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워런 버핏과 비즈니스 삶
"궁극적으로 주식 시장의 가치는 경제의 결과물만을 반영할 뿐이다. "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29일(현지시간) 출간하는 첫 공식 자서전 '스노볼;워런 버핏과 비즈니스 삶(The Snowballㆍ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출판사 블룸스베리,가격 25.96파운드)에서 전하는 투자 메시지다. '가치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버핏이 자신의 일생을 들려주고 모건스탠리의 보험 애널리스트였던 앨리스 슈뢰더가 집필한 976쪽 분량의 이 책에서 버핏은 인생 철학과 투자 경험에 얽힌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6월 '버핏과의 점심' 기회가 210만달러(약 22억원)에 낙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버핏과 마주앉아 멋진 식사를 하면서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이 책은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이 책의 제목은 그가 평소 "인생은 눈뭉치(snowball) 같아,습기를 먹어 잘 뭉쳐지는 눈과 긴 언덕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서 따왔다. 버핏의 자서전을 통해 그의 인생과 성공 비결을 엿봤다.
◆성공의 비결은 '집중'
버핏이 스스로 평가하는 성공의 비밀은 '집중'(focus)이다. "전념해야 성공한다"는 그의 말처럼 투자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집중이 오늘날 그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다.
그는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에서 식료품 가게를 3대째 이어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업은 식료품 가게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다섯살 때부터 부자가 꿈이었던 그는 껌을 팔기 시작했다. 이모가 만들어준 녹색 나무판에 색깔이 다른 5가지 껌을 팔았다. 첫 사업이었다. 그는 지난 4월 'M&M 초콜릿'으로 유명한 마스가 세계 최대 껌업체인 리글리를 인수하는 데 65억달러를 투자하며 껌과의 인연을 이었다.
버핏은 일곱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로부터 채권에 관한 책을 선물받았으며,열살 때는 아버지의 손에 끌려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했다. 이때부터 서른다섯살까지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슴 속에 품었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증권사 객장에서 시세판에 주가를 적는 일을 하며 '강세론자'인 프랭크 삼촌과 '약세론자'인 존슨 삼촌 사이에 앉아 주식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첫 주식 투자를 한 것은 열한살 때.시티서비스라는 석유회사의 주식이었다. 38달러에 3주를 샀고 40달러에 팔았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주식은 2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때 투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열한살에 첫 주식투자를 할 때까지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빨리 투자를 시작하면 현명한 투자결정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점을 설파한 것이다.
◆실패와 좌절,그를 일으킨 건 '사랑'
버핏에게도 어린시절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중학생 버핏에게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점심시간에 시어스 백화점이 입점한 건물에 들어가 골프볼과 작은 가방 등을 훔치기도 했다. 수학과 영어 성적은 'C'와 'D'로 채워졌다. 빗나가던 그를 잡아준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버핏은 "당시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아버지가 계셨다는 게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털어놨다.
실패를 겪기도 했다. 네브래스카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대신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에 진학,과학적 주식투자 방법을 세계 금융계에 소개한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를 만났다. 그레이엄 교수는 버핏의 평생 정신적 스승이 됐다.
버핏은 1953년 스물세살의 나이에 어린시절 친구인 수지와 결혼했다. 대학원 졸업 후 고향인 오마하로 내려와 아버지의 증권회사에서 일하다 뉴욕에 있는 스승의 투자업체 그레이넘 뉴먼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그의 '가치투자' 철학은 이때 형성됐다. 1956년 이 회사가 해산하자 다시 오마하로 내려와 3만달러에 집을 산 뒤 아직껏 이 집을 지키고 있다. 그해 누나와 이모 장인 등의 돈을 모아 10만5000달러로 자신의 펀드를 결성했다. 그는 수익을 다시 투자하며 빠르게 펀드를 불려 나갔다.
버핏은 타고난 '투자 천재'는 아니었다. 몇 차례 실패를 겪었다. 1987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살로먼브러더스에 투자한 7억달러를 잃을 뻔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처음부터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투자에 주의하라"는 것을 지침으로 삼았다. 이후 월가에 대한 투자를 피해오다 20여년이 흐른 최근에서야 골드만삭스에 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가치투자의 신화
그는 펀드를 통해 번 돈으로 망해가는 섬유회사인 벅셔 해서웨이를 사들였다. 이 회사를 투자회사로 바꿔 투자해 나가기 위해서였다. 시세에 흔들리지 않고 가치투자를 실천하기 위해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오마하에 머무르며 주식을 매입했다. 당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제너럴 푸드,RJR토바코 등을 사들였다. 1987년 10월 주식 대폭락(블랙 먼데이) 이후 가격이 떨어진 코카콜라와 웰스파고 등의 주식도 대량으로 매입,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그를 '현인'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투기가 판치는 주식시장에서 귀감이 되는 투자 철학이었다. "그는 부자지만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성공을 행운의 덕택으로 돌리며 순박한 삶을 즐기는 인물"이라는 게 집필자 슈뢰더의 설명이다.
그의 성공이 행운 덕분만은 아니다. 1999년 IT(정보기술)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허브 알렌의 선밸리 컨퍼런스에서 버핏은 자신은 인터넷 관련주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많은 투자자들이 인터넷주에 투자해 상당한 평가이익을 거두고 있을 때여서 버핏은 세상 변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때 그는 "결과물(성과) 없는 가치는 창출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곧 이어 IT 주식이 대폭락하면서 그의 가치투자는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흔한 주식단말기조차 없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금융위기는 길고 깊게 진행될 것"
버핏은 미국 금융 위기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드러냈다. 그는 2002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금융상품을 '금융시장의 대량 살상 무기'라고 경고했다. 벅셔 해서웨이는 이미 1980년대 이후 파생금융상품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의 전망은 우울하다. 버핏은 "유동성이 시장에 풍부하게 공급된다면 조만간 끝날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 싫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만약 둘 중의 하나에 베팅하라면 길고 깊은 침체에 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 속에서도 최근 골드만삭스에 5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위기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있을 때 진정한 기회가 온다"는 그의 말처럼 '역발상 투자'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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