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용

유로존 실업률 사상 최고…獨·佛은 서로 "네 탓" 공방

유럽 경제에 먹구름만 짙어지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역내 경제의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의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프랑스 정치권에서 독일 총리를 향해 ‘고집스런 이기주의자’라고 험담한 문서가 새나온 데 이어, 독일 연정 파트너 정당이 프랑스를 가리켜 ‘유럽 최대 문제아’라고 쏘아붙인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감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의 긴축 정책을 주도해온 독일을 압박해 긴축 완화 분위기를 주도해 보려던 프랑스는 내외 비난에 직면했다.

◆ 유로존 사상 최고 실업률에 12년 만에 최저 인플레

29일(현지시각) 유럽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3월 유로존 실업률이 12.1%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고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11%)보다 1.1%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날 발표된 4월 인플레이션은 연율 1.2%를 기록했다. 2010년 2월 이후 최저치다. 전달보다 0.5%포인트 하락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인플레 목표(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 경제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우려한다. 각국 정부는 재정 적자 목표를 맞추기 위해 공공 지출을 줄이고 있고, 기업들은 채용에 소극적이다. 국민들은 구직난에 아우성이다.

유로존의 4대 경제 대국인 스페인 경제는 지난 1분기 더 깊은 침체에 빠졌다. 30일 스페인 국가통계기관(NSI)은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CNN은 “2011년 6월 이후 스페인 경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경제가 휴면 상태의 덫에 걸려 있다”며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유럽 외 다른 지역에서의 수요에 기대고 있다”고 전했다.

지표들마다 부진한 성적을 보이면서 오는 2일로 예정된 ECB 통화 정책 회의에서 금리 인하 결정이 내려질 거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제니퍼 맥퀀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금리 인하와 은행 대출을 늘리기 위한 추가 정책을 발표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메르츠방크의 랄프 솔빈 이코노미스트는 NYT에 “실업률이 내년 봄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 獨 내부 문건 “프랑스는 유럽 최대 문제아”

유로존의 2강(强)이면서 긴축 정책을 놓고 이견을 보여온 프랑스와 독일은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30일(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독일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프랑스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내부 문서가 유출됐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 정치권이 독일 총리를 비난한 내용의 문건이 공개되면서 독일을 자극했다.

독일쪽 문서는 독일 경제부처에서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문건으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표현한 내용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프랑스가 빠르게 산업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해외에서는 기업들의 철수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의 수익성도 보잘것없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또 “프랑스는 근로자들의 연간 노동 시간이 유럽연합(EU) 내에서 두 번째로 적은 수준이지만, 기업들의 세금과 사회보장 부담은 가장 높은 편이다. 프랑스는 연구·개발(R&D) 분야에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프랑스 노동자들의 주당 근무 시간은 35시간이다.

이 문건은 지난주 프랑스 언론이 집권 여당의 메르켈 총리 비난 문서를 폭로한 이 독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앞서 지난 27일(현지시각)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메르켈은 고집스러운 이기주의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사회당의 내부 문서 초안을 보도했다. 오는 6월로 예정된 사회당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이 문건은 메르켈 총리를 두고 “라인강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계좌 보호와 독일의 무역, 그리고 (9월) 총선 결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 佛 “메르켈은 고집스러운 이기주의자”

이 문건을 두고 텔레그래프는 “독일 정치권이 프랑스에 대해 갖고 있는 거칠고도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고 평했다.

독일 정치권은 발끈했다. 야당 사회민주당 의원이면서 유럽 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마틴 슐츠는 29일 저녁(현지시각) 올랑드 대통령과 만난 후 “메르켈을 유럽 문제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면서 “브뤼셀 테이블 위에는 메르켈뿐 아니라 다른 26명의 정상도 있다. 메르켈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독일 기독민주당의 외교 문제 대변인인 안드레아스 쇼켄호프도 “프랑스 사회당의 공격은 독·불 관계에서 볼 때 유별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독일을 자극한 사회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어 교사 출신의 친독파 장 마르크 애로 프랑스 총리와 미셸 바니에 EU 정책위원은 사회당의 문건이 나온 직후 트위터에 독어로 “특별한 독불 관계”를 강조하는 내용의 단문을 올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또 중도 우파 등 정치권 내부에서도 “올랑드 대통령이 독일 공포증(Germanophobia)에 사로잡혔다”는 비난이 나왔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