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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2천억 재산 보유 알부자 영감이 재벌되기를 포기한 이유는?

이웃빌딩 5층에는 항상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가진 60대 말의 남자가 살고 있다. 여러 채의 빌딩과 수천억을 가지고 있는 알부자라는 소문이다. 동네교회에서 그와 알게 된 후 그는 내게 바둑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오후의 빈 시간이면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포석부터 시작해서 행마 등 바둑의 기초를 배우면서 그와 친해지게 됐다. 한번은 바둑을 배우고 가까이 있는 국밥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지금 재산이 얼마쯤 돼요?”
  실례가 되는 당돌한 질문이었다.
  
  “글쎄, 한 이천억쯤 될까? 몇 년 전에 미국의 산타모니카 근처 도로를 따라 난 유태인 소유의 주유소 이십 개쯤을 한꺼번에 사려고 했을 때 대충 계산해 보니까 그렇더라구요. 유태인하고 흥정을 하다가 집어치웠어요. 주유소라고 해도 미국의 주유소는 그 안에 정비시설이나 음식점 슈퍼등 점포가 포함되어 있죠.”
  
  “유태인하고는 어떻게 흥정을 하셨어요?”

 
  “유태인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상인이잖아요? 최고급차에 호화로운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가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대접을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살피는 거예요. 왜소한 나를 보고 진짜 돈이 있는지 살피더라구요. 저는 무조건 30% 깎자고 후려쳤어요. 왜냐하면 그 정도 할인해서 사면 거품이 빠지고 부동산경기가 침체되도 견딜 만하니까요. 유태인은 10% 이상은 안 된다고 했죠. 버텼어요. 유태인이 물건을 팔 때면 왜 파는지 잘 살펴야 해요. STX그룹의 강만수 회장이 그리스 선박회사를 샀다가 골병이 들었어요.
  외국기업은 세계의 경제동향에 대해 빠삭해요. 더 이상 재미가 없을 것 같은 회사를 잘 포장해서 한국 기업가에게 파는 겁니다. 그런 걸 무리하게 덜컥 잡으면 회사가 망하게 되는 거죠. 나도 캘리포니아에서 주유소를 여러 개 가지고 있던 그 유태인놈한테 속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 후에 미국에서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고 부동산가격이 폭락했는데 거기 걸릴 뻔했다니까요. 그런 경우까지 가상해서 제가 30%를 깎자고 했던 거죠.”
  
  소탈한 그의 내면은 작은 거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부자가 됐어요?”
  한 인간이 부자가 되는 과정은 항상 흥미진진하다.
  
  “저는 서울의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가 은행원이셨는데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행원으로 들어갔죠. 은행 안에도 여러 길이 있어요. 각 부서를 돌면서 임원이 되는 게 대부분 엘리트 행원들의 목표죠.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어요. 좋은 부서나 해외근무가 있어도 가지 않고 부동산 부서에만 이십 년 동안 못박혀 있으면서 현장실무를 하면서 별도로 부동산에 대해 공부를 했어요. 은행 안에서는 부동산 박사로 통했죠. 업무가 그렇다 보니까 자연히 재벌그룹이나 각 일반기업의 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내부 상황도 잘 알 수밖에 없었죠. 부동산 박사라고 소문이 나니까 그 시절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이 나한테 여기 이 땅을 사면 어떻겠느냐 저기 저 땅을 사면 어떻겠냐? 하고 많이 물어오는데 그 사람들이 권력 내부에서 정보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알게 되더라구요.”
  그는 오랜 시간 한우물만 파는 스타일 인 것 같았다.
  
  “그 다음은요?”
  “IMF 직전이었어요. 건설업을 하던 친구가 평생을 그렇게 은행원 생활만 하겠느냐면서 나를 직장에서 반강제로 끌어냈어요. 나보고 파트너가 되어 자기 회사에서 금융과 부동산을 맡으라는 거였죠. 외환위기에 별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재벌들이 자기네가 가진 노른자 땅을 막 투매하는 거예요. 금덩어리 같은 그 땅들이 나 같은 놈에게 헐값에 그냥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그 내부 상황은 잘 알고 있잖습니까? 아파트나 상가를 짓다가 부도가 나서 주저앉은 부동산들이 널렸더라구요. 그것들을 줍다시피 헐값에 사들였어요. 심지어 운이 닥쳐 오려니까 몇백 대 일을 하는 부동산 경매에 입찰신청을 해도 낙찰이 되는 겁니다. 나는 갑자기 돈 폭탄을 맞은 것 같았어요. 은행에 현찰을 넣고 있으면 이자율 자체가 30%를 넘으니까 돈이 돈을 벌구요.”
  
  부자가 갑자기 그렇게 만들어지는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는데도 사업이 계속 번창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만든 건설회사 지금도 업계에서 알아주죠. 같이 사업을 하던 파트너 친구는 이왕 이렇게 호랑이 등에 탄 거라면 자기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따라잡는 재벌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해냈어요. 그런데 그 때 저는 더 나아갈 것인지 그쯤 벌고 정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았죠. 그 다음부터는 분당 같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일인데 용수권이나 인허가 문제를 둘러싸고 관료들을 매수해야 하고 조직폭력도 고용해서 써야 하는 게 사업 현실이었죠. 그걸 파트너가 해 왔는데 그때부터는 직접 내가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됐죠. 사업을 더 확장하려면 정치권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주변에서는 저보고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하라고 했습니다. 한보의 정태수 회장도 그렇게 재벌이 되지 않았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내가 물었다. 거기서 발을 빼기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저는 재벌이 되는 거 포기하기로 했어요. 그만한 부자가 될 그릇이 못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도 없습니다. 아내는 약사로 저는 은행원으로 평범한 소시민의 생활을 감사하면서 살아왔죠. 분수를 지키며 그냥 일반 부자 정도로 살아도 과분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돈이 쏟아져 들어오니까 그 전에는 착실하던 파트너 친구가 사람이 변하는 걸 옆에서 보게 됐어요. 회사 광고모델로 뽑은 연예인을 데리고 룸 쌀롱을 집같이 드나들고 다니더라구요. 돈이라는 게 없던 게 생기면 사람을 술과 여자 쪽으로 타락시키더라구요. 
 
  서울 근교 경치 좋은 곳에 8만 평의 땅을 사서 성(城)같이 별장을 지었는데 돈이 많으니까 뜯어서 바꾸고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짓는 사치를 부리더라구요. 우리 부부는 생활을 바꾸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우리는 별장을 가지지 않겠다고 했어요. 음식도 계속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회사원들이 모두 파트너 쪽에 줄을 서면서 저는 소외되는 느낌이었죠. 제 지분을 돈으로 계산해 받고 결별했어요. 그 돈을 은행에 예치하니까 가만히 있어도 돈이 돈을 벌어 주더라구요. 거기서 정지한 거죠. 돈이라는 게 있으면 골치가 아픈 면도 있어요. 그 돈을 어디다 재투자하느냐 어떻게 하면 뺏기지 않고 지키나 하는 게 보통 고민이 아니죠.”
  
  “은행원으로 오래 계셨으면 돈의 흐름을 아실 텐데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던가요?”
  다른 종류의 부자 행태도 궁금했다.
  
  “제가 은행원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보면 외국에서 차관이 들어오면 그 돈을 배정받고 그걸 은행에 넣고만 있어도 부자가 됐어요. 외국의 차관 이자를 2%로 가정하고 우리 이자가 25% 이상이었으니까 그 돈만 배정받으면 벼락부자가 되는 거죠. 정치권이나 재경부에서 그걸 결정해서 그 돈을 누구에게 주라고 은행에 명령을 하는 겁니다. 정치권과 재경부가 은행장들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꼼짝을 못해요. 그러는 바람에 담보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돈을 대출해 주고 기업이 망하면 그 돈은 전부 국민세금으로 갚아왔죠. 그 돈은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나눠 먹구요. 공기업의 자금이나 금융권의 대출압력을 넣을 수 있는 정치권에 나쁜 놈들이 많았어요.”
  
  “재벌이 되겠다던 파트너 분은 재벌이 됐나요?”
  “건설회사라는 게 아무리 커도 끝까지 가면 저는 망할 위험이 많다고 봅니다. 다들 제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니죠.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금융계 여러 곳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는 건데 그 이자를 감당하기가 어렵죠. 그리고 분양이 다 잘되는 것도 아니구요. 모든 기업이 패망하는 원인이 알고 보면 마찬가지죠.”
  
  그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뇌물로 관료를 매수하면 후에 반드시 망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멈출 때 멈출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 사는 건 어떻게 살아요?”
  내가 물었다.
  
  “아내가 약사하고 내가 은행원 할 때나 별다른 게 없어요. 내 빌딩 가까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에 가서 3천원짜리 밥을 사먹으니까 맛이 있던데요?”
  
  검소한 그의 생활이었다. 나하고 같이 밥을 먹을 때도 근처의 콩나물 국밥집이나 두부 백반 집에 가는 정도였다. 부부가 명품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 거면 부자해서 뭐해요? 부자라서 뭐가 좋은 건데?”
  내가 물어보았다.
  
  “하긴 나도 그래요. 부자가 되니까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오히려 좋은 부동산 있다면서 사라고 하면서 와서 조를 때 괴로울 때가 더 많아요. 사람들 참 이상해. 좋아 보인다고 부동산을 덜컥 계약부터 해 놓고 중도금 잔대금이 없어 절절 매다가 나 같은 사람한테 와서 넘기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거네?”
  “그런 셈이지.”
  양극화가 사회문제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운도 주는 사람에게만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얼마 후였다. 시리아 국경지역의 난민촌 안에서 학교를 하면서 난민아이들을 돌보는 분이 나의 사무실을 들렸다. 그는 진흙벽돌을 한 장 한 장 직접 만들어 집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 강당을 만드는 중이었다. 평생을 빛도 없이 이름 없이 그런 일들 속에 파묻혀서 사는 성자(聖者)였다. 이웃의 부자영감을 불러내어 근처 된장찌개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며칠 후 다시 시리아 난민촌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웃집 부자가 3천만 원을 주면서 나머지 학교를 짓는데 드는 비용도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며칠 후 이웃의 부자 영감한테서 전화가 왔다.
  
  “좋은 일에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서 감사해요.”
  우리 사회에 들꽃향기를 뿜어내는 이런 부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