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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소금 안먹어도 안죽는다

생물의 진화 과정과 소금

'싱겁게 먹기 운동'의 전도사가 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소금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죽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왜 사람들이 소금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혹시 야생 동물이 소금을 먹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 만약 동물이 꼭 소금을 먹어야 산다면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살던 동물들은 다 멸종하고, 바닷가나 소금 호수, 소금 광산 근처에서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대륙 밀림이나 사막 같은 곳에서도 동물들이 수천만년~수억년 간 생존해왔다. 인간도 수백~수십만년 동안 소금이 없는 곳에서도 생존해왔다. 지금도 원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소금을 따로 먹지 않고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소금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진화론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시초인 원시생물은 바닷물 속에서 생겼다. 그 생물은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점점 커졌고, 오랜 세월이 지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으로 진화해왔다. 인간이 엄마 자궁 속에서 10개월 간 자라는 과정은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수억년 간 해온 진화가 압축돼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다에서 처음 생겨난 생명체 중 일부는 강(江)을 거쳐서, 일부는 곧바로 육지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인간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인간이 바다에서 진화해온 생명체의 후손이라는 증거는 사람의 혈액의 구성 성분 비율이 바닷물과 흡사하다는 연구결과로 입증되어 있다. 세포 한 개로 이뤄진 단세포 생명체가 바닷물 속에 떠 있다고 가정해보자. 세포는 생명 유지에 아주 적은 양의 나트륨만 필요하다. 그런데 세포 바깥에는 나트륨 농도가 높은 반면, 세포 안은 낮다. 바닷물 속에 많은 나트륨이 세포 안으로 자꾸 침투해들어 오려고 하면 이를 막아야 한다. 단세포 생물에서 이런 역할은 주로 칼륨이 맡아서 한다. 그런데 강물을 거쳐 육지로 올라왔다고 하면 상황이 바뀐다. 사람의 경우 세포를 둘러싼 혈액이 바로 바닷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세포는 혈액 속에 든 탄소, 산소, 수소, 질소, 나트륨, 칼륨 등 성분을 가져다 생명 유지활동을 한다.

소금 안먹어도 안죽는다

우리 몸은 생존을 위해 나트륨이 꼭 있어야 한다. 몸의 구성 성분은 많은 순서로 보면 산소(O)가 65%로 가장 많고, 탄소(18%), 수소(10%) 등이 2~3위에 올라 있다. 나트륨은 염소와 함께 공동 9위이다. 즉 인체의 10대 구성 성분의 하나이다. 이런 나트륨은 어디에서 구해야 할까? 단세포 생물이 바닷물 속에 살 때는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할 정도로 나트륨이 많았다. 나트륨이 세포 안으로 너무 많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런데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나트륨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명체는 한 번 몸 안에 들어온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다.

나트륨 적게 섭취해도 콩팥이 재활용해 적정량 유지

그 진화의 산물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콩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콩팥의 기본 기능은 혈액에서 노폐물을 걸러 소변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영양 성분을 몸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회수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즉, 몸에 중요한 성분이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주는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기관이 바로 콩팥이다. 콩팥이 기를 쓰고 붙잡아두려는 성분 중의 하나가 바로 나트륨이다. 이처럼 나트륨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양 성분은 우리 몸이 아껴 쓰고, 재활용까지 하므로 적은 양만 있어도 대부분 문제가 없다. 즉 적은 것은 거의 문제가 안된다는 뜻이다.

나트륨이 적은 것이 왜 문제가 되지 않는 지는 모유를 먹는 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유 1L에는 160mg의 나트륨이 함유돼 있다. 아기들은 하루 평균 0.8L의 젖을 먹으므로 하루 섭취하는 나트륨양은 120mg쯤 된다. 3Kg안팎의 작은 아기는 몇 개월간 모유만 먹고도 체중이 2~3배로 늘만큼 성장한다. 하루 120mg의 나트륨만 있어도 성장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연구를 종합하면 성인들의 하루 필요 나트륨양은 460~920mg이다. 이 정도면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소금을 따로 섭취하지 않았던 원시인들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약 700mg이었다. 즉, 채소와 과일, 곡물이나 고기 등 음식에 든 나트륨만으로도 꼭 필요한 나트륨 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4800mg이다. 필요량의 5~10배나 되는 많은 양이다.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은 적정량의 5~10배

사람들 중에 "나트륨이 너무 적으면 콩팥에서 재활용하고, 많으면 콩팥에서 걸러서 몸 밖으로 내보내면 되는데 많이 섭취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라면 그래도 큰 문제가 안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수십 년 간 계속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소금 섭취로 혈액 속에 나트륨 농도가 올라가면 혈액은 적정 농도(0.9%)를 유지하게 위해 물을 더 많이 찾는다. 짜게 먹으면 물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동시에 세포 속에 든 물까지 혈관으로 빠져나가고, 세포는 시들시들해진다. 평소보다 많은 물이 혈관 속에 들어가면 혈관을 빵빵하게 만들어 혈압이 높아진다. 이것이 오래 반복되면 고혈압이 된다.

콩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몸은 소화, 호흡, 심장박동 등 가장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하는데 에너지를 쓰는데 이를 '기초대사량'이라고 한다. 성인의 하루 평균 기초대사량은 약 1500kcal이다. 이중 하루 종일 숨쉬는 데, 즉 호흡에 쓰는 에너지는 20kcal에 불과하다. 하지만 콩팥은 하루 기초대사량의 20%인 300kcal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평소에도 그만큼 많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혈액 속에 과도하게 나트륨이 들어왔다고 하면 이를 최대한 빨리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콩팥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평소에도 과로하는 콩팥에 나트륨 배출 업무까지 추가로 주어지면 묵묵히 임무를 다하던 콩팥도 어느 순간에는 결국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콩팥병(신장병)이다.
/자료=식약청(국민건강영양조사 2009)
/자료=식약청(국민건강영양조사 2009)
지금처럼 먹으면 혈액이 바닷물처럼 짜게 변한다

나트륨과 고혈압, 콩팥병의 문제는 길게 보면 진화와 적응의 문제이다. 생명체는 바닷물을 떠나 육지로 올라온 뒤 적은 양의 나트륨만 있어도 아끼고 재활용해서 사용할 수 있게 진화했다. 그 과정은 수억 년이 걸렸다. 그런데 길어야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 만에 인간은 나트륨 섭취를 엄청나게 늘려왔다. 수억 년 간 진화해온 몸이 미처 적응하기 힘든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자 우리 몸은 고혈압, 콩팥병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소금을 따로 먹지 않고, 야채나 과일, 고기, 곡물 등을 통해서도 하루 필요한 나트륨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소금을 지나치게 섭취한다.

인간은 바닷 속에 사는 생명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도한 나트륨 섭취로 자신들의 혈액을 일시적으로 짜게 만들고, 물을 먹어 적응이 되는 과정에서 몸 안의 세포는 나트륨에 의한 손상을 받고 있다. 실제로 나트륨을 많이 먹는 현대인들의 소변은 혈액보다 짜지고 있으며, 바닷물의 짠맛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바닷물을 먹어보라고 하면 짜서 못 먹겠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세포를 둘러싼 혈액을 짜게 해 세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세포들이 너무나 짠 환경 속에서 언제까지 견뎌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