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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아침논단] 대학생 연쇄 자살이 던진 화두

뚜렷한 가치관과 개성 지닌 21세기의 우리 젊은이들
산업화시대 교육시스템으론 창의력·다양성 못 키워줘
어떤 인재 기를 것인가 철학과 비전부터 정립해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갈 수재라고 인정받는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연쇄적으로 자살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사건이 알려진 후 거의 2주 동안 언론과 국회에서 그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고,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들도 여럿 제안되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많이 거론된 것은 징벌적 차등 등록금 제도 등 지나친 경쟁체제,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 부족, 그리고 학생들의 나약한 정신상태 등이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과 학생 자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데다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달라서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듯이 보인다. 학교 측이 이 사태의 수습을 위해 출범시킨 혁신비상위원회에서의 논의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사들이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 하는 바람에 사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 면이 있다. 그동안 카이스트가 경쟁위주 대학개혁의 선봉(先鋒)처럼 인식되었기에 일부 단체와 언론에서 이 사태를 둘러싼 논란을 대학개혁을 추진하는 사람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사태의 본질에서 벗어난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논평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사태는 본질적으로 대학개혁파와 반대파의 싸움은 아니다. 카이스트 교수협의회가 총장 사퇴보다 학교 운영의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학생들도 비상총회에서 경쟁위주 제도 개혁의 실패를 인정하라는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은 데에서 보듯이 대다수의 카이스트 구성원들은 '대학 개혁(改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개혁의 방향과 방식에서 이견(異見)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비판은 지속 가능한 개혁을 위해서 오히려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큰 시각에서 바라보면 특정 제도의 개선이나 특정인의 진퇴(進退)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우리 교육에의 함의를 살펴보는 일이다. 사실 촉망받던 젊은 인재들의 잇단 자살은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대한 심각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능력 있고 촉망받던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절망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원인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라고 생각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미 다양한 가치관과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무대에 나가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김연아 선수나 수많은 한류(韓流) 스타들을 보면 우리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큰 능력과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20세기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교육시스템으로 '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 붓듯이' 지식 주입을 강요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자는 "학문을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과연 학문을 즐기게 될까.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지도했던 미국 교수 한 분은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 "준비는 잘되어 있지만, 발전 가능성에 한계가 보인다"라고 평(評)한 일이 있다. 창의력과 다양함이 무기가 되는 지식기반사회의 이공계 인력을 계속 이렇게 키워도 될까.

이런 문제는 사실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한국에서 학생 교육에 있어서도 앞서가는 대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어, 학생들을 지금의 제도로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미래의 좋은 인재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엄정한 학사관리나 국제적 수준의 교수평가, 치열한 경쟁체제 구축 등은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이런 요건을 갖춘다고 해서 모두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라는 교육철학이 분명하고 이를 실행해야 진정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대부분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기에 이러한 요건을 갖추는 것이 대학개혁의 전부인 듯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대학개혁을 이루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르려는 미래 인재상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정립되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스러져간 4명의 생명은 우리 대학에 이런 화두(話頭)를 던지고 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