 에너지주 비중을 크게 늘렸다. 야데니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S&P500 기업 중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섹터는 에너지(50.3%)와 유틸리티(0.7%)뿐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석유기업 셰브론 주식을 1억2093만주 더 사들였고,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주식도 589만주 새로 담았다. 이로써 셰브론(7%)과 옥시덴탈(3.6%)은 버크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각각 4위, 6위를 차지하게 됐다. 드러켄밀러 역시 작년 4분기에 이어 셰브론 주식 14만주를 더 사들였고, 코테라에너지(178만주),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13만주), 세노버스에너지(144만주) 등을 추가 매수했다.
큰손들은 작년 4분기 증시 고점에서 차익 실현을 위해 매도했던 빅테크 기업들을 1분기 하락장에서 다시 담았다. 하버드대 수학 교수 출신 제임스 사이먼스가 이끄는 퀀트(계량 분석) 전문 대형 헤지펀드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작년 4분기 전량 매도했던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AMD 주식을 다시 711만주 매수했다. 테슬라(81만주), 애플(183만주), 아마존(5만9400주), 메타(227만주) 등 빅테크 주식도 더 사들였다. 팬데믹 이후 증시 거품론을 꾸준히 주장해온 제러미 그랜섬의 GMO도 작년 4분기 비중을 줄였던 메타(11만주)와 구글(8131주), 어도비(4만주)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애플 주식을 379만주 더 사들였다. 다만 빅테크 주식은 2분기 들어서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 증시에 상장된 빅테크 주식 10개를 추종하는 FANG+ 지수는 이번 분기 들어 24일 현재까지 29%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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