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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증시 현황

무려 1경원 돌파, 상상도 못할 돈이 여기로 몰렸다

무려 1경원 돌파, 상상도 못할 돈이 여기로 몰렸다

[WEEKLY BIZ] 열풍 넘어 광풍이 된 ETF

입력 2021.12.23
 
 
 

주식시장에 상장돼 일반 종목처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펀드인 상장지수펀드(ETF)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요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저금리 등의 영향으로 시중에 풀린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주식·원자재 등 각종 자산의 가치를 끌어올리면서 ‘대투자의 시대’가 열렸는데, ETF가 편의성을 앞세워 최적의 투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전체 주가 지수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르는 기존의 ‘패시브(수동형) ETF’ 외에 시시각각 변하는 산업계 트렌드를 반영한 ‘테마형 ETF’, 펀드매니저가 발굴한 종목을 편입해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능동형) ETF’ 등이 다수 출시된 것도 ETF 투자의 저변을 크게 넓히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ETF 쏠림 현상이 시장에 ‘거품’을 만들고, 유행처럼 뜨고 지는 테마형 ETF가 난립하면서 ‘장기 분산 투자를 통한 안정적 수익 창출’이라는 ETF 본연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etf 1조달러시대/일러스트=김영석

◇펀드·주식 장점만 결합한 ETF 급성장

ETF는 펀드와 주식의 장점만 결합했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펀드는 전문가가 특정 분야 대표 자산들을 선별해 고르게 투자하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만, 투자금을 회수할 때 3일 이상 걸려 최종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고, 운용 보수가 다소 비싸다는 점(투자금의 0.6~0.9%)이 아킬레스건이다. 개별 종목 직접 투자는 일반인이 예상하거나 즉각 대처하기 어려운 이슈에 따라 주가가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ETF다. 펀드를 상장했기 때문에 안정적 수익을 기대하면서도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다.

 

투자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크다 보니 전 세계 ETF 규모는 지난 1993년 미국에서 ETF가 처음 등장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와 작년 코로나 사태가 ETF 시장을 키우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개별 주가의 출렁임이 심해지면서 분산 투자의 속성을 지닌 ETF가 수익률 변동을 줄여줄 수 있는 투자처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미국의 데이터기업 트랙인사인트의 애나엘 우발디노 ETF연구 및 투자자문 책임자는 “ETF는 지난 20년간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공 사례”라고 말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전 세계 ETF에는 1조810억달러(약 1280조원)가 유입됐다. 작년 전체(7360억달러) 유입 규모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팬데믹이 발생한 작년과 올해의 ETF 투자금 증가율은 각각 40.5%, 46.9%에 달해 2018년(-28.7%)과 2019년(11.7%)을 크게 앞지른다. 글로벌 ETF의 총자산 규모는 지난 3년 사이(2018~2021년) 4조6820억달러(약 5536조원)에서 9조6680억달러(약 1경1440조원)로 2배가량 불어나 1경원을 돌파했다.

◇‘메뉴’ 다양해진 ETF

ETF 투자 수요가 늘면서 ‘메뉴’가 다양해진 것도 ETF의 급성장을 이끄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몇 년 전만 해도 S&P500이나 코스피200과 같은 주요 주가지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인덱스)형 ETF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유망 산업 분야를 발 빠르게 포착해 관련 주식을 담는 테마형 ETF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비트코인,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소셜미디어, 클라우드 컴퓨팅, 원자력 등 최근 떠오르는 분야는 대부분 ETF가 출시돼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투자자에겐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골프산업, 명품, 탄소배출권 등 틈새시장에 투자하는 이색 ETF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패시브 ETF와 달리 펀드매니저가 상황에 맞춰 자산 비율과 거래 방식을 조절해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ETF도 급증하고 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액티브 ETF 운용 규모는 지난 2019년 406억달러(약 48조원)에서 올해 10월 기준 1944억달러(약 230조원)로 1년 반 만에 4.8배가 됐다. 같은 기간 패시브 ETF 운용 규모가 63% 증가한 것과 비교해도 놀라운 성장세다.

 

◇“ETF 광풍이 시장 거품 키워”

하지만 일각에서는 몸집이 커진 ETF가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TF는 자금이 들어오면 주가가 싸든 비싸든 기계적으로 주식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일부 종목의 주가에 거품이 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좁은 테마의 ETF일수록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소규모 기업 주식에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은데,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 (통화 긴축정책 등으로) 돈이 안 돌기 시작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테마형 ETF의 경우, 해당 분야에 대한 인기가 절정일 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ETF 매수 시점이 ‘끝물 시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TF로 한탕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인버스) 주가 하락률의 2~3배 넘는 손실을 볼 수 있는(레버리지) ‘도박형’ ETF들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송준혁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작용을 규제로 해결할 수는 없고, 상호 보완적 성격의 ETF들을 다양하게 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