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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外

'거기, 한국' 말고 '여기, 미국'

"오른쪽 어깨를 구부리면서 젖먹던 힘까지 쓴 거예요. 그런데 다음 날부터 뒷목 근육을 비틀어 짜는 것도 같고, 어금니부터 관자놀이까지 지끈지끈거리고요…."

미국에서 연수 중인 기자는 두어 달 전, 장난삼아 팔씨름하다가 목에 통증이 왔다. '지끈거린다' '비틀어 짜는 느낌'을 영어로 설명한다?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 병원을 찾았다. 엄청난 진료비를 제외하고는 무심한 의사의 말투까지 한국과 똑같았다. 며칠 전에는 손목 인대가 아파 미국 병원을 찾았다. 주민번호만 대면 일사천리인 한국과 달리 병원에 미리 알릴 정보가 많았지만, 의사는 친절했고 공짜였다.

요즘 '용이함'과 '낯섦' 사이에 자주 선다. 집 앞에서 우회전하면 한국마트와 한국 식당, 한국인들이 파벌싸움까지 벌인다는 체육관 쪽이고, 좌회전하면 백인 동네다. 미국 물 먹으러 갔으니, 좌회전을 자주 한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은 백인 중·노년들. 저질 체력의 기자는 땀과 콧물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올드 레이디' 꽁무니를 쫓는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 가사가 있는데, 웬일인지 기자는 '뛰고 있으면 콧물이 난다'. 기자가 헉헉거릴 때마다 다들 '어디 불편한가' 자주 묻는데, 그게 제일 불편하다.

미국에 살러 간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한국 커뮤니티에서 일하고, 자고, 학원 공부 시켜도 불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만 그런 건 아니다. 2012년 미국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이민자 중 5%만이 집에서 영어를 쓴다.

그런데 이런 통계가 있다. 한국계 이민자 중 대졸 이상은 54%로 미국 평균(29%) 및 아시아계(51%)보다 높다. 반면 소득(중간소득)은 5만달러를 조금 넘어, IT 인력이 많은 인도계(8만8000달러), 의료 인력이 많은 필리핀계(7만5000달러)는 물론, 일본계와 중국계(6만5000달러), 베트남계(5만3000달러)보다 떨어진다. 가방 끈은 길지만, 돈은 못 번다. 언어 장벽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내 주부들 사이트 '미시 유에스에이'의 정치 성향을 두고 논란이 가시질 않는다. 한 교포는 "지적 수준은 높지만 미국 주류에서 소외된 한국인들이 그들 나름대로 정치적 욕구를 해소하는 곳이 바로 거기"라고 진단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세월호 사건과 정부에 대한 비판은 길고 격하지만 미국 최대 이슈인 이슬람국가(IS), 에볼라 바이러스, 유색인 차별 사건, 미국 중간선거 같은 것은 쉽게 찾기 힘들다. 중간선거가 끝나고 현지 한국 언론은 '한인타운 투표소에 유권자보다 자원봉사자가 더 많았다'고 전했다. 2012년 선거에서 아시아계의 유권자 등록률은 높은 쪽이 일본·인도·필리핀, 낮은 쪽은 캄보디아·한국·베트남 순이었다.

'미스터 USA'는 없지만 '미시 USA'는 있다. 여자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옛말이거나 다른 나라 얘기다. 한국 정치가 한국인 전유물도 아니고 교포들이 한국 정치에 목소리 내는 걸 막을 이유는 없다. 내친김에, 이들이 이런 정열과 지성을 '거기, 한국'이 아니라 '여기, 미국'에 쏟았으면 좋겠다. "여기 오래 살았지만 아시아계는 왠지 2등 시민 같아요." 라디오에서 들은 필리핀계 자원봉사자 얘기가 자꾸 떠오른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