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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부 비결은 스톱워치" 마이스터高·부산大 기계과 나와 사법연수원 수석



입력 2019.03.02 03:00

[이혜운 기자의 살롱] 지방대 출신 최초 연수원 수석 "공부가 재미있었다"는 김진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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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플래카드에 붙고 싶었다.” 이 작은 소망으로 시작한 공부는 공대생을 공인회계사로, 사법연수원 최초 지방대 출신 수석 변호사로 이끌었다. 학창 시절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말을 들은 적 없다는 그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하니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법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진수 변호사.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

부산 동해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성적도 40등 중 5~6등.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학원은 월·수·금 수학만 다녔다.

아버지는 직장인, 어머니는 선생님. 학창 시절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다만, 악기 하나는 할 줄 아는 게 좋다며 트럼펫을 배웠고,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며 방학 때마다 YMCA캠프 등을 다녔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경남 진주에 있는 마이스터고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졸업하면 항공 기술 분야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한다. 취업 걱정 없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딱 한마디 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 소년은 자라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됐을까. 군인일까, 엔지니어일까, 아니면 프로게이머일까.

지난 1월 열린 제48기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수석인 대법원장상을 받은 김진수(30)씨가 바로 이 소년이다. 제49기와 50기 졸업생이 각각 65명과 1명이기 때문에, 100명 이상 졸업생 중 수석은 마지막. 김씨의 최종 학력은 위탁 교육 과정으로 다닌 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이다. 그는 사법연수원 최초 지방대 출신 수석 졸업생이기도 하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1996년 막노동꾼 출신으로 서울대에 수석 합격한 장승수씨의 이 말은 당시 수험생들에게 가혹한 고통이었다. "누구는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서울대 가는데"라는 말까지 부모에게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도 이번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공대 시절 그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한 번에 붙어 화제였다. 졸업 후에는 군 복무 중 사법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 남들은 수험 공부를 끝내기 시작하는 스무 살 무렵, 그는 왜 공부에 재미를 붙인 걸까. 김앤장법률사무소에 출근하며 새내기 변호사 5일 차였던 그를 지난달 13일에 만났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김 변호사는 사시 합격 전인 2010년 CPA(공인회계사) 카페에서 '불쌔'라는 아이디로 유명했다. 공대 출신이 CPA 시험을 초시에 한 번에 붙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불새는 그가 즐기던 컴퓨터게임 '바람의 나라' 아이디. 새벽 3시에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으며 공부했다는 그의 합격 수기는 지금도 화제다.

―항공과학고부터 사법연수원까지 계속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항공과학고를 간 건 항공기 정비에 관한 일을 배우니깐 나중에 군 생활이 아니더라도 항공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 쓸 수 있는 기술을 어릴 때부터 배우는 거에 흥미를 느꼈다."

―일찍부터 진로를 정해야 할 집안 사정이 있었나.

"그런 건 없었다. 아버지는 증권회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세 살 어린 여동생까지.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대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위탁 교육으로 갔다. 기계공학을 배우면 나중에 항공 기술 일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CPA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당시 공대생들도 경영·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회계 관련 수업들을 듣게 했다. 문과대에 갔는데 '사법시험 합격자' '공인회계사 합격자' 등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더라. '내 이름도 플래카드에 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위탁 교육을 나온 상태니깐 대학을 마치면 돌아가 군 복무를 할 건지, 전역해서 다른 일을 할 건지에 대한. 그렇게 1년이 지나고 CPA에 도전했다."

―CPA를 휴학 없이 한 번에 합격한 게 화제였다.

"2학년 때 공부 시작해서 3학년 1학기 때 1차 붙고, 2학기 때 2차에 붙었다. 휴학을 안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덕분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어떻게 공부했나.

"스톱워치 공부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공부할 준비 다 해놓고 책상 위에 책 펴놓고 집중해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할 때 스톱워치를 켠다. 그리고 잠시 어떠한 이유로든 집중을 안 할 때 끈다. 그러면 딱 공부한 시간만 카운트 된다. 처음엔 내가 온종일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하루 4~5시간밖에 안 하더라. 그래서 그 시간을 좀 더 많이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차츰 요령도 생겨 스톱워치 시간으로 하루에 10시간까지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집중을 안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나.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거나, 졸거나. 목이 마렵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그런데 공부가 재미있었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내게 CPA 공부는 안 해도 상관없는 공부였다. 그런 공부를 한 이유는 재밌었기 때문이다. 물론 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뭔가 쌓여 가는 느낌도 들고, 충실하게 산다는 느낌도 들었다.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공대 수업이 끝난 오후부터 새벽 내내 혼자 공부하면 새벽 3시쯤 문 여는 식당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 학점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 '과연 붙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슬럼프가 와 울면서 꾸역꾸역 공부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하니 정말 재밌었다."

스톱워치·엑셀 공부법

'공부의 끝판왕', '피라미드의 꼭대기'.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생이라면 이 정도 수식어를 달아도 되지 않을까. 흔히 '사법연수원생은 연수생이 아니다'라고 말을 한다. 사시에 합격한 공부 고수들이 고시생 시절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기 때문이다. 공부량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아 실제로 시험장에서 쓰러져 숨진 사례도 있다.

―사시는 왜 도전했나.

"CPA 합격 당시에는 전혀 생각이 없었다. 공군에서는 CPA 자격증이 있으면 재정 장교라고 우선 선발한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했다. 재정 장교가 되면 외부 업체와 계약할 일이 많다. 계약이 평탄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건·사고가 터지면 법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난 법을 모르니깐 그때마다 법무실 가서 물어봤는데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내가 일을 맞게 하고 있는지 불안해서 관련 규정을 찾아보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공부했을까. 진짜로 하고 싶은 건 뭘까. 서른 살에 국내 최고 로펌 변호사가 된 지금도 그는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일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도 하고 싶은 걸 찾아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당시 사시는 폐지되는 분위기였는데 로스쿨 갈 생각은?

“군 복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로스쿨을 갈 수는 없었다.”

―군 복무를 하며 어떻게 공부했나.

“보통 출근이 오전 9시, 퇴근이 오후 6시다. 저녁에 퇴근하고 나면 바로 잤다. 그리고 자정에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 공부한다. 출근하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자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매일 반복하면 평일에는 5~6시간 정도 공부 시간이 나온다. 주말에 확 몰아서 공부한다. 이때도 스톱워치를 썼다. 그리고 사시 때부터는 과목별로 공부한 시간을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중에 과목별로 총 몇 시간 공부했는지가 나온다. 사시는 과락(科落)이 있기 때문에 균등하게 공부하는 게 중요했다.”

―사시는 얼마 만에 합격했나.

“2012~2015년에 군 복무했는데, 2013년부터 시작해 2015년 2월에 1차에 합격했다. 2015년 7월에 전역해 그해 친 2차는 떨어졌고, 이듬해 붙었다. 그 시험에 떨어지면 (사시 폐지로) 다시 1차 시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안 되면 회계법인에 취직하려고 했다.”

―연수원 수석이다. 법학 전공이 아닌 원생이 수석 한 것도 이례적이다.

“연수원 공부는 사시 공부랑 다르다. 새로운 공부니깐 내가 남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남도 처음 하는 건데 뭐.”

―보통 연수원 수석은 판검사 길을 선택하던데.

“판사는 바로 지원하는 게 아니어서 고려하지 않았다. 검사는 로펌 합격 후 시험이 있어서 지원하지 않았다. 사시 합격은 법조인 길을 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거지, 전문성이 쌓인 게 아니지 않나. 김앤장에 입사하면 맡을 수 있는 사건이 많으니깐 전문성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연수원 수석은 원하는 곳에 골라 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웃음). 입사 시험을 치고 몇 번씩 면접을 봤다. 국내 5대 로펌은 다 넣었다. 연락이 안 와 떨어졌나 걱정하고 그랬다.”

방목형 교육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주요 키워드는 ‘조기 교육’이다. 어릴 때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야, 성인이 된 후에서도 꼭대기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논리였다.

―부모님 교육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누구와 가깝나.

“우주 어머니다. 학창 시절 한 번도 내게 ‘공부해라’ ‘어느 대학 가야 한다’는 말씀을 안 하셨다. 그런 말을 하는 분이셨다면 항공과학고를 가도록 두지도 않으셨을 거다. 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행복하면 된다’고 하셨다. CPA나 사시 공부할 때는 ‘쟤가 왜 저렇게 공부하나. 그렇게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는데’라고 하셨다. 그래도 ‘해놓은 거 보니 대견하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방목형 교육이 어떻게 도움이 됐나.

“난 중·고등학교 때 공부 때문에 방전된 적이 없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 중요한 공부를 하게 됐을 때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어릴 때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 공부가 싫다는 기억도 없다. 남들이 어릴 때 하는 공부를 늦게 시작한 건데, 이렇게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했다. 공부를 너무 오래 했으면 질렸을 텐데, 그러기 전에 합격한 게 다행이었다.”

―부모가 방목한다고 해서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한 공부는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수준의 공부다. (노벨상 수상 같은) 대단한 학문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시험을 붙은 거니까.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노력했다. 놀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보다 공부해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더 컸던 거 같다.”

―자신도 그런 부모님이 될 것 같은가.

“난 스카이캐슬 드라마에서 극성 아빠인 차 교수 심정이 이해 가더라. 아버지로서 애가 대학 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지 않겠나.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인데. 막상 자녀가 생기면 불안해서라도 우리 부모님처럼 내버려두지 못할 것 같다.”

―새로운 길에 도전할 때마다 고민된 적은 없나.

“지나고 나니 미화가 되는 것 같은데, 모든 수험생은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고민을 하든 안 하든, 시험 날짜는 다가오고 있고, 공부를 때려치울 게 아니라면 계속 해야 하는 거니깐, 고민 자체를 안 하려고 했다. 안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평소 성격도 긍정적인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합격한 사람들 수기도 읽어 보고, 계획도 세워보고, 될 것 같으니깐 만반의 준비를 한 거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나.

“아직 실무 경험이 없어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경력을 쌓다 보면 또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을까 싶다. 다만 회계사 자격증, 공군 장교 경험 등을 살려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나.

“그 질문이 늘 어려웠다. 면접 볼 때나 자기 소개할 때. 나도 뭔가 거창한 걸 말하고 싶은데, 나도 아직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 모든 건 그걸 찾아가는 과정 같다.”

그의 삶에선 더 빨리 더 높이 달리라고 채찍질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는 선택의 순간에서 오롯이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한 결정을 했다. 그의 부모는 옆에서 믿고 지켜봤을 뿐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한 대답은 “재밌었다” “잘 모르겠다”였다. 기사가 나갈 만한 사람도 아니고, 기사가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다
고 했다. 서른 살 국내 최고 로펌에 입사한 그는 지금도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일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졸업 축사를 한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꿈 자체가 없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 큰 꿈이 없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김 변호사의 앞으로 30년이 더 궁금해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1/20190301014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