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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外

[Weekly BIZ] [이창양의 경제산책] 기업에 혁신 강제하는 '좋은 규제'… 죽어가는 산업도 살린다

 

미국의 요령있는 규제…에너지 절약법 통해
자동차 산업의 광범위한 혁신 이끌어
직접 지원보다 효과적…정부의 특정산업 지원책
WTO 체제에선 어려워, 업계와 조율된 규제 절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과는 달리 인도의 경제성장률과 제조업 생산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연초에 9~10% 정도로 기대되던 성장률은 7%에도 미치지 못하고, 제조업 생산 증가율도 5% 수준에 그쳤다. 중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새로운 쌍두마차인 인도 경제가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있어 구조적인 장벽에 부딪친 느낌이다. 인도의 제조업 비중은 16% 수준으로 중국의 절반에 불과한데, 이는 우리의 성장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노동시장에 대한 잘못된 규제도 그 하나다. 고용·임금·해고 등 모든 단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고, 특히 100명 이상을 고용한 공장에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해고가 가능하다. 노동 규제의 불확실성도 높다. 28개주(州)가 저마다 최저 임금을 따로 정하고, 그것도 3개월마다 바뀐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노동 법규를 준수하면서 정규직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매우 성가시고 부담스럽다. 당연히 정규직 고용을 꺼리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성장이 저해된다. 130여 개국에 진출한 월풀(Whirlpool)도 인도에서는 인력의 대부분을 비정규직 파견근로자로 충당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오늘날 모든 경제의 지상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을 열거나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이는 다양한 여건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우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도전하는 기업가들이 있어야 하고, 우수한 인적 자본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양질의 금융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정부의 정책도 중요하다. 특히 그동안 우리가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능사인 것처럼 생각해 온 규제가 기술 혁신과 경영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규제에는 '나쁜 규제'와 '좋은 규제'가 있고, 정책과 경영의 교집합이 커져가는 오늘날 좋은 규제를 만들어 나가는 기업과 정부의 역량이 새로운 경쟁력의 요소가 된다.

우선,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 '나쁜 규제'의 예는 많다. 영국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규제가 좋은 예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태동기인 1865년부터 30년 이상 시행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은 그 전형이다. 자동차 통행료는 마차 등에 비해 차별적으로 높았고, 속도 규제도 엄격했다. 최고 속도가 시속 2마일(시내)과 4마일(외곽도로)로 제한되었다. 게다가 자동차를 운행할 경우 조수가 60야드 앞에서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랜턴을 들고 앞장서야 했다. 산업혁명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신생 자동차산업이 꽃을 피우는 데 이러한 규제가 걸림돌이 된 것은 당연하다.

영국의 나쁜 규제는 자동차산업의 전성기에도 발견된다. 우선 자동차 구매에 대해 가격에 따라 최고 67%에 이르는 높은 소비세가 부과되었다. 1950년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도 경쟁력의 저하를 가져온 규제였다. 이 정책으로 자동차회사들이 스코틀랜드 등 실업률이 높은 지역으로 이전했고, 부품 및 원자재 공급회사들의 집산지로부터 멀어지게 돼 생산성이 크게 낮아졌다. 당시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경쟁사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롤스 로이스와 미니는 독일의 BMW가, 벤틀리는 독일의 폭스바겐이, 재규어는 인도의 타타 모터스(Tata Motors)가 소유하는 등 영국 소유의 메이저 자동차 회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산업을 회생시킨 '좋은 규제'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일련의 규제들이다. 국토가 광활한 미국은 자동차가 가져온 시간 단축과 공간 축소의 최대 수혜자였고, 포드·제너럴 모터스(GM)·크라이슬러 등이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1950년대 이후 암묵적인 담합 속에 안주하면서 기술 혁신을 멀리하고, 스타일링(styling)과 대형화를 통한 이윤극대화에만 몰두했다. 유럽에 비해 디스크 브레이크, 연료분사 엔진 등 신기술의 도입이 10여년 이상 늦었고, 최초로 스타일링 부서를 둔 GM의 모토는 한때 "3년마다 스타일링 바꾸기"였다. 그 결과 품질과 성능을 내세운 독일· 일본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산업 자체가 휘청거릴 정도로 크게 밀리게 되었다.

이 당시 미국 차는 소비자 운동의 대부인 랄프 네이더(Nader)의 책 제목처럼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로 대변된다. 당시 일반적인 크기의 차종인 캐딜락 엘도라도가 시속 80마일로 달리다 급정거를 하면 축구장 길이만큼을 훨씬 지나 정차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소비자의 불만은 높았고, 무수한 결함과 부실한 안전장치, 지나친 크기 및 무게와 과도한 배기량 등이 그 핵심이었다. 무게가 2t에 달하고 엔진기술이 취약한 미국 자동차들의 연비가 경쟁 차종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은 당연하다. 1958년 어느 날 뉴욕타임스는 미국 자동차를 "바보들(자동차회사들)이 도둑들(딜러들)을 통해 팔기 위해 만든, 크기가 뻥튀겨지고 가격이 부풀려진 괴물"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가라앉던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되살아난 데에는 산업정책이라면 경기를 한다고 알려진 미국 정부의 '요령 있는(subtle)' 규제가 있었다. 미국 정부가 겉으로는 소비자 및 환경 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명분으로 내세운 일련의 규제를 통해 사실상 자동차산업의 기술 혁신을 강요한 것이다. 이른바 '강요된 혁신(forced innovation)'이다. 자동차 안전법(1966)으로 안전에 관한 기술혁신을 강요했고, 에너지 절약법(1975)에서는 회사별로 '평균 연료 효율(CAFE· 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을 설정해 경량화를 위한 소재와 디자인 혁신, 연비 향상을 위한 엔진 및 동력계통 기술 혁신 등 광범위한 혁신을 이끌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가 지적했듯이 좋은 규제가 혁신을 가져온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WTO 체제에서는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 등 적극적인 경쟁력 강화정책은 어렵다. 이제는 영리하고 요령 있는 규제의 활용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정부에 의한 일방적인 규제보다는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을 통한 협력적 규제가 필요하다. 기업도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유연성, 그리고 혁신의 가능성 때문에 이런 방식의 규제에 협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오바마 정부가 80년대 이후의 규제 완화 조류에 밀려 표류하던 CAFE를 자동차 업계와 함께 야심 차게 재설정한 것은 강요된 혁신에서 한층 진화된 '조율된 혁신(harmonized innovation)'의 전형이다. 이제는 기업과 정부가 함께 빚어낸 합리적인 규제 협력이 혁신과 경쟁력의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수출 산업의 지속적인 경쟁력 향상과 내수 산업의 육성이 절실한 우리에게는 이런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