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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침논단] 세계 경제 위기, 단기적 긍정 지표는 무의미

입력 : 2013.01.13 23:14

'안전자산' 달러 프리미엄 누리는 美, 경상수지 적자 누적 악화돼
유럽은 준비 안 된 통화통합으로 흑자국·적자국 격차 점점 커져
구조·거시적 문제 해결 못하면 구제금융은 미봉책에 불과해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유로화는 2002년 도입 초기에는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2009년 이후 갈수록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재정 적자와 총부채가 큰 남부유럽, 즉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PIGS)가 위기의 진원지다.

실은 유럽보다 더 심각한 게 미국이다. 미국은 2008년까지 매년 700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와 4000억달러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에 재정적자가 GDP의 15%인 1조8000억달러에 달했다가 이후 약간 줄고 있다. 연간 적자가 이 지경이며, 총 누적 정부 부채는 2011년 기준으로 GDP의 103%다. 스페인 68%, 아일랜드·포르투갈 108%, 이탈리아 120%, 그리스 165%에 근접할 만큼 매우 크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국제경쟁력이 낮아져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쌓이는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조정할 의사가 별로 없어 보인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미국의 저축이 늘어야 하는데 민간 소비도 줄지 않고 불황체제의 정부 재정은 계속 적자를 키운다. 달러 가치도 떨어지지 않는다. 달러는 중국이 3조 이상, 기타 동아시아 흑자국을 합하면 5조, 여기에 산유국이 2조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자국의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해 달러를 시장에 내놓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 가치 하락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중국이 미 재무부 증권 등을 계속 사는 한 재정 적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위 '안전 자산'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이다. 미국 달러화에 자국 화폐의 환율을 고정시킨 나라가 많을수록 이 같은 '글로벌 임밸런스', 즉 미국 경상수지 적자 누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유럽의 통화 통합은 '유럽판 미니 임밸런스'를 초래했다. 독일·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 흑자국과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포르투갈·폴란드 등 적자국 간 격차가 커진 것이다. 유로화의 정착은 일정 폭 내에서 움직이는 유럽공동환율제 스네이크 제도와 유럽통화체제(EMS)의 실패 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 조약은 단일 통화권 가입 조건으로 환율 안정, 물가 안정, 금리 하향 안정, 공공 부채와 재정 적자 상한 등의 '수렴 기준'을 채택했다. 과잉 적자국에 대한 벌금 부과와 예산의 지속적 감시를 위한 '안정성 협약'도 체결되었다. 실제로 수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회계 조작을 시도한 나라도 있었고, 가입 후 기준을 통과하리란 예상으로 미리 가입을 허용한 경우도 있어 현재 유로존은 17개국에 달한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유로존 위기로 수렴 기준과 안정성 협약이 무용지물이었음이 드러났다.

통화 통합은 환율 위험을 없애 무역과 자본 이동을 촉진하고 물가와 금리 관리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최적(最適) 통화 지역'의 조건이 필요하다. 생산요소, 특히 노동시장의 내부 유동성이 커야 하고 가격과 임금의 신축성, 유사한 물가상승률, 비슷한 개방도와 경제구조의 다각화, 금융정책의 수렴과 재정 통합, 정치 통합 등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화통합은 성공하기 어렵다. 2009년 유로존 위기가 시작되면서 이런 조건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래서 2010년부터 과도적 금융 안정 방안, 신재정협약 등 여러 보완정책이 추진되었다. 2012년 6월 유럽 정상회담에서는 유럽안정기제(ESM)의 직접 지원, 통합 은행감독기구 설립 등이 합의되었다.

어쨌든 불균형은 커졌다.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 부채 확대 그리고 그 이면에 부실 대출, 자산거품, 국제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를 가진 나라들이 위기를 부채질했다. 구조적·거시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유럽판 임밸런스'는 미국발 '글로벌 임밸런스'와 똑같이 세계경제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문제국들의 회계감사, 구조조정, 자구노력 등이 보장되지 않는 구제금융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밸런스의 주요 배경인 경쟁력 차이를 분석한 최근 유럽중앙은행(ECB) 보고서는 남부 유럽국들이 임금 인하·생산성 제고·재정 긴축·품질 향상·무역 구성 고도화에 힘쓸 것을 권유하고 있다. 건전국들도 정치·재정·노동을 더 생각하고 ECB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각 회원국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이루기 쉽지 않다. 그만큼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계속 걱정거리로 남는다.

좌우간 2012년에 유로화는 무너지지 않았고 2013년에도 존속할 것이다. 구제금융기구가 제도화되었고, 그리스에 추가 자금이 지급되었다. 예산목표도 대부 조건도 완화되었다. ECB는 곤란에 처한 나라의 단기 채권을 '무제한' 매입한다고 발표하여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금융비용이 급감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지표도 전반적인 경기회복이 빨리 오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