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인원을 선발해야 하는 본사 방침에 따라 아쉽게도 불합격 통보를 드리게 됐습니다.` 상경계 대학으로선 최상위 명문사학으로 분류되는 연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이진수 씨(28ㆍ가명). 설레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지만 이번에도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게 십수 번. 이씨는 이제 억울한 수준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이씨는 학생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낸 유학파.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영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 2004년에 취업에서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후 학점도 남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관리했다. 이씨는 외국에서 살던 경험을 살리고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아 대기업 해외영업 분야를 중심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운 좋게 필기시험 과정에 올랐다고 해도 합격은 쉽지 않았다.
난관을 거쳐 면접에 오른 경험은 2번. 그러나 면접관의 굳은 얼굴만 기억에 남긴 채 고배를 마셔야 했다.
스트레스로 점차 드문드문해지는 머리가 취업에 방해되는 것 같아 모발이식 수술까지 했으나 취업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영어과외를 하며 구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쪼그라드는 자신감에 이제는 취업 원서를 내기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취업은 운에 의해 좌우된다"며 "만약 내년까지 취업이 안 되면 영어과외를 전업으로 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경영학ㆍ경제학을 이중 전공으로 해온 강민경 씨(25ㆍ가명)도 사정은 비슷하다. 평균 학점 3.9점에 토익 점수는 최상위권이다. 화려한 스펙으로 취업은 문제없을 것 같지만 강씨는 3학기째 취업을 준비 중이다. 금융공기업 취업을 꿈꾸던 강씨는 길어지는 준비 기간에 이제는 어지간한 기업에는 모두 원서를 넣고 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밥벌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이다. `나 정도면 당연히 되겠지` 싶었지만 서류를 통과하는 비율은 10% 정도인 게 현실이다. 그나마 서류를 통과하더라도 인적성 시험과 면접 관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강씨는 "이제는 명문대라는 간판으로 취업이 보장되던 시대는 지났다"며 씁쓸해했다.
경제 불황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대학생 취업전선은 겨울을 넘어 빙하기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시장 문턱에 이제는 이른바 명문대 대표 학과 출신 학생들까지도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취업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명문대 졸업장을 들고도 취업난을 호소하는 학생이 나타나는 것은 무엇보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 채용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숫자를 뽑는다지만 지방대ㆍ고졸 채용 숫자가 늘다 보니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 경쟁률이 더 높아졌다. 또 눈높이가 높은 명문대생들은 대부분 지원하는 곳이 비슷해 취업 문턱을 넘어서기가 더 힘들어진 것이다.
[기획취재팀 = 정욱 기자 (팀장) / 임성현 기자 / 김명환 기자 / 배미정 기자 / 장재웅 기자 /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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