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05 18:41
신아영은 촬영 도중 고개를 젖히며 깔깔대고 웃거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구김살 없는 표정이나 해사한 미소는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짐작하게 했다. 유쾌한 현장 분위기는 순전히 그녀의 덕이었다. 사진에도 이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엄친딸’ 수식어? “부담스럽지만 좋다”
2011년 SBS 스포츠 아나운서로 데뷔한 신아영은 직업보다 배경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자 미녀였고, 아버지는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출신으로 현직 고위 관료로 알려졌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이름 앞에 ‘뇌섹녀(뇌가 섹시한 여자의 줄임말로 똑똑한 여자를 가리키는 신조어)’, ‘엄친딸’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부담스러우냐고요? 싫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일 것 같아요. 어쨌든 수식어가 있다는 건 좋은 거잖아요. 나쁜 수식어도 아니고요. 조금 부담스러운 건 머리가 되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는 점인데…. 하하하! 실생활에서는 딱히 머리를 쓸 일이 없어서 (그런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긴 해요.”
똑똑한 이미지에 가려 실제 캐릭터를 보지 못한 까닭일까. 최근 예능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엔 의외로 허당기가 가득하다.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면 경기장에 갈 일이 많아요. 스포츠 선수들을 일대일로 볼 일이 많거든요. 근데 저를 되게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어요. 말도 잘 안 걸고 심지어 무서워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죠. 근데 요즘은 뒤에서 잡기도 하고 손가락질도 하세요. 예전에는 쉬쉬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면 요즘은 편하게 대해주셔서 좋아요.”
그녀는 올 초 SBS를 떠나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얼마 전 새 소속사와 계약도 마쳤다.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것과 혼자 거대한 톱니가 되어 굴러가는 것에는 차이도 있고 장단점도 있다.
“연장선상인 것 같아요. 사실 아나운서가 MC도 보잖아요. 차이점은 월급제냐 아니냐. 하하하! 아나운서가 프리로 나오면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꼭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좀 더 능동적으로 방송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아무래도 방송국에 (소속되어) 있다 보면 스케줄이 일정해요. 방송을 맡다가 하차하고 후배에게 넘기고, 갑자기 폐지되면 행정업무를 보기도 하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 같았어요.”
4년 가까이 방송국에 근무하며 나름 인정도 받았고 선후배와의 관계도 돈독했다. 그러나 익숙한 환경은 자신을 매너리즘으로 내몰았다.
“나와의 싸움이었다고 할까요? 익숙한 환경, 익숙한 방송이다 보니까 나태해지는 게 싫은데 나태해지고 있는 거예요. 나 자신을 더 극한으로 내몰아야겠다 싶어서 서서히 나올 준비를 했어요.”
프리랜서를 선언했지만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정체성만은 끝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다.
“욕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른쪽 다리는 거기(스포츠 아나운서)에 디딘 채 있고 싶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스포츠에 가까이 있고 싶고 그게 제 전문성이 되었으면 해요.”
방송인으로서의 목표도 구체적이다. 거시적인 목표를 토대로 하나둘 달성해나간다면 못 할 것도 없다.
“스포츠에 중심을 잡고 있되 ‘시사든 예능이든, 그 어떤 분야든 아우르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애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게 큰 욕심이라는 건 알아요.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는 일이겠죠. 차근차근 밟아서 꼭 그 말을 들은 다음 죽고 싶어요. 하하하하하!”
유학생활이 내게 준 것
신아영의 가족은 그녀가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걸 지금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족, 친척 중 누구도 방송이나 예술계에 몸담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란다. “신경 자체를 안 쓰시는데, 그래서 너무 편하다”며 웃는 그녀. 딸이 아나운서 합격 통지서를 들고 왔을 때 부모님의 첫 반응은 ‘의아함’이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거잖아요. ‘대학만 들어가면 다 해결된다.’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대학에 들어갔는데 고등학생 때보다 더 혼란이 왔어요. 고등학생 때는 대학 진학이라는 뚜렷하고 일률적인 목표가 있었는데, 대학교에서는 아니니까요. 계속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일할 사람은 일을 하는데, 직업도 여러 가지가 있고요.”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려왔더니 ‘그다음’이 없었다. 누가 대신 정해주지 않는 진로의 기로에 서서 그녀는 한참을 고민했다.
“막연하게 ‘나는 재미있고 보람되고 남한테 해 안 끼치는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대학에 다녔어요. 사실 그땐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죠.”
반면 고등학생 때는 대학 진학, 그중에서도 유학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유학반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SAT도 보고 그 성적을 토대로 하버드에서 편지가 왔죠. 사실 (하버드에 합격한 게) 아주 특별한 건 아니에요. 성적이 어느 정도만 되면 합격하는데, 방송에서는 마치 스카우트라도 된 것처럼 부풀려져서 나왔어요.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지만 첫 1년은 만만치 않았다고 기억한다. 전 세계의 천재들이 모인 그곳에서 그녀는 때로 자괴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5시간 해야 겨우 되는 걸 옆에 있는 애는 1시간 만에 해버리니까 거기에서 좀 상실감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집에도 가고 싶고, 내가 여기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고 있나 싶기도 했죠. 1학년 때 그런 스트레스가 심해서 살이 20㎏ 가까이 쪘어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으니까요.”
하지만 곧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마인드를 터득했다.
“포기를 했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해 겸손해졌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공부를 곧잘 한다’라고 생각했다면, (하버드에 와서)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걸 빨리 느낀 거죠.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포용력이 굉장히 넓어졌거든요. 네 의견도 맞고 내 의견도 맞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굉장히 관대해졌어요.”
스스로 터득한 지혜가 그것이라면, 학교가 만들어준 사고의 확장도 있다. 그녀는 하버드대, 아니 미국의 교육시스템의 장점으로 몇 가지를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수강신청 할 때 인기 있는 수업은 1초 만에 마감된다고 들었어요. 미국 대학교에서는 듣고 싶은 수업에 인원 제한이 없어요. 그래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도 1~4학년 다 합해 거의 1천 명 정도가 들었죠. 너무 고급과정이어서 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이유 아니면 웬만하면 다 듣게 해주거든요.”
1천 명씩 듣는 강의라 토론이 진행되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학교는 수십 명의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토론수업 시간을 마련해준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요. 몇천 명이 듣는 수업인 경우, 일주일에 한 번은 조교들을 몇십, 몇백 명 투입해서 (학생을) 8~10명 이내로 나눈 다음 토론식 수업을 하게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남의 의견을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고집을 부리는 대신 이해하는 습관을 들였다.
“나랑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거더라고요. 내가 모든 걸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걸 알 수가 없는 것처럼, 타인의 성장과정과 교육과정, 그 사람이 한 말과 생각이 형성된 시점의 주변 관계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타인의 의견을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법을 학교에서 많이 강조해준 것 같아요. 어떤 것에든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정답이 없음을 체계적으로 알아가는 게 학문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토록 밝고 명랑한데 똑똑하기까지 한 딸을 키운 부모로부터 그녀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자랐을까.
“아빠는 ‘다 잘 될 거야’ 주의세요. 그래서 제가 유학 갈 때도 ‘잘해, 파이팅!’ 이 정도로만 도움을 주셨죠. 그런 긍정적인 면을 제가 물려받았는지도 몰라요. 또 하나, 아버지가 공무원이시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너무너무 싫어하신 것 같아요. 네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옆에 사람이 편해야 한다, 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세금 잘 내야 한다. 하하하!”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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