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몰입해 병 극복한 李대통령 安후보, 처방과 휴식으로 회복해
1980년대 후반에야 백신 보급돼… 간염 안 걸린 중년 이상은 행운…
의료적으로 열악한 시대 희생자… 오히려 사회적 차별이 큰 문제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이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는 그가 B형 간염으로 고생한 얘기가 자세히 나온다.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이던 시절 그는 극심한 피로감에 병원을 찾았다. 거기서 간염 판정을 받았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간 수치가 치솟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병원은 그에게 입원과 휴식을 권했지만, 그는 회사 일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일을 병행하며 치료를 받았다. 이후 이 대통령의 간염은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다가 1988년이 돼서야 간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훗날 이 대통령은 "일에 몰입해 역설적으로 간염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일이 내 목숨을 살려줬다"고 했다. 맨주먹으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그다운 독특한 투병기다.
안 후보에게 간염이 불거진 것은 1997년으로 보인다. 간염으로 투병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게 그때였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간염 어머니'로부터 바이러스를 물려받은 '수직 감염자'였다. 그의 인생에서 바이러스와의 대결은 숙명이었던가. 안철수연구소를 세워 한창 컴퓨터 바이러스와 맞설 때 그는 생물학적 바이러스와도 싸워야 했다. 그의 간염도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다가 2002년이 돼서야 그는 간 기능을 되찾았다. 술을 곧잘 하던 그가 알코올을 멀리 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으로 보인다.
의사 출신답게 그의 투병 방식은 의학 교과서였다. 주변에서 간에 좋다는 약재나 건강식품을 권하는 이가 많았으나 일절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주치의의 처방과 철저한 휴식, 평상심 유지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컴퓨터도 무리하게 쓰면 쉽게 망가지고 성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 몸도 휴식 없이 굴리면 제 기능을 잃는다고 했다. 고장 난 컴퓨터는 부품을 교체해 쓸 수 있지만 사람 몸은 그럴 수 없으니 혹사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중년 이상 세대들은 초등학교 시절 공포에 떨게 했던 이른바 '불 주사'를 기억할 것이다. 예방접종을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날 우리는 알코올 램프에 달궈진 주삿바늘을 보고 몸을 떤 기억이 있다. 일회용 주사기를 쓸 여력이 없던 시절 하나의 주사기로 여러 명이 주사를 맞아야 했고, 불 주사는 바늘 소독의 임시방편이었다. 그때 누군가 부주의하게 소독했고, 우연히 내 앞 접종자에게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아무나 보균자가 될 처지였다. 참고로 일회용 주사기 사용 의무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예전에는 헌혈 받은 피에서 간염 바이러스를 잡아내고 거르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수혈을 받다가 자신도 모르게 보균자가 된 사람도 많았다. 상당수는 엄마 자궁 속에서 바이러스를 받아 보균자로 태어났다. 간염 바이러스를 피해간 중·장년, 노년 세대는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이다.
요즘은 백신은 물론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는 다양한 약물이 나와 있어 B형 간염이 충분히 관리되고 있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B형 간염 선수들도 꽤 있다. 오히려 간염 보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문제다. 아직도 상당수 회사가 입사 시험 과정에서 신체검사라는 명목으로 멀쩡한 B형 간염 보균자를 탈락시킨다. 남자의 경우는 군대도 남들과 똑같이 다녀왔는데도 말이다. 대개 1980년대 중반 이전에 태어난 늦깎이 또는 재취업자들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보균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직무 수행 능력만 평가받는다.
이제 30년 후 정도면 B형 간염과 그로 인한 간암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B형 간염은 불우한 시대의 산물이다. 어찌 보면 이 대통령과 안 후보 세대의 간염 보균자는 의료적으로 열악했던 환경에 태어난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상당수 환자가 '의학적 상이용사'인 셈이다. 그럼에도 B형 간염 환자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제나 항암제 사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험난한 세월을 딛고 선진국으로 가려는 지금, 그들의 치료 환경과 사회적 차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공동의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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