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5 16:50 | 수정 : 2013.12.11 08:01
바야흐로 노벨상 계절이 돌아왔다. 중국 사람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6명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 국적으로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을 받았다.
아무튼 중국인으로 노벨상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은 양전닝·리정다오 박사로 1957년 소립자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10월 11일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은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양전닝 박사(85)는 미국 영주권자지만 현재 중국 칭화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뉴스 메이커’다. 그가 매스컴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54세 연하의 젊은 아내 덕분이다.
양 박사는 2004년 12월 24일, 82세의 나이로 당시 28세이던 광둥 무역대학 대학원생 웡판과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 다 재혼이었다. 양 박사의 부인은 국민당 장군의 딸로 2003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양 박사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그해 말 칭화대로 부임해 신입생들을 위한 물리학 특강을 시작했다. 웡판은 광둥성 산터우 대학을 졸업한 직후 결혼했으나 곧 헤어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양 박사 부부가 1995년 산터우 대학에서 열린 국제물리학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다. 당시 대학생이던 웡판이 통역으로 안내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그냥 스쳐갔을 뿐이었으나, 2004년 2월 웡판이 베이징에 온 양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양 박사는 마침내 “젊음이란 나이보다 정신에 달린 것”이라고 청혼했고 웡판이 이를 받아들여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양 박사 부부는 요즘 초청 강연을 하느라 홍콩을 비롯해 광저우, 난징 등 중국의 유명 대학을 두루 다니고 있다. 행사장마다 부부가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소개되고 있다. 젊은 아내는 처음에는 외부 행사에 참석할 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 박사는 젊은 아내에 대해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있다. 그는 광저우 중산대학에서 특강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내 덕분에 회춘을 했다”며 “혼자 있을 때보다 에너지가 10배는 더 많아진 느낌”이라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젊은 아내도 나이든 남편에 대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웡판은 남편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자신이 잠을 깰까봐 화장실에게 가서 신문을 보고 있다며 세심한 배려에 감사해했다.
양전닝 박사는 1922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을 다녀온 교수였다. 그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내전으로 어수선하던 1945년, 국민당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조지아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1948년 26세의 나이로 박사를 땄다. 1949년부터 박사후과정으로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 가서 소립자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직전 일면식도 없는 스웨덴 기자가 뉴욕으로 취재차 오겠다”고 밝혀 노벨상을 받는구나 하고 직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공동 수상자인 리정다오 박사 외에 중국계 여류학자인 우젠슝 박사(1912~1997·위안스카이의 손자 며느리)도 함께 연구했으나 공동 수상을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밝혔다.
< 홍인표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iphong@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15728#csidx3d9f92e73abcb6dad38bbe1a6977c47
양전닝 교수는 1957년 화교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살아있는 신화’로 소립자이론과 통계역학 등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56년 그가 리정다오(李政道·1926~) 와 함께 ‘약한상호작용 힘의 경우 패러티 (parity) 대칭성이 깨짐’을 보여준 이론이 바로 실험적으로 확인되며 노벨역사상 최단 시간인 10개월 만에 상이 수여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 연구로 인해 현대물리학의 표준모형이 크게 발전하였고, 최근 “신의 입자”의 발견과 올해 힉스 교수의 노벨상 수상으로 긴 여정의 한 장이 마무리되었다. 위 실험을 수행한 “마담 우”에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음 과학·사랑·방으로 미룬다.
- 칭와대 집무실에서 연구하는 양전닝.
귀국 이듬해 당시 82세와 28세란 “나이의 거울대칭성”을 극복하고 광둥 외국어무역대학 대학원생과 재혼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약한상호작용 힘의 경우 대칭성이 깨져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몸소 실천했다고 할까. 이번에 만난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두뇌는 여전히 명석하고 신체는 건강했다. 그가 왕성한 연구•교육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젊은 아내의 정성어린 내조 덕택 같았다.
- '비대칭 부부' 웡판과 양전닝 부부.
이번 방문에서 양 교수로부터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는 데, 혼자 감상하긴 아까워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저명한 중국근대화가인 범증이 양전닝 자신과 중국 출신의 최고 수학자인 천싱선 교수가 함께 토론하는 장면을 담은 진귀한 그림이다. 천싱선 교수는 ‘미분기하학의 대부’로 끈이론, 양자중력, 매듭이론에서 핵심적인 천-사이먼스 이론을 제창한 세계적 수학자이다. 그도 10여년 전 영구귀국해 자신의 이름을 딴 수학연구소들을 설립하는 등 중국 수학의 획기적 발전을 이끈 석학이다. 화가 범증은 역사상 인물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담아내는 데, 세 사람 모두 난카이 대학의 동문이라 이 작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 양전닝과 천싱선 교수의 대담을 그린 범증의 그림.
양전닝 교수와의 한 시간 만남은 짧았지만 진지한 대화 속에 원로석학의 한국과 센터에 대한 관심과 아태 물리학계 발전을 위한 진심어린 조언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졌다. 그처럼 대학원시절 통계물리로 시작해 도미 후 미국의 연구중심대학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등에서 신학문에 뛰어들었던 이론물리학자로서의 나의 초심도 돌이켜보고, 그가 창립한 센터의 후임 소장으로서 거인들의 어깨위에 서서 아태물리학계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감도 새롭게 다지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은 젊고 역량이 있는 인재들의 풀이 풍부해, 미주와 유럽의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각축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들 젊은 과학자들이 소속된 아태 권역을 떠나지 않고도 마음껏 연구에 몰입하고 뜻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의 장을 어떻게 제공해야 할 까? 우선 내가 맡고 있는 센터의 창립이념과 오랜 전통을 살려 아태 권역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오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
Chen Ning Yang, 82, to marry a 28-year-old woman
By Echo Shan (chinadaily.com.cn)
Updated: 2004-12-16 15:29
Chinese American Nobel laureate of physics Chen Ning Yang, 82, is reportedly engaged to a 28-year-old Chinese woman, whom Yang called the "final blessing from God."
Yang and his fiancee Weng Fan indorsed their engagement through a telephone call and set a date in next January for their marriage. There is no public engaging ceremony as the two are now parted, with Yang in Beijing and Wen in Guangzhou working on her master degree.
Weng Fan, Yang's fiancee [sohu] |
They first met at Shantou University, South China's Guangdong Province in 1995 when Yang, then accompanied by his late wife Chih Li Tu, elder daughter of late KMT general Du Yuming, attended an international physics seminar.
Weng then worked as an interpreter at the seminar and happened to receive and serve the Yangs during the meeting.
Yang was deeply impressed by Weng's considerate character, savvy and excellent command of English. Wen was then a freshman of Guangdong Univeristy of Foreign Studies. The two reestablished contact in this February and then fell in love with each other.
It will be the second marriage for both of the two. Yang survived his first wife Chih Li Tu last year. Weng got married shortly after graduation and soon got divorced.
Since late 2003, the famed leading scientist has been giving regular lectures exclusive for freshman in China's elite Tsinghua University.
In 1957, Yang won and shared the Nobel Prize in Physics with Lee Tsung-dao "for their penetrating investigation of the so-called parity laws, which has led to important discoveries regarding the elementary particles."
Yang Zhenning (Chen-Ning Yang) is a Chinese-American physicist ,who has worked on statistical mechanics and symmetry principles. He received the Nobel Prize in Physics in 1957 at the age of 35, with Li Zhengdao (Tsung-Dao Lee), to become the first two Chinese Nobel-Prize winners.
Yang is also well known for his collaboration with Robert Mills in developing a gauge theory of a new class. Such "Yang-Mills theories" are now a fundamental part of the Standard Model of particle physics.
Yang Zhenning's Life
Yang Zhenning was born on September 22, 1922, in Hefei of East China'sAnhui Province. Yang was brought up in a peaceful and academically inclined atmosphere of the campus ofTsinghua UniversityinBeijing, where his father was a Professor of Mathematics.
When Yang was very young, he demonstrated a talent for mathematics. However, his father didn't give him any special training in mathematics, instead, he employed a history teacher for Yang. From this teacher, Yang gained much knowledge of Chinese history. As a middle school student, Yang could recite all the texts ofMencius, a famous Confucian scholar who was second only toConfuciushimself.
In 1937, when the Anti-Japanese War began (known as WWII in the West), Yang and his family went back to their hometown of Hefei. After the Japanese troops enteredNanjing, Yang and his family spent time in Hankow andHong Kong(both in East China), and Hanoi (today'sHainan Provincein South China), before finally arriving atKunmingof Southwest China'sYunnan Provincein March 1938, where Yang furthered his study.
In 1942, Yang Zhenning received his Bachelor of Science degree fromKunming's National Southwest Associated University. Two years later, he studied for his Master of Science degree with a full scholarship atTsinghua University.
Yang Zhenning attended the University of Chicago on aTsinghua UniversityFellowship in January 1946. There he studied for his Ph.D. with Edward Teller and after receiving it in 1948, remained for a year as an assistant to Enrico Fermi, a famous physicist. In 1949 he moved to the Harvard-affiliated Radcliffe'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nd in 1965 to New York's Stony Brook University, where he worked until 1999.
He has been elected a Fellow of the American Physical Society and the Academia Sinica, and was awarded an honorary doctorate by Princeton University in 1958.
In 1950, Yang Zhenning married Du Zhili, a former student of his, and had two sons and a daughter.
In 1999 Yang Zhenning returned to Tsinghua University following his retirement from Stony Brook University. His wife died in the winter of 2003. In 2005, at the age of 82, Yang Zhenning married a 28-year old woman, who is studying for a master degree at Guangdong University.
Great Contributions
Since from almost his earliest days as a physicist, Yang Zhenning has made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the theory of the weak interactions--the forces long thought to cause elementary particles to disintegrate.
By 1953 it was recognized that there was a fundamental paradox in this field since one of the newly discovered mesons--the so-called K meson--seemed to exhibit decay modes into configurations of differing parity. Since it was believed that parity had to be conserved, this led to a severe paradox.
After exploring every conceivable alternative, Li Zhengdao and Yang Zhenning were forced to examine the experimental foundations of parity conservation itself. In early 1956, they discovered that, contrary to what had been assumed, there was no experimental evidence against parity non-conservation in the weak interactions. The experiments that had been done, it turned out, simply had no bearing on the question.
They suggested a set of experiments that would settle the matter, and, when these experiments were carried out by several groups of people over the next year, large parity-violating effects were discovered. In addition, the experiments also showed that the symmetry between particle and antiparticle, known as charge conjugation symmetry, is also broken by the weak decays.
In addition to his work on weak interactions, Yang Zhenning, in collaboration with Li Zhengdao and others, carried out important work in statistical mechanics -- the study of systems with large numbers of particles -- and later investigated the nature of elementary particle reactions at extremely high energies.
Starting from 1965, Yang Zhenning was the Albert Einstein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Scienc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 Long Island. During the 1970s he was a member of the board of Rockefeller University and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respectively, and from 1978, of the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in San Diego, California.
He was also on the board of Ben-Gurion University, in Beersheba, Israel. He received the Einstein Award in 1957 and the Rumford Prize in 1980. In 1986 he received the Liberty Award and the National Medal of Science.
Chen Ning Yang celebrates 90th birthday
Chinese-American Nobel laureate Chen Ning Yang, center, and his wife Weng Fan leave hand-in-hand after a forum held by Tsinghua University to commemorate his 90th birthday in Beijing, June 30, 2012. Tsinghua University held an academic forum to celebrate the physicist and Nobel Prize winner's 90th birthday on Saturday. (Photo source: Asianewsphoto/ China Daily)
Weng Fan, center, helps Chen Ning Yang, right, put on a jacket during an academic forum held by Tsinghua University to commemorate Yang's 90th birthday in Beijing, June 30, 2012. (Photo source: Asianewsphoto/ China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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