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소변 마시고 小食한 사대부 제 몸 잘 알아 오래 살았죠"

[잠깐! 이 저자] "소변 마시고 小食한 사대부 제 몸 잘 알아 오래 살았죠"

  • 입력 : 2011.02.12 03:01

[잠깐! 이 저자] '명문가의 장수 비결' 쓴 정지천씨

노론(老論)의 우두머리였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여든세 살에 명을 달리했다. 숙종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서였다. 첫 사발을 마셨을 때 끄떡도 하지 않아 세 사발이나 마시고서야 비로소 숨을 거뒀다고 한다. 우암은 평소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모를 정도로 원기 왕성했다. 임금의 노여움을 사지 않았더라면 백수(白壽)를 누렸을지도 모른다. 비결은?

 
정지천 교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을 보면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처럼 귀양을 다녀온 사람들이 오래 산 경우가 많다"면서 "쉴 새 없이 일만 하던 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으니 귀양이 오히려 휴가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명문가의 장수 비결'(토트)을 쓴 정지천(50) 동국대 한의대 내과 교수는 "우암은 매일 어린아이의 소변을 받아마셨다"고 했다. '요료법(尿療法)'을 실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어린아이의 소변이 화기(火氣)를 내리고 어혈을 풀어주는 것으로 보는데, 의학에 밝았던 우암은 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소변에는 면역기능을 강화시키는 물질이 포함돼 있습니다. "

'명문가의 장수 비결'은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 열다섯 곳의 양생법(養生法)을 다룬다. 정 교수는 당시 사대부 가문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건강법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우암,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등 예순 살 넘게 산 인물들의 장수 비결을 탐구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어릴 때 몸이 약했다. 열 살이 될 때까지 글을 배울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든세 살까지 살았다. 그의 건강 비결은 소식(小食)과 콩을 이용한 단백질 섭취. 정 교수는 "경화세족들의 사치 풍조를 비판했던 성호는 친척들을 모아 콩죽·콩장·콩나물 등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절식(節食)하는 모임인 '삼두회(三豆會)'를 조직했다"고 했다.

해학과 기지가 뛰어났던 백사 이항복의 장수 요인은 유머였다. 정 교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지는 생활 태도는 면역기능을 강화시킨다"고 했다. 그는 "백사의 가문이 백사 이래 10명의 정승을 배출하고, 우당(友堂)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을 낳은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낙천적인 집안 분위기가 큰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의원을 능가할 정도로 의학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몸이 아픈 것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부모가 병들었을 때 자식이 직접 고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기는 것도 불효라고 여겼죠."

정 교수는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체질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며 건강을 다스렸다"면서 "몸에 좋다면 덮어놓고 건강식품을 섭취하는 현대인들이 조상들의 태도를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했다.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인 정 교수는 '식의들이 알려주는 생명의 음식', '조선시대 왕들은 어떻게 병을 고쳤을까' 등 건강 관련 교양서를 꾸준히 써 왔다. 정 교수 자신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죠. 저는 '사람은 자기의 할 일을 다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리빙스턴의 말을 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제 할 일을 찾아 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제 양생법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