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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어느 말기 암환자의 생전 장례식

입력 2018.08.15 03:01 | 수정 2018.08.15 10:13

검은 옷 대신 평소 입던 옷 입고 지인들과 노래하고 대화 나눠
"죽고나서 장례 지내면 뭐하나, 살아있을 때 작별인사 해야지"

"아니, 왜 꼭 죽은 다음에 장사(葬事)를 지내.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거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14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 3층에서 김병국(85)씨의 '생전(生前) 장례식'이 열렸다. 김씨는 1년 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이 병원에 입원 중이다. 병세가 심해 병원에서조차 "1~2주일 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장례식장'은 김씨 병실이 있는 3층 복도 끝 세미나실에 마련됐다.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이라고 쓰인 입간판과 방안을 채운 풍선과 꽃이 손님을 맞았다. 김씨도 평소 입던 환자복을 벗고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다. 곧 '조문객' 40명이 도착했다.

1년 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병국(85)씨가 14일 서울 시립동부병원에서 열린 자신의‘생전 장례식’에서 한 조문객과 포옹하고 있다.
1년 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병국(85)씨가 14일 서울 시립동부병원에서 열린 자신의‘생전 장례식’에서 한 조문객과 포옹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지난 5월 병세가 악화하자 김씨는 자신이 부회장으로 일했던 노인 단체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처장에게 연락했다. 김씨가 "내가 죽으면 따로 장례식 하지 말고 화장해 유골을 뿌렸으면 좋겠다"고 하자, 고씨가 "그러면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생전 장례식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주 지인들에게 자신의 부고장(訃告狀)을 보냈다. "죽은 다음 장례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임종 전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함께 춤추고 노래 부릅시다." 김씨의 요청대로 검은 옷이 아니라 분홍색 셔츠,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장례식을 시작하자 조문객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와 김씨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김씨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마지막까지 일했던 '종로구 시니어클럽' 관장 전석달(58) 신부는 "아픈 이별보다 모두가 함께 모여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오히려 뜻깊다"고 말했다.

김씨는 1933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인 1947년 외삼촌과 함께 서울에 왔다. 대한전선에 취직했고,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서도 일했다. 건설 회사 몇 군데를 다니다 20여년 전 퇴직했다. 결혼해 아들·딸을 뒀지만 지금은 절연했다고 한다. 정부 '노인일자리사업'에 지원해 다른 독거 노인을 돌보고 받는 돈과 기초연금으로 살았다. 작년 4월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서야 전립선암이 온몸에 퍼져 있는 것을 알았다. 연명 치료도 받지 않기로 했다.

조문객의 말이 끝나자 김씨가 마이크를 잡고 평소 좋아하던 양 희은의 '아침 이슬'과 여성 듀엣 '산이슬'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다. 조문에 대한 답사(答辭)인 셈이다.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헤어지기 싫어서 헤어지기 싫어서…."

조문객들은 두 시간 동안 다과를 나누며 김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력이 부친 김씨가 병실로 돌아가려 하자 조문객들은 웃으며 그와 포옹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5/20180815001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