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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살아야 할 이유 못 찾아 극단적 행동"

유서 405건 분석한 박형민 형사정책硏 연구원

허자경 기자
"세상에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고 싶은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사진>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살 전문가'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자살자들이 남긴 유서 405건을 분석한 논문 '자살행위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으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 위원을 8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났다. 박 위원은 "자살 방지 정책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살아가야 할 동기를 유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자살자들의 유서에는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25세 남자는 '내가 이 좋은 세상에 이렇게 허무하게 가야 하나'라고 했고, 한 14세 소녀는 '이대로 죽기엔 15년밖에 못 산 내 인생이 너무 아깝지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죽어야만 하는 이유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다' '죄송하다'는 말만 남긴 채 자살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자살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죽었다는 말도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수사 기록을 보면 자살자 중 30.3%가 경제적 문제가 있었고, 20.3%가 지병 등의 신체적 문제, 30.4%가 우울증 등의 심리적인 문제가 있었다. 33.9%는 가족·연인 등과 갈등을 빚고 있었고, 5.6%만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회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복수 응답)"고 말했다.

또한 그는 "통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감소 추세일 때 자살률은 증가 추세를 보인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자살률은 급격히 증가했다. 특별한 심리적 이유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경제적 이유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렇기 때문에 자살 정책을 수립할 때 정신의학적 분석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접근이 보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주변 요소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회적 노력과 시스템이 있다면 자살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