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자로 일하던 두 청년, 2300명 사는 섬에 '시골 벤처'… 대기업·공무원에 섬 생활 강의
일·놀이가 하나 된 삶의 즐거움… 성장 멈춘 한국에도 교훈으로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 아베 히로시, 노부오카 료스케 지음 | 정영희 옮김 | 남해의 봄날 | 248쪽 | 1만4000원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72)의 산문집 제목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낭만적 귀농 귀촌을 꿈꾸는 도시인에게 "꿈 깨라"고 일갈하는 냉정한 죽비 소리였다. 한마디로 시골 생활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는 20대의 두 일본 젊은이가 인구 2300명에 불과한 서일본 외딴 섬에서 '시골 벤처'를 차려 살아남는 생존기다. 주의할 것. 성공기가 아니라 생존기다. 겐지의 '충고'를 충실하게 따른 이 생존기에는 판타지라고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게다가 은퇴 후의 중장년 귀농이 아니라 젊음을 걸고 시작하는 인생 아닌가. 아베와 노부오카는 각각 도요타 엔지니어와 도쿄의 웹 디자이너를 박차고 나와 새 삶을 시작했다. 연봉으로 따지면 반의 반의 반도 안 될 삶이다.
지도에서 보면 깨알 같은 섬의 소박한 도전이지만, 그 안에는 성장이 멈춘 대한민국이 귀 기울일 만한 통찰력 있는 제안이 있다. 더 이상 대도시와 대기업이 청년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 시마네현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작은 섬 아마. 연간 태어나는 아이라봐야 열 명 남짓한 소도(小島)다. 이미 인구 40%가 65세 이상인 마을. 재정도 파탄 직전이다. 정장(町長·한국의 면장)과 공무원들은 스스로 임금을 50%까지 삭감하며 섬 부흥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외부인 귀촌(歸村)도 적극 환영. 방목해 키운 소, 맑고 투명한 바다에서 키운 바위굴, 농약 없이 키운 오리쌀, 소문난 맛의 오징어 등 물산(物産)도 풍부하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보조금' 없이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는 것. 외부 지원으로 시작해봤자 결코 성공하지 못하더라는 것.
10년 동안 도시에서 산 '도시 10년생'이라 해도, 시골에 오면 다들 '시골 1년생'이다. 아베와 노부오카는 이 대목에 동의하고 섬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시골 벤처 아이디어는 '섬 학교'다. 강연과 이벤트로 섬이 주는 가르침을 외부와 나누는 일종의 '리더십 인생 학교'. 아마 섬 최고의 어부와 아마 섬 최고의 요리사가 자신의 경험을 이웃 사촌처럼 강의하고, 수강생은 논농사와 해산물 낚시를 마을 사람처럼 체험한다. 얼핏 대단한 아이디어도 아닌 것 같은데, 대기업 간부에서 일반 개인에 이르기까지 '섬 학교' 수강에 줄을 선다. 자신의 일과 놀이를 하나로 만든 청년들의 전력투구 덕이다.
- 수확한 나락을 햇볕에 말리는 섬의 전통적 건조 방식을 배우는 아베(왼쪽). 아베에게는 일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는 삶이다. 음식 사진은 각각 섬 특산인 오징어와 최고급 와규(일본 소)다. /남해의 봄날 제공
아베와 노부오카의 고백과 인터뷰를 따라 읽다보면, 하나로 모아지는 깨달음이 있다. 섬에 필요한 존재는 '평론가'가 아니라 '실천가'라는 것. 아베는 "이 섬을 재건하러 왔다는 생각 따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구원투수가 아니다. 그리고 섬 주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두 청년은 어부에게 배 운전과 생선 낚는 법을 배우고, 이웃집 무코야마 아저씨에게 벼농사를 배우고, 로봇처럼 뻣뻣해서 잘 추지는 못하지만 마을 축제 율동을 따라 한다.
이제 아베의 사연을 들을 차례다. '천하제일'이라는 도요타 엔지니어 자리를 그는 왜 박차고 나왔을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대기업에 입사하면 평생 든든하다고 믿었다. 일본이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30년은커녕 10년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 도요타에서 그는 돈벌이의 주중 생활과 캠핑 등 놀이의 주말 생활을 분리해 살았다고 했다. 일과 놀이가 따로 있는 삶. 혹 미래라도 보장된다면 모르겠으나, 10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이런 '분열의 삶'은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에서 다른 직업을 구한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50년 후의 도쿄는 더 암울해 보였다고 했다. 미래를 제조하는 만능 기계로서의 도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현실에서, 그는 아마라는 작은 섬에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
글로벌이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 MBA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들 세계로 달려갔지만, 상당수가 풍요로움과는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는 시대. 지역으로 내려간 아베의 선택이 유일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베는 아마의 삶에서 일과 놀이와 공동체의 최적 균형을 찾았다고 했다.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매순간 '정성스런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소박하지만, 귀 기울일 만한 제안 아닐까. 100개의 지역이라면, 100개의 선택 가능한 제안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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