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유럽보다 빚 많고 정치 불안… 미국이 다음 시한폭탄"

유로존 재정위기 세계석학 특별 좌담
장 피사니페리 브뤼겔연구소장, 가와이 마사히로 亞개발銀 연구소장, 위융딩 前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硏소장, 사회:김태준 금융연구원장
"유럽보다 미국이 더 걱정" - 최근 실업률 다소 하락했지만 GDP의 110%인 가계빚 큰 부담… 연준 경기부양 능력에도 한계
유럽중앙은행 역할 논란 - "물가안정 뿐 아니라 금융안정도 의무, 재정위기국 국채매입 나서야" "EU헌법상 시장개입엔 한계" 지적도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8~9일 EU(유럽연합) 27개국 정상들이 모여 재정통합 강화안과 구제금융기금 증액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은 여전히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획재정부, 한국금융연구원, AEE F(Asian Europe Economic Forum)는 유로존 위기가 아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지난 9~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이번 회의를 후원한 본지는 콘퍼런스 참석자 중 대표적인 경제석학인 장 피사니페리 브뤼겔연구소장, 가와이 마사히로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장, 위융딩 전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장 등을 초대해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의 사회로 전문가 특별 좌담회를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유럽정상회의 결과가 나름 의미가 있지만 근본 해결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데 시각을 함께했다. 전문가들은 또 앞으로는 미국이 유럽보다 더 큰 세계 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정치불안 문제가 심각하고, 막대한 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마땅한 경기부양 수단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유럽보다 더 큰 문제될 수도"

김태준=세계 경제를 조망할 때 유럽보다 미국이 더 걱정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가와이 마사히로=최근 실업률이 다소 하락한 것은 긍정적이고,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택 가격이 반등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으며 바닥을 쳤는지도 불확실하다. GDP(국내총생산)의 110%나 되는 가계부채도 큰 부담이다. 유로존 상황이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미국이 3차 양적완화(QE3) 처방을 쓸 가능성이 크다.

위융딩=연준의 부양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96년 일본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썼을 때 일본 경제가 잠시 반등했다 다시 부진에 빠졌듯 미국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부채비율도 유럽보다 더 높다. 유럽은 정치적 문제만 해결되면 미국보다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장 피사니페리=민간의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진행 중이고, 실업수당 등 최소한의 생활보장도 못 받는 계층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유럽보다 정치적 불협화음이 더 큰 것도 우려스럽다.

"EU정상회의 결과 본질적인 처방 못 돼"

김태준=유로존 위기의 본질이 정치이슈여서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유로존 위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장 피사니페리=유럽연합(EU) 정상회담 결과를 보니, 새 재정협약 체제에 유로존 17개국뿐 아니라 비(非) 유로존 국가까지 참여해 재정관리 목표 달성을 각국의 법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항구적 구제금융기구인 유로안정기금(ESM)을 5000억유로 규모로 내년에 도입하는 등 방화벽(firewall)을 강화했다. 민간투자자들이 더 이상 구제프로그램에 강제로 참여하지 않도록 한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가와이 마사히로=재정규율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반갑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더 지켜봐야 한다. 또 유럽문제는 단순히 유동성 위기만이 아닌 이탈리아스페인 등의 국가부도 위험이 핵심이슈이다. 구제금융 자금을 늘렸다고 하지만 비상시에 이 정도 규모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위융딩=규모가 불충분하다는 데 동의한다. 중국이 유럽문제 해결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중국 정부는 아직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 국부펀드는 (EFSF 등을 통한 유럽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장 피사니페리=방화벽 강화와 재정 규율에 초점을 맞춘 이번 조치는 단기처방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위기를 해결하려면 유로본드(유럽공동채권)를 도입해야 한다. 또 재정위기가 은행 부실로 인한 금융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급선무다.

김태준=유로존 문제의 핵심은 실질환율 조정 실패에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해도 환율조정을 통해 바로잡을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급한 불을 끄더라도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로본드 도입이 무산된 것도 부정적이다.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9일 본지가 마련한 좌담회에서“최근 유럽 정상회담 결과는 유럽문제 해결에 불충분하며, 아시아 금융 통합에서 유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태준 금융연구원장, 가와이 마사히로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장, 장 피사니페리 브뤼겔연구소장, 위융딩 전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장.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ECB 역할 확대해야" vs. "ECB는 미 연준과 달라"

가와이 마사히로=유럽중앙은행(ECB)은 독립성을 가지고 금융 안정을 위해 유로존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 만약 국채가 부도나면 회원국이 부담을 분담하는 메커니즘이 이미 존재한다. 유로본드가 불가능해진 이상 ECB가 부실국 채권매입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도 ECB의 의무 중 하나다.

장 피사니페리=현재 조약(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상 ECB가 유럽 재정위기에 직접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ECB가 국채의 최종대부자가 돼서도 안 된다. 물론 금융안정도 ECB의 의무이긴 하지만, 물가안정보다는 훨씬 약한 의무다.

위융딩=특히 독일은 물가안정이 ECB의 유일한 목표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가와이 마사히로=그렇다. 하지만 독일은 유로존 17개국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회원국들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고, ECB는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다.

장 피사니페리="ECB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는 근본 철학이나 설립 배경이 다르다. ECB가 미 연준보다 금융안정 기능이 약한 것은 당연하다.(더 이상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는 어렵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