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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고] 인기있는 주장 vs 지혜로운 판단


[기고] 인기있는 주장 vs 지혜로운 판단

  • 입력 : 2011.02.05 23:10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지금 우리가 잘 먹고 잘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다소 어렵더라도
대대손손 잘사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의 기로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그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계기가 있다. 바로 '인기가 좋은' 판단과 '지혜로운' 판단이 서로 경쟁할 때이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 후 한국 경제의 기조를 정했을 때이다. 그때 '인기 좋은' 판단은 북한과 같이 자급자족 경제로 가는 것이었다. 당시는 북한이 남한보다 상당히 더 잘살고 있었다. 못 믿을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갱생의 경제로 만들자는 것은 민족의 자긍심을 자극하는 인기를 끄는 판단이었다. 그에 경쟁하는 판단은 자원도 없는 나라가 자급자족해서는 앞날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외로, 즉 수출지향적으로 가는 것이었다. 치열한 논쟁이 정부 내에서 벌어졌고, 박 대통령은 다행히 인기 좋은 판단 대신 지혜로운 판단을 택해 남북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갈리게 되었다.

그 선택 때문에 남한은 잘살게 되었지만 그것은 1980년대 중대한 기로를 맞는다. 바로 그 유명한 개방과 관련된 판단이었다. 수출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외국 상품과 외국인 투자까지 국내에 허용한다는 데 대해 많은 사람이 격렬히 저항했다. 우리 기업도 어려운데 외국 상품까지 들어오게 해? 우리 알토란 같은 기업을 외국인들이 소유하게 해? 이 감성을 자극하는 주장들은 국민의 인기를 끌었다.

이 격렬한 논쟁에서 다행히 개방론자가 승리한 것은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리 상품들이 내수시장에서 우수한 외국제품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 덕분에 해외시장에 나가서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때 개방되지 않은 유일한 분야, 그것이 금융이었고, 금융의 낙후성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IMF의 파고를 맞게 되었던 것이었다.

요즈음 복지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또 한 번 '인기있는 판단'과 '지혜로운 판단'의 대결을 보는 듯하다. 간단히 보자. 매일 물고기 세 마리를 잡는 어부가 날마다 그 세 마리를 다 먹어치워 버리면 그 사람은 평생 그 정도밖에 못 산다. 그러나 두 마리만 먹고 한 마리를 저장해 놓는다면 나중에 한 달 동안은 보관된 물고기를 먹으면서 그 시간에 그물을 만들 수 있다. 그 그물로 한꺼번에 수십 마리, 수백 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자녀·후손들까지 오래오래 다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몇십년 동안 매일 잡은 물고기를 다 먹어치워 버린 유럽의 나라들을 보라. 나라가 빚이 많아 꼼짝달싹을 못한다. 수명은 느는데 복지 증가는 생각도 못하고 돈이 없어 다른 나라에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부모 세대가 다 먹고 치워버린 덕분에, 즉, 저축과 투자를 안 한 바람에 청년 실업률은 평균 우리나라의 세 배에 달한다.

복지론자들은 세금을 더 거두어 복지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 세금을 더 거두자는 것은 한마디로 그만큼 더 먹어치우자는 이야기이다. 기업이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 상당 부분은 투자가 된다. 그것은 바로 일자리로 연결되고 후손들을 위한 떡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그 돈을 가지고 복지에 쓴다는 것은 투자될 수 있는 돈을 먹어치우는 데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금을 많이 거둔 나라중에 잘된 나라가 없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도 결국 세율을 거의 반으로 내리고 기업을 살려 겨우 파국을 면했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무상급식을 하자는 사람들, 매달 몇천만원씩 버는 부모의 아이들에게까지 세금으로 공짜 밥을 먹이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후손의 등을 쳐 지금 잘 먹으려는 사람들이다. 그 돈은 기업의 손에 남아서 투자되어야 할 돈이다.

복지는 가능한 한 늘리는 것이 물론 좋다. 그러나 지혜롭게 늘려야 한다. 선택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닥치는 대로 잘 먹고 잘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좀 참아서 대대손손 잘사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이야기만 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자손에 미칠 폐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이 인기를 끄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 동안 대부분 인기있는 정책과 지혜로운 정책 중 후자를 택해 왔다. 그래서 잘살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