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철의 스마트 재테크] 원금보장형 금융상품 인기
지난 5~6월 ‘버냉키 쇼크’로 투자자들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미국이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를 축소할 수 있다고 시사하자 글로벌주식시장이 널뛰기하고 채권 금리는 급등세를 보였다. 미국의 돈 풀기가 줄어들면 마치 금리를 인상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채권형 펀드마저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자, 마음을 졸이다 못한 투자자들이 찾아 나선 키워드는 ‘원금보장’이다.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부사장은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으로 거액 자산가들도 손해를 크게 봐서 마음을 다친 상태”라며 “지금 상황에선 원금보장을 해주지 않는 금융 상품은 눈길을 끌 수 없다”고 말했다.
국공채나 정기예금에 편입
원금보장이 재테크 키워드라고 해도 은행 정기예금에 돈을 맡기자니 금리가 너무 낮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8월 초 기준으로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2% 초중반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이다.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은 주가, 환율, 원자재값, 유가 등의 움직임에 따라 연 5~10%의 기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으면서도 최악의 경우 원금은 건질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들이다. 은행의 지수연계예금(ELD), 증권사의 원금보장형 지수연계증권(ELS), 원금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S) 등이 대표적이다. 외환은행이 판매하는 ELD인 ‘베스트 초이스 정기예금’은 지난해에는 판매액이 4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서는 3000억원 가까이 팔려나갔다. 원금보장형 ELS나 원금보장형 DLS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판매된 원금보장형 ELS는 7조1500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6조3900억원)보다 10% 이상 늘었다. 최근에는 원금에 더해 연 2%의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상품도 대거 선보이고 있다.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은 투자자가 맡긴 돈 대부분을 국공채나 정기예금에 넣어 놓고, 극히 일부만 주가, 환율 등에 따라 고수익이 나올 수 있는 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전략을 쓴다. 만기까지 국공채나 정기예금에 넣은 돈으로 원금을 보장하고, 파생상품 투자에서 추가 수익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권에서 판매하는 ELD의 경우 가입 금액의 대부분을 정기예금에 넣고, 3~5% 정도 되는 금액은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고수익이 나올 수 있는 파생상품에 투자한다. 만약 전체 금액의 5%만 넣은 파생상품 투자에서 30%의 수익이 난다면 전체로 보면 1.5%(30%×5%)의 추가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기예금에 넣은 95%에서 나온 연 2% 중반의 수익에 추가 수익을 합하면 연 4%의 수익이 나오게 된다. 이런 구조이므로 파생상품 투자 수익이 늘어날수록 전체 수익은 불어나게 된다.
- 최근 몇몇 증권사들이 원금에 수익률 2%를 더한 ‘102% 원금보장형 ELS’를 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가 고객과 상담하는 모습.
-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하자 안전투자상품으로 여겨졌던 채권형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원금보장형 ELS는 정기예금 대신에 국공채에 투자한다. 1년 만기 국채 금리는 8월 초 기준으로 연 2.7%대다. 여기에 더해 추가 수익은 ELD와 마찬가지로 파생상품 투자에서 올린다. 증권사들은 코스피200, 홍콩 항셍지수, 미국 S&P500지수 등 주가지수나 삼성전자, 현대차 등 특정 종목의 주가에 베팅하는 등 다양한 파생상품에 투자한다.
은행의 ELD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000만원까지 원리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증권사의 ELS는 상품의 투자 구조에 따라 원금이 보장되는 방식이다. 정부가 원리금을 5000만원까지 보장하는 예금과 달리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사가 문을 닫는다면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증권사 ELS, 연 5~10% 기대수익률 기록
한편 ELS는 원금보장형만 있는 게 아니다.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대신 원금보장형보다 높은 기대수익률을 제시하는 원금비보장형 ELS도 있다. 이 경우엔 원금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투자해야 한다.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은 은행의 ELD와 증권사의 원금보장형 ELS가 대표적이다. 은행의 ELD는 대체로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은 연 3~5%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위험을 많이 감수하는 상품의 경우에는 연 10%가 넘는 고수익을 기대하기도 한다. 증권사의 원금보장형 ELS는 연 5~10%의 기대수익률을 추구한다. 최근에 증권사들은 ‘102% 원금보장형 ELS’라는 상품도 내놓고 있다. 이는 원금에 더해 수익률 2%를 더 보장하는 구조로 된 투자 상품이다. 신한금융투자의 ‘102% 원금보장형 ELS’는 6월에 37억원이 판매됐는데, 이는 전달(23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한화투자증권도 ‘102% 원금보장형 ELS’를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이런 상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투자자들이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선보였던 것이다.
은행의 ELD, 증권사의 원금보장형 ELS 외에도 최근엔 증권사가 판매하는 원금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S)에도 큰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원금보장형 DLS는 5조2600억원어치 이상이 팔려나갔다.
원금보장형 DLS의 구조는 원금보장형 ELS와 유사하다. 가입금액의 대부분을 국공채에 투자하며, 일부만 주가가 아닌 원자재값이나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나오는 파생상품에 투자한다. 국공채 투자로 원금을 보장하면서, 파생상품 투자로 추가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다.
한편 명시적으로 원금보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금 보존을 추구하는 방식의 펀드도 있다. 자산운용사에서 운용하는 원금 보존 추구형 지수연계펀드(ELF)가 그것이다. 이는 펀드 매니저가 3~4개의 ELS와 채권에 분산 투자를 해서 손실 위험을 줄인 펀드다. 투자 전략상 원금 보존을 추구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최악의 경우엔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 상품에 5억~10억원씩 굴릴 수 있는 큰손들은 은행을 찾아 맞춤형 ELF나 DLS에 투자하는 사모(私募)펀드를 설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한다.
증권사들은 원금보장형 랩어카운트도 선을 보이고 있다. 랩어카운트는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증권사에서 운용해주는 상품이다. 최근 삼성증권이 내놓은 원금보장형 랩은 3개 정도의 ELS와 DLS에 투자하면서 시장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중도 해지 시 투자 손실 발생
일단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들은 금융회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원금을 보장하기 때문에 원금이 떼일 위험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나오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실제 수익률이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칠 위험성이 있다. 차라리 2% 중후반 대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보다 적은 수익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0~2011년 최고 20%의 금리를 내건 ELD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2011년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온 ELD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1.9%에 불과했다. 당시 은행의 특판 정기예금 최고금리가 연 7%였던 것을 감안하면 형편없는 수익률이라고 할 수 있다.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에 가입할 때 은행이나 증권사가 제시하는 최고 수익률만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고 수익률이라는 것은 금융회사가 제시한 제한된 조건이 달성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은 만기가 오기 전에 중도 해지하면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만기가 돌아올 때까지 일정한 조건을 걸어 상품을 설계해 놓았기 때문에 중도에 해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높은 해지 수수료를 물리기 때문이다.
한편 은행이나 증권사의 원금보장형 투자 상품은 특판 형태로 일정 기간만 판매한다. 또 가입 시점에 따라 제시하는 조건도 조금씩 달라진다. 예전엔 연 10% 이상의 기대수익률을 제시하는 ELD가 많았지만, 최근엔 연 3~5% 대로 낮아졌다. 과거의 실적만 보고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투자 상품들은 주가지수나 원자재값의 움직임에 따라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하느냐도 상품 가입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정기예금 금리 플러스알파(+α)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란 것이다.
Tip | 큰손들이 몰래 가입하는 특판 RP
연 4% 금리 보장…뭉칫돈 몰려
증권사들이 알음알음 판매하는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도 구조를 보면 원금보장형 상품 중 하나다. 특판 RP는 증권사들이 만기 때 정해진 조건으로 채권을 되사기로 약속하고 판매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사들은 만기 때 연 4% 금리를 보장하기로 약속하고 RP를 판매하고 있다. 예금처럼 정부가 5000만원까지 원리금을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증권사가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증권사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사실상 원금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KDB대우증권은 연초부터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1년 만기에 연 4%를 주는 특판 RP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신한금투 등 대형 증권사들도 연 4%의 금리를 보장하는 특판 RP를 일부 고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1조5000억원 가까운 돈이 특판 RP에 몰렸다.
1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7%대지만 연 4% 금리를 보장하는 이유는 이 상품이 ‘미끼 상품’이기 때문이다. 신규 고객을 증권사로 끌어들이기 위해 증권사들이 마케팅 비용으로 금리 차이를 지불하면서 만든 상품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받으면서 원금 보장도 되니 ‘일석이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증권사의 마케팅 공세에 시달릴 각오는 해야 한다. 증권사가 특판 RP 판매로 확보한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추가적인 투자 상품 소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증권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상품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보에 밝은 큰손 고객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또 판매 대상이 신규 고객이거나 오랫동안 거래를 하지 않는 휴면고객으로 제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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