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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세계 경제 위기의 끝은 어디인가 … 사공일·버그스텐 특별대담

세계 경제 위기의 끝은 어디인가 … 사공일·버그스텐 특별대담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왼쪽)과 프레드 버그스텐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이 지난 4일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 경제 현안들을 놓고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미국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할 것이며,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워싱턴=조대한 기자]

미국 경제가 조심스레 기지개를 켜고 있다. 9월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가 51.5로 기준선인 50을 넘기더니, 실업률은 7.8%로 3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까. 그렇다면 유럽의 재정위기는 언제쯤 터널을 지날 것인가. 불확실성의 세계 경제를 진단하기 위해 국제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프레드 버그스텐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을 중앙일보 고문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만났다. 두 사람은 사공일 고문이 청와대경제수석이었던 1980년대 초 처음 만난 이래 30년째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특별 대담은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의 PIIE 소장실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사공 고문=미국 경기가 좋아지는 조짐이 주택시장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제를 낙관하는 논평도 늘고 있다.

 ▶버그스텐 소장=미국 경제의 현재 불황은 종전과 다른 형태다. 금융위기에 뿌리를 뒀다. 가계·기업·금융기관 할 것 없이 부채를 상환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V자 형태의 빠른 회복이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나는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해 낙관한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넘을 것으로 분석한다. 내년엔 3%,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주목할 건 미국 경제의 견인차인 주택 및 자동차 시장이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부문 모두 완전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성장 잠재력은 그만큼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사공=다음달 치러지는 미국 대선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버그스텐=흥미로운 건 현재 미국 기업들이 총 2조 달러(2220조원) 이상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 점에서 미국 대선이 중대 분기점이 된다고 본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불확실성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이 투자를 재개할 것이다. 내년 성장률이 생각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는 이유다.
 
 ▶사공=미국의 고민인 ‘재정절벽(fiscal cliff, 정부 지출이 감소하고 세제 혜택이 끝나 경제에 큰 충격이 오는 현상)’도 해결될 것이라고 보나.

 ▶버그스텐=난 미국이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치인들은 위기를 조장했다고 비난받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시장도 대체로 그렇게 예상한다. 다만 정치인들이 재정문제를 바로 해결할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도 6개월~1년은 시간을 더 끌 수도 있다.

 ▶사공=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는 어떤가.

 ▶버그스텐=롬니가 당선된다면 ‘레임덕 의회(대통령 선거 후 새 의회가 활동하기 전까지 열리는 의회)’가 감세 조치를 6개월~1년 정도 연기할 가능성이 크다. 새 행정부와 새 의회가 새로운 방안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공=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지난달 3차 양적완화(QE3)라는 추가 부양책을 내놓았다.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변수다. 이에 대해 브라질 등은 “환율전쟁(미국이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버그스텐=난 생각이 다르다. 양적완화는 전통적인 연준의 정책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목표는 주로 실업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연준의 의도는 미국 내 투자와 소비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다. 또 QE3 효과가 나타나는 경로는 주로 이자율과 국내 자금시장에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달러화 가치 하락 등 환율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의 QE3를 국가가 환율시장에 개입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중국 등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다.

 ▶사공=개인적으로 QE3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면 간접적으로 세계 경제 전체에도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흐름과 환율 변동이란 측면에서는 생각할 부분이 있다. 대외개방도가 높은 중·소 규모 나라의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들 나라는 거시건전성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한국은 이런 조치를 일부 취하고 있다.

 ▶버그스텐=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여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통화 팽창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의 제로금리 상황이 앞으로 3년, 아니면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사공=유럽의 위기를 얘기해 보자. 유럽의 현 상황은 어떤가. 유로화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가.

 ▶버그스텐=‘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17개국)’ 문제에 대해 난 낙관적이다. 유로존의 위기극복 능력을 믿고 있어서다. 여기서 내가 낙관적이라고 말하는 건 유로의 붕괴나 국가 부도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유럽이 곧바로 성장국면으로 진입할 거라는 뜻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유로의 가치는 높아질 것으로 본다. 유로존은 통화 동맹은 이룩했으나 경제·재정·은행 연합으로 가지는 못했다. 그건 결함이 있는 시스템이다. 이들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유로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경제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유로 체제를 지키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하다.

 ▶사공=그렇게 되려면 특히 독일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

 ▶버그스텐=그렇다. 재정이 튼튼하고 유로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독일은 결국 어떤 부담도 감당할 것이다. 유럽이 속도라는 측면에선 느린 게 사실이지만, 유로 체제의 약점을 조금씩 보완해 가고 있다.

 ▶사공=동감한다. 나도 유럽 위기가 시작될 때부터 유로의 붕괴나 심각한 퇴보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유로존 국가들에는 유로를 유지하려는 강한 정치적 열망과 의지가 있고, 둘째 유로 붕괴 시 초래될 경제적 충격이 워낙 클 것이기 때문이다.

 ▶버그스텐=한 가지 문제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을지다. 난 50대 50으로 본다. 그런데 그리스의 퇴출이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간에 그리스엔 타격이 되겠지만 유로존 자체엔 별 충격이 없을 것이다. 독일 등 유로존이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가 퇴출되면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나라가 각성해 여러 요구사항을 수용하게 될 거다. 이런 노력들이 유로 체제를 강화시킬 것이다.

 ▶사공=나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본다. 그리스가 탈퇴함으로써 유로체제가 강화된다는 데 동의한다. 유로 체제는 기본적으로 ‘원죄’를 안고 출범한 시스템이다. 재정연합 없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유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재정 및 정치 통합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유로존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언정….

 ▶버그스텐=또 하나, 위기 국가들의 구조조정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가 큰 관심사다. 현재 이들은 연금과 노동, 경쟁정책 등 분야의 개혁을 한창 펼치고 있다.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1년 정도면 좋겠다. 하지만 2~3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사공=사실 긴축보다는 구조조정과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1997~98년 한국의 외환위기 경험을 유럽 국가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형편이 다른 나라들보다 나은 건 외환위기 이후의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 덕분이다. 이제 중국 등 동아시아 경제를 짚어 보자.

 ▶버그스텐=기본적으로 나는 중국과 동아시아 경제를 좋게 본다. 중국은 앞으로도 2분기 정도 저성장을 하겠지만, 경착륙은 없을 것이다. 저성장이 불가피한 이유는 그동안 중국이 주택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장을 해 왔기 때문이다. 주택 부문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2년간 11~12%에 달했다. 이는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기 이전의 6%에 비해 너무 높다. 스페인의 경우도 9.5%였다. 그러나 중국이 그동안 주택거품 붕괴에 대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 왔기 때문에 미국·스페인 같은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본다.

 ▶사공=중국 위안화의 가치와 환율에 대한 의견은.

 ▶버그스텐=나는 지금도 위안화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3%) 기준으로 본다면 위안화는 5% 정도 저평가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상수지의 완전한 균형이란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두 자릿수로 저평가돼 있다.

 ▶사공=일본 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나.

 ▶버그스텐=솔직히 희망적이라고 보긴 힘들다. 대지진의 충격에선 벗어났지만, 고령화 문제 등 어려움이 많다. 특히 현 정치시스템 안에선 효과적인 경제정책이 나오기 힘들다. 엔화의 강세도 경제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일본인들은 엔화 자체보다 한국 원화와 비교한 환율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일본인들은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 만족하는 듯하다. 이미 높은 소득 수준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어려움은 더 지속될지도 모른다.

 ▶사공=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얘기해 보자. 중국 등은 TPP를 경제적인 시각이 아닌 전략지정학(geostrategic)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버그스텐=양 측면이 있다고 본다. TPP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추진한 유일한 무역 관련 이니셔티브다. TPP는 최근의 무역자유화 움직임 중 가장 크고 야심 찬 계획이다. 가입국이 늘어나면 TPP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이미 가입했다. 다음은 한국과 일본 차례다. 두 나라는 TPP 체제에 서둘러 들어오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프레드 버그스텐=5년 전 미국과 중국, 양대 강국을 의미하는 ‘G2’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 1969~71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제경제 보좌관을, 77~81년엔 미 재무부의 국제경제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81년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를 설립한 이래 줄곧 소장직을 맡고 있다. PIIE는 미국의 국제경제 정책과 세계경제 분석에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이 큰 싱크탱크로 평가받는다. 버그스텐은 프라자합의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현자(賢者)그룹 의장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