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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숫자와 통계

"정규직 勞組 탓에 내 자리 없어" 청년 분노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노동계 타협 압박한 비정규직·취준생의 울분]

- 10명 중 3명 임시직 신세
"수습 기간 6개월~1년… 발에 땀나도록 일해도 정규직은 하늘의 별따기"

- 대기업 협력업체도 한숨
"성과급 다 챙기면서 파업… 우린 월급 밀릴까봐 걱정"

김모(28)씨는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문을 두드렸으나 연거푸 낙방했다. 그는 지난해 고향 울산에 있는 현대차 협력업체에 어렵게 입사했다. 그는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지난해 9월 파업을 끝낸 직후 회사로부터 통상임금의 450%, 일시금 87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20만원 등의 성과급을 받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현대차노조가 파업하면서 우리 회사 여름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져 월급 190만원 중 기본급 130만원만 받고 수당도 몇 달 뒤 받았다"며 "현대차 노조원들은 여름 내내 파업해놓고도 성과급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받아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러나 현대차노조가 지난 10일 또 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씨의 심정은 울분보다 초조함에 가깝다. 작년처럼 월급이 줄고 밀릴까 걱정이 돼서다.

노사정이 13일 노동 개혁의 핵심 쟁점이었던 임금피크제와 해고 요건 완화 등에 잠정 합의한 것은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고 문턱을 넘더라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들의 들끓는 여론을 노동계가 계속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대다수 청년에게 대기업 정규직은 '그림의 떡'이 돼버린 상황에서, 노동 개혁 논의에 노동계가 비타협적 태도로 버티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대기업들은 청년들을 정규 생산직으로 채용하기를 꺼린다. 기존의 고임금 생산직 근로자들의 인건비 부담이 워낙 큰 데다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내년부터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0.2%이고, 임시직을 첫 직장으로 잡은 청년 취업자는 34.8%였다.

하지만 최근 금호타이어노조는 업계 최고 대우인 연봉 6300여만원을 받는데도 "올해 성과급 150만원을 우선 지급하라"는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평균 연봉이 1억원 가까이 되는 현대차노조는 사측에 "임금피크제 도입 불가" "정년 65세 연장"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불황인 조선업계도 지난 9일 공동 파업에 들어갔다.

이런 정규직 노조의 행태에 비정규직과 취업준비생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청년 단체 '청년이 여는 미래'가 지난 5월 19~34세 청년 500명을 대상으로 양대(한국·민주) 노총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63.9%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 단체 등 5개 청년 단체는 지난 7월 '임금피크제 도입 청년본부'를 발족해 "장년 기득권 근로자가 양보하라"며 수시로 집회를 열고 있다.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배모(여·22)씨는 작년 하반기 대기업 사무직에 2년 계약제로 취업했다. 이 대학에서 배씨를 포함해 2명이 쿼터를 할당받아 이 회사에 입사했지만, 배씨는 "둘 다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잘 안다"고 했다. 휴대전화 도장업체에서 일하던 오모(27)씨는 지난 5월부터 좀 더 규모가 큰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려고 부모의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물색하고 있지만 넉 달째 답을 얻지 못했다. 오씨는 "청년 상당수가 하도급업체에서 6개월~1년 수습 기간을 거치고도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한 대기업 건설장비 사업부의 대리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김모(31)씨는 본사 정규직 직원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정규직과 달리 기본급 비중이 작고 판매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식이라 발에 땀이 나도록 영업을 뛰어야 하지만, 본사 직원은 퇴근 1~2시간 전에 퇴근을 하는지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한다. 김씨는 "나 같은 계약직이었으면 진작에 해고됐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는 금호타이어가 28일째 파업 중이라 이 회사에서 만든 타이어를 대리점에 배송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물류센터 소장은 "하루 평균 타이어를 6500~1만개씩 대리점에 배송했는데 우리도 피해를 보고 있고 대리점주들도 타이어가 없어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한 대리점주는 "굶을 수 없으니 경쟁사 타이어를 팔고 있다"고 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금호타이어 협력업체의 평균 연봉은 3500만원 안팎으로 정규직 근로자 연봉의 절반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청년(15~29세) 실업자는 44만9000명, 취업준비생이 64만3000명이다. 청년 비정규직 근로자는 117만2000명에 달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 수준은 대기업 정규직이 100이라면, 대기업 비정규직은 64, 중소기업 정규직 52, 중소기업 비정규직이 35 수준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취업준비생들의 간극이 심리적 계급(階級) 분화 수준까지 치닫는 상황에서 노사정의 타협은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