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05 05:59
원달러 환율 10% 내려도 제조업 상장사 이익률 감소는 0.3%P 불과
“환율 영향이요? 컨퍼런스콜(기업 실적 발표 이후 애널리스트들과 기업의 전화 회의)에서 환율이 얼마나 언급되는 지 보면 가늠이 될 텐데, 요즘은 중요한 요인으로 언급되지 않고 일부 기업에서 이따금 거론되는 수준이죠.”
“요즘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데,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으로 예상되느냐”고 한 증권사 투자전략 담당 연구원에게 물었다. 이 연구원은 “산업마다 달라 일일이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 이후 약간 뜸을 들이다 “콘퍼런스콜을 보라”는 답을 내놨다. 딱 잡아 이야기할 정도로 깊이 생각해본 주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요즘 기업 실적에서 주요한 변수로 거론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원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일각에서는 ‘신3고(高)’ 이야기가 나온다. 원화가치, 유가, 금리가 모두 상승하면서 수출을 비롯한 기업 여건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원화 가치, 유가, 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내수와 수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2018년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까지 내놨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지난달 말 장중 한때 달러당 1070원대로 떨어지면서 곤두박질 치자 지나친 원화 강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기업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금 수준의 환율 변동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를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4분기 들어 주요 상장사 가운데 실적발표에서 환율에 대한 언급이 나온 건 10월 말 기아차가 거의 유일하다. 당시 한천수 기아차 재경본부장은 3분기 실적을 설명하면서 “환율이 달러와 유로 루블화 등 대부분의 통화가 유리하게 움직이며 손익에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판매 지표보다 기업 손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거론된 셈이다.
이 같은 온도차이는 먼저 환율이 오르락내리락 해도 기업의 수출 판매 물량에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배병호 한국은행 국제무역팀장은 “해외 시장에서 달러화로 표시된 가격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바뀌어도 실제 상품 가격에는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배 팀장은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료나 중간재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가가 상승하는 측면이 있는 데 그것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이익이 주는 게 오히려 주된 문제”라고 덧붙였다. “단기적인 변동 보다 환율 하락이 장기적, 규모가 크게 나타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환율 하락이 수출품 가격 인상과 기업 이익 감소에 각각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분석했다. 그 결과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그 영향은 수출 가격 인상으로는 1.9%포인트 만큼, 기업 이익 감소로는 8.1%포인트 만큼 각각 배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쟁 때문에 달러화로 표시되는 제품 단가를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 이익 감소 효과가 집중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환율, 수출단가, 기업이익의 추이를 선형회귀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다.
산업연구원이 2015년말 발간한 ‘한국의 거시경제 및 산업구조 변화와 환율의 영향력’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환율이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1% 내려가면 제조업 상장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이 10% 급락한다 할지라도 평균 영업이익률 감소 규모는 0.3%포인트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1%의 원달러 환율 변동이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2000~2011년에는 평균 0.05%포인트였던게, 2006년 이후만 분석할 경우 5분의 3 정도로 줄어들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홍성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이 기업 채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최근으로 올수록 감소하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산업별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다. 그 결과 주력 산업인 주력업종인 전기 및 전자기기, 정밀기기, 수송장비 등에서 환율의 영향력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 ▲ 산업연구원이 2006~2011년 제조업 상장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원달러 환율 1% 변동이 영업이익률에 미치는 영향은 0.03%포인트에 불과하다.
실제 기업들의 실적도 환율과는 무관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IT의 경우 환율 변동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자동차의 경우 환율이 하락했던 2012~2014년에 오히려 수출이 크게 늘었다.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내구소비재인 신규 자동차 판매가 뛰었었다.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 별개로 절대적인 물량이 증가한 것”이라고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했다. 고 연구원은 “지역 딜러망과 협의해 먼저 판매량을 정하는 미국 자동차 유통구조 특성 때문에 환율은 판매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게다가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현지 생산 물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결국 환율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화로 바꾸어야하는 이익 규모라는 것이다. IT도 사정은 비슷하다. 휴대폰의 경우 버라이즌, AT&T 등 현지 통신사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회사가 미리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물량을 공급하기로 제품 생산 몇 달 전 계약을 맺는다. 반도체는 환율보다 반도체 사이클에 따른 가격 변동이 오히려 큰 이슈다.
지금의 환율 하락의 원인을 먼저 짚어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 자금 유입이 계속되는 이유는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됐기 때문”이라며 “이를 감안하면 환율이 하락하는 것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가 살아나고 기업 수출도 늘어나자 경상수지 흑자가 뛰는 데다 외국인 투자자금까지 국내로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환율 하락이 나쁜 측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2015년 보고서에서 환율이 노동소득 분배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환율이 1% 하락할 때 제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0.12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 가치가 강해지면 그만큼 수입제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국내 소비자들의 후생도 증가하게 된다. 홍 팀장은 “결국 원달러 환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대규모로 하락할 것이냐가 최대 변수”라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이 단기간에 급격히 하락하게 되는 경우다. 한국은행이 2013년 작성한 ‘비용측면을 고려한 환율 변동의 수출가격 전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 변동이 현재 수준의 2% 내외에 그칠 경우 수출 또는 수입 상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가격이 큰 폭으로 변화했다. 환율 변동 자체보다 ‘규모’와 ‘속도’가 문제라는 의미다. 이 경우 현재 외환 시장에 별다른 개입을 하고 있지 않고 있는 정부가 어느 정도 시장 변동에 개입할 지가 관건이 된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4/2017120402345.html?main_hot1#csidx11d4509c9ab6b49aa5b505a1bd912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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